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소득에는 세금을, 청년에게는 청년 배당을
이재명 성남시장이 청년 배당을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 필자가 몸담고 있는 녹색당은 내년 총선에서 청년 배당을 포함한 기본 소득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할 예정이다.
청년 배당은 청년부터 우선적으로 기본 소득을 지급하자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 소득은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노동을 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정부가 지급하는 소득이다. 이것은 사회 구성원에 대한 배당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시민 배당'이라고도 한다. 기본 소득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지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청년 등 특정한 집단부터 우선적으로 지급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것이 청년 배당인 것이다.
이재명 시장의 청년 배당 정책은 한국에서 기본 소득을 본격적으로 무대에 등장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스위스같은 나라에서는 기본 소득을 지급할 것인지에 대해 내년에 국민 투표에 부칠 예정이고, 핀란드는 집권당이 기본 소득을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한국에서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는 것이다.
청년 배당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청년들의 권리
그런데 벌써 청년 배당에 대한 공격이 쏟아지고 있다.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는 식의 비판이 일부 언론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세계일보>는 사설에서 "돈으로 청년들의 환심을 사는 건 책임있는 지자체장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청년 배당 또는 기본 소득의 취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청년 배당 또는 기본 소득은 권리로 보장되는 것이지, 정부로부터 시혜나 환심을 받는 것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당하게 배당을 받는 것이다.
아마도 역사상 처음으로 청년 배당과 유사한 개념을 주장한 사람은 토머스 페인일 것이다. 미국 독립을 주장한 실천가이자 사상가였던 토머스 페인은 1797년에 쓴 <토지 정의(Agrarian Justice)>라는 책을 통해서 상속세로 걷은 돈으로 청년 배당을 지급할 것을 제안했다. 만21세가 되는 청년들에게 노동자 평균 임금의 3분의 2 정도에 해당하는 돈을 주자고 제안한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기준으로 보면, 2650만 원(2015년 7월 기준 노동자 평균 월 임금 331만5000원을 기준으로 계산) 정도 되는 돈이다. 꽤 큰돈이다.
토머스 페인은 청년들이 이런 돈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에 최소한의 '비빌 언덕' 내지 '종잣돈'을 마련해주는 것은 사회 공동체의 의무이고, 청년들은 그것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무슨 돈으로 청년들에게 배당을 주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토머스 페인의 계산은 아주 간단했다. 상속세만 제대로 걷어도 재원은 마련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토마스 페인은 계산을 통해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기도 했다.
이재명 시장의 청년 배당 정책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정책이다. 성남시의 1년 예산은 2조4000억 원이 넘는다. 청년 배당을 실시하는데 들어가는 예산은 1년에 600~700억 원이면 된다(시범 사업을 하는 2016년에는 113억 원이면 된다). 쓸데없는 곳에 낭비되는 예산을 절감하면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돈이다.
성남시 외의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전라북도 진안군의 경우에 인구가 3만 명이 안 된다. 그런데 진안군의 1년 예산은 3000억 원이 넘는다. 주민 1인당 예산액이 1000만 원을 넘는 것이다. 얼마 전 진안군에서 만난 농민들은 "쓸데없는 데 돈을 쓰지 말고, 시장 개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들에게 농민 기본 소득으로 돈을 지급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농민 배당(농민 기본 소득)같은 정책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용돈'이 안 되려면 국가가 나서야
한편, 다른 측면에서 청년 배당을 비판하는 논리도 있다. 성남시가 추진 중인 청년 배당은 분기당 25만 원이니까, 1년에 100만 원에 불과하다. 그래서 '용돈 수준'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것은 성남시의 탓이 아니다. 성남시는 성남시가 할 수 있는 몫만큼 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액수로 청년 배당을 실시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다. 계산해 보면,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만 제대로 하더라도 월 30~40만 원 정도의 청년 배당을 국가적으로 지급할 수 있다.
글의 분량에 제한이 있으므로, 아주 간단한 계산만 제시해 보겠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는 많이 있다.
만 15~29세까지의 대한민국 청년들 숫자를 뽑아보면, 979만9564명(2017년 인구 추계 기준)이다. 만15세부터로 잡은 이유는 의무 교육이 끝나는 시점이고, 이 시기부터 사회로 나오는 청소년들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979만9564명에게 1인당 월 40만 원을 지급한다고 계산하면, 1년에 소요되는 예산액은 47조3800억 원 정도다. 엄청나게 많은 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조세 정책을 정상화하기만 해도 마련할 수 있는 돈이다.
