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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총리, 5공 군사정권에도 없던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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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총리, 5공 군사정권에도 없던 일을…"

[기고] 장영배 전국공공연구노조 정책위원장이 보내는 편지

황교안 총리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신문 지면을 통해 고교 동문으로서 이렇게 처음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적잖이 쑥스럽군요. 최고위 공직자에게 무례를 범한다고 생각하더라도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가을바람 스산한 세종국책연구단지 천막농성장에서 이렇게 총리님께 글을 드리는 이유는 한 달여 전 언론에 보도된 총리님의 발언 때문입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총리님은 9월 22일 출입기자단 오찬간담회에서 공무원 임금피크제와 관련해서 "공무원 정년은 이미 60세 이상으로 임금피크제를 그대로 적용 어렵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2016년에는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의 정년이 60세로 의무화됩니다. 정부는 정년연장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청년고용을 창출한다는 명분으로, 해당 사업장과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총리님은 공무원의 정년이 이미 60세 이상이어서 정년연장과 무관하기 때문에 공무원에게는 임금피크제 적용이 어렵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공공운수노조

정년연장 효과가 없는데 강요되는 임금피크제

만일 이것이 맞다면, 총리님의 발언은 전혀 공평하지 않습니다. 공공부문에 국한해서 이야기해 보면, 이미 정년이 60세 이상인 사업장에도 임금피크제가 무자비하게 강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내년에 정년 60세가 의무화되어도 정년연장 효과가 전혀 없는데 임금피크제가 강요되고 있습니다.

이들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는 그냥 '임금 강제 삭감'일 뿐입니다. 정년연장 효과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같은 공공부문에 속해 있으면서도 공무원은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하고, 다른 한 편에서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의 노동자들에게는 임금피크제를 강요하는 것은 앞뒤가 전혀 안 맞는 궤변이고 무원칙한 행정행위입니다.

기타공공기관에 속하는 인문사회계/과학기술계 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출연연의 정년은 이미 60세(인문사회계), 61세(과학기술계)입니다. 지난 9월 15일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은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인사연) 소관 26개 출연연 기관장들을 정부서울청사로 불러, 예산/임금/기관평가의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하면서 임금피크제 도입을 9월말까지 완료한다는 각오로 나서라고 기관장들을 몰아붙였습니다.

그 이후에 출연연에서 벌어진 상황은 차마 공공연구기관이라 하기도 민망할 지경입니다. 단체협약과 취업규칙 변경 관련 법규를 위반하면서 개별 동의서를 배포하거나 온라인투표를 하는 기관장들이 있는가하면, 직원들의 투표로 임금피크제 도입이 부결되자 다시 투표하여 가결시킨 출연연도 있습니다.

이런 출연연들을 뒤따라, 처음 투표에서 부결된 출연연은 다시 투표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기관장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고, 기관 구성원들에게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입만 열면 '연구자 친화적인 연구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정부가 하는 일치고는 참 어이없습니다. 우수연구인력 이탈, 연구성과의 질적 하락, 연구현장의 연구분위기 파괴 등 초래되는 악영향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왜 이런 일을 강압적으로 벌이는 것일까요? 5공 군사독재시절에도 이런 일은 없었지요.

범법행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정부

과학기술계 출연연에 대해서는 미래부 장관이 9월 24일 기관장들을 서울로 불러서 자신이 주재하는 임금피크제 관련 회의를 개최했고, 미래부 관료가 연구기관 고위 경영진들을 만나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력하게 독촉하기도 했습니다. 미래부는 이런 일을 지난주에도 반복했습니다. 마치 정부 부처들끼리 임금피크제 강요 경쟁에 돌입한 모양새입니다. 이에 따라 과기계 출연연에서도 경인사연 출연연에서 일어난 일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압박과 강요에 지친 어느 과기계 출연연은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 '근로기준법 및 공동 단협 위반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음'을 공식적으로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정부가 공공연구기관이 범법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임금피크제 도입이 청년고용 창출에 과연 도움이 되느냐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어느 방향으로 결론이 내려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총리님도 잘 아시리라 믿고 여기에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노동조합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과학기술계 출연연이 수행하는 정부연구개발사업비 7.5조(2014년 기준) 원의 1%만 늘리거나 절약해도 신규채용에 필요한 인건비 750억 원을 확보할 수 있으며, 약 2500명(연봉 3000만 원 기준)을 신규 채용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현재와 같은 강압적 방식으로 온갖 노사갈등과 연구현장의 불법적 난맥상을 초래하면서 신규채용을 위하여 확보할 수 있는 재원은 50억 원도 되지 않습니다. 어느 것이 사회적으로 더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방법인가는 더 이상 묻지 않겠습니다.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이러한 사회적 논란과 정책적 대안 모색은 임금피크제가 그만큼 정치적 사회적 폭발성을 가진 제도여서 도입 이전에 관련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매우 신중하고 철저한 정책적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정책적 검토를 제대로 하지도 않은 채 임금피크제 도입을 여러 협박과 강제수단을 동원하여 공공부문에 강요하고 있습니다. 오랜 공직생활을 하셨고 행정경험이 적지 않은 총리님께서는 이런 정책과 행정행위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공공운수노조

임금피크제, 전면 재검토해주길

총리님이 이 글을 읽으시면서 웬 천막농성장이냐고 궁금하셨을 것 같습니다. 9월 15일 국무조정실장의 발언과 협박 이후 인문사회계 출연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우리 노동조합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고 임금피크제(=임금 강제 삭감)를 결사저지하기 위하여 세종연구단지에서 천막농성을 9월 21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오늘로 꼭 30일이 되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천막농성입니다.

임금 강제 삭감에 지나지 않는 임금피크제를 출연연에 강요하는 정책을 철회하거나 전면 재검토할 것을 총리님께 간곡히 요청합니다. 어려운 일일 수 있으나 출연연에 미치는 파국적 영향을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무원에게 임금피크제 적용은 어렵다는 총리님의 발언이 내년도 총선, 내후년 대선을 앞두고 공무원 사회의 동요를 막기 위한 정치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암울하기 때문입니다.

40여년 전에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철없던 시절의 짧은 인연으로, 총리님에게는 기억도 가물가물할 제가 이 글을 쓰는 것이 주제넘은 일인지 모릅니다. 더구나 40여년 만에 드리는 글이 이런 형식과 내용으로 되어 있어서 저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러나 임금피크제 도입 강요로 출연연에서 얼마나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알려드리고자 용기를 냈습니다.

다시 한 번 총리님의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2015년 10월 21일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정책위원장 장영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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