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래치'라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있다. 참 쉽다. '기계치'라고 주눅 들 필요가 없다. 당연하다. '8세 이상 아이'들이 배워서 사용하게끔 할 목적으로, 미국 MIT 미디어랩이 개발한 언어다.
기자도 '스크래치'를 조금 써 봤다. 문법이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버그(오류) 잡느라 머리 쥐어뜯을 일도 없다. 대학에서 C언어 처음 배울 때 골치 썩인 걸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애들 장난감' 아니냐고? 그게 아니라서, 속이 답답했다. 아이들이 과학이나 공학에 재미를 붙이게끔 해준다는 '장난감'은 전에도 있었다. 기자가 어렸을 적엔, '과학상자'가 유행했다. 직접 나사와 볼트를 조이면서, 초보적인 기계류를 만드는 장난감이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공학 영재라고 해도, '과학상자'로 시장에 내다팔만한 제품을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가능해보였다. '스크래치'와 비슷한, 쉬운 개발 도구가 많아졌다. 이런 도구로 만든 수준 높은 소프트웨어가 제법 있다. 돈 내고 살만한 것들이다.
"기술 진보…쉬운 일은 더 쉬워진다"
"'초딩'이 프로그래밍을 하니까,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밥줄 끊어진다"라고 비약할 마음은 없다. '스크래치'를 만든 이들 역시 미국 MIT 대학의 엔지니어들이다. 수준 높은 개발자의 지위는 앞으로도 올라갈 게다. 그러나 단순 작업 수준의 프로그래밍을 하는 개발자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지위가 더 낮아질 게다. 이미 진행 중인 현상이라, 개발자들에겐 익숙한 이야기다.
요컨대 쉬운 일은 갈수록 쉬워진다. 기계가 사람의 손과 머리를 대체하는 현상은 계속될 게다. 그러나 쉬운 일을 더 쉽게 만드는 기술은, 여전히 까다롭다. 이런 기술을 익히려면, 오랜 공부가 필요하다. 지식과 기술이 뛰어난 소수는 앞으로도 고용시장에서 환영받을 게다. 그러나 나머지 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을 한다고 꼭 쉽게 대체되는 건 아니다. 똑같이 쉬운 일을 하는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이들의 간극은 크다. 전자는 대체로 안전지대다. 그래서 정규직 노동조합이 욕을 먹는다.
4년 전, 현대자동차 노조가 자식들의 채용 특혜를 요구해서 해서 비난을 샀다.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이 몹시 까다로운 일이었다면, 이런 요구는 아예 나오지 않았을 게다. 자식이 그런 일을 할 능력이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말이다. 현대차 노조의 당시 요구는, 그들의 업무가 쉽게 대체될 수 있다는 걸, 그런데도 괜찮은 대우를 받는 건 정규직 기득권 때문이라는 걸, 스스로 인정한 꼴이었다.
"논에 모 심는 아지매를 바로 현장에 투입해도 차 만드는 데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경영진의 말이 아니다.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박태주 지음, 매일노동뉴스 펴냄)에 소개된 현대차 노조 관계자의 말이다. 이미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선 기계가 사람을 쫓아냈다. 온통 자동화 돼 있다. 에너지 자원 위기로 인한 산업용 전기요금 대폭 인상이 아니고선, 막기 힘든 흐름이다.
'차별과 모멸의 공동체'가 된 우리네 일터
솔직히 말하자.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 거의 대부분은 기계가 잠식할 수 있다. 지금의 숙련 노동 가운데 상당 부분이 단순 노동이 된다는 뜻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된다는 것. 안보전문가인 이상우 전 한림대 총장은 "머지않아 파일럿이 필요 없는 공군이 도래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미국 <AP통신>에는 로봇이 쓴 기사가 실린다. 대표적인 감정노동인 콜 센터 노동자의 일도, 머지않아 전산화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개인 차원의 대응은 대개 두 가지다. 하나는 기득권의 벽을 더 높이 쌓는 일이다. '스펙'에 따른 차별을 내면화한다. 똑같이 쉬운 일을 한다는 건 인정한다. 그래도 더 나은 대우를 받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시험 합격으로 얻은 '스펙'을 진입장벽으로 삼는다. 그리고 거기에 권위를 세게 부여한다. 기득권에 기대는, 지대추구 행위다. 너도나도 이런 선택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네 일터는 이미 차별의 공동체가 됐다. '스펙' 혹은 '운'이 나빠서 대기업 정규직이나 전문직이 못 된 이들은 평생 모멸감에 시달린다.