몇 가지 자료만 제시해 보겠다. 정말 이것은 보수적으로 잡은 계산이고, 최소한의 것만 제시하는 것이다.
2014년 기준으로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대한 비과세‧감면 규모가 국세의 경우에만 11조8000억 원이 넘는다. 지방세까지 합치면 더 크지만, 일단 국세만 얘기해도 이 정도가 된다.
경실련이 2014년에 발표한 것에 따르면, 주택 임대 소득의 규모는 연간 44조 원에 달한다. 월세 385만 가구, 전세는 377만 가구, 합계 750만 가구에 대한 임대 소득을 추정한 것이다. 1가구 1주택을 보유하면서 전세를 사는 경우 등을 제외하더라도, 1가구 다주택 소유자의 숫자는 매우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택 임대 소득에 대해 평균 실효세율 15% 세율로 과세한다고 하면 6조6000억 원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1가구 1주택 비과세를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서민들이야 이자‧배당 소득이 얼마 안 되지만, 고소득층의 이자‧배당 소득은 막대하다. 이건희 회장의 경우에 1년간 배당 소득만 해도 1758억 원에 달한다. 2014년의 경우에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이자와 배당 소득은 56조 원에 달했다. 여기에 대한 과세만 강화해도 수조 원의 세금이 추가로 마련될 수 있다.
상속세 강화도 필요하다. 대한민국에서 상속세는 '바보세'로 불린다. 전체 피상속인(사망자)의 2%남짓만 세금을 내기 때문이다. 상속세 최고 세율(명목세율)은 50%로 되어 있지만, 실효세율은 매우 낮다. 상속세 평균 실효세율을 30%로만 하더라도 5조9000억 원가량의 세수가 추가로 발생한다.
대한민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38%이고, 지방세를 포함해도 42.8%에 불과하다. 소득세 최고세율이 낮은 편이다. 소득세에서 40%, 45%, 50%의 최고세율만 설정하더라도 2.2조 원의 추가세수가 발생한다는 계산이 나와 있다.
법인세율도 낮은 편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계산에 따르면 법인세를 강화하면 2017년 기준으로 최소한 5조 원 이상의 추가 세수가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토지 보유세의 실효세율이 낮다. 민간 보유 토지 자산 규모가 3294조 원으로 추정되므로, 그에 대한 실효세율을 0.1%만 올리더라도 3조 원 이상의 추가세수가 확보된다.
우리나라의 지하 경제 규모가 크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탈세를 막아서 지금보다 5% 정도의 세수증대 효과만 거두더라도 최소 11조 원 이상이 확보 가능하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 중에서 숫자를 명시한 것만 합치더라도, 45.5조 원에 달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처럼 예산 낭비가 심한 나라에서 낭비되는 예산을 절감하면, 그로부터도 상당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청년 배당을 국가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와 조세 정상화를 통해 재원 마련 가능
이런 정책이 경제에 충격을 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상화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민 부담률(GDP에서 '세금+의무적 사회보장부담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24.3% 수준이다. 이를 3%만 올려도 44.55조 원을 만들 수 있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조세 부담률은 OECD 평균인 34.1%보다 한참 모자라는 수준이다.
대한민국에서 조세 저항이 심한 이유는 조세 부담이 불공평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소득층, 재벌 등에 대한 세 부담이 약하고 탈세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불로소득에 대해 제대로 과세하고, 탈세를 막으며, 비과세‧감면을 줄이면 증세에 대한 국민동의를 얻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포퓰리즘 운운하기 이전에, 지금까지 나왔던 청년 일자리 정책 등이 왜 실패하고 있는지부터 평가해봐야 한다. 임시방편적인 정책으로는 답이 없다.
지금은 청년들의 '비빌 언덕'을 마련하는 것이 진정한 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황량한 들판에 아무것도 없이 청년들을 서게 하면서, '자립하라'고 말하는 것은 사회공동체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처럼 제한된 일자리를 놓고 무한경쟁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청년 배당/기본 소득의 정신이다. 이런 정신에 동감한다면, 포퓰리즘을 운운할 것이 아니라, 가능하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을 제대로 과세하고, 비정상적인 조세정책을 정상화하기만 해도 재원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불로소득에는 세금을, 청년들에게는 청년 배당을 지급하자.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