다른 선택지는 기계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는 재능과 성실성, 그리고 가족의 후원이라는 조건을 두루 갖춘 소수만 가능하다.
나머지 다수는 어쩔 건가. 평범하게 태어나 기득권의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한, 보통 사람들.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을 하면서도 존엄을 유지하려면, 나와 똑같은 일을 하며 다른 대우를 받는 누군가에게 경멸 또는 질시의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일자리 없어도 최소 생계는 보장, 사장의 '갑질'도 줄어든다"
마침, 이재명 성남시장이 흥미로운 주제를 꺼냈다. 이 시장은 지난 19일 오후 서강대 다산관에서 '2015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지역정치와 기본소득(Local Politics and Basic Income)'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 행사에서 이 시장은 성남 지역 청년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도입을 검토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기본소득'이란 일종의 '시민배당' 개념이다. 주주라면 누구나 배당을 받는다. 가난하건 부유하건, 관계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조건 없이 일정한 배당금을 받는 게 '기본소득' 개념이다. 이 시장의 발언 취지는 청년을 상대로 조건 없이 돈을 나눠준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스펙' 또는 '운'이 나쁜 청년도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된다면, 우리네 일터 풍경은 꽤 달라질 수 있다. 모멸감을 주는 일터라면, 떠나면 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사장이 고용하는 이유는 그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멸감을 느낀 그가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것, 모멸감 주는 일터에 취업하느니 기본소득으로 생계를 꾸리겠다는 이들이 많다는 것. 이런 사실을 사장이 알게 되면, 일터 풍경은 달라진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을 하면서도 최소한의 존엄은 유지할 수 있다.
'모두에게 투표권', 그보다 먼저 나온 '모두에게 기본소득'
청년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은 이미 오래 된 개념이다. 미국 독립전쟁의 사상적 기반이 된 정치 팸플릿 <상식>의 저자 토머스 페인. 그는 <토지분배의 정의>라는 책에서 21세가 되는 모든 청년들에게 15파운드를, 또한 50세 이상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남은 인생 동안 매년 10파운드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노동자 1년 연봉이 23파운드쯤 됐다.
근거는 이렇다. 경작이 안 된, 자연 상태의 토지는 '인류의 공유재산'이다. 따라서 토지를 법적으로 소유하고 경작하는 이는 '인류의 공유재산'을 이용한 대가를 사회 공동체에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마련한 기금을 사회 구성원이 나눠 써야 한다는 뜻이다. 또 누군가가 토지를 배타적으로 점유하며 경작한다면, 이는 새로 세상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인류의 공유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침해한 걸로 볼 수 있다. 21살 젊은이들에게 나눠주는 15파운드는 이에 대한 보상이다. 당연히 남녀 차별도 없다. 여성에게 정치적 권리가 없었던 시절이라는 걸 생각하면, 대단한 발상이다. 요컨대 '모두에게 기본소득'이라는 발상은 '모두에게 투표권'이라는 생각보다 앞서 나온 것이었다.
흑인에 대한 차별에 맞섰던 마틴 루터 킹도 기본소득을 주장했다. 그가 1968년 암살당하기 직전 준비했던 행사가 '빈자들의 행진'이었다. 여기서 내걸려고 했던 구호가 '기본소득, 완전고용, 싼 임대주택'이었다. 차별과 모멸감에 공감한다면, 기본소득은 매력적인 개념이다.
차별과 모멸감, 그리고 '기본소득'
이날 이 시장은 기본소득 성격의 '청년배당'을 성남사랑상품권 등 지역화폐와 연계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역시 오래 된 개념이다. 지역화폐엔 이자가 붙지 않는다. 돈을 쓰지 않고 축적만 하려는 동기가 약해진다. 소비 확대에 좋다. 또 지역 공동체 안에서 유통된다. 따라서 지역의 부가 서울로 빠져 나가는 걸 막는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 유럽 일부 지역에선 이런 아이디어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감가화폐'(減價貨幣)를 쓰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가치가 떨어지는 지역화폐다. 돈을 지갑에 담아두면 손해이므로, 소비가 살아난다.
기본소득을 '감가화폐' 성격의 지역화폐로 지급하자는 주장은 이미 나왔었다. 한국에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이런 주장을 했다. (☞관련 기사: "기본소득, 새누리당이 먼저 낚아챌 것")
'기본소득' 주장을 무조건 옹호하자는 건 아니다. '현금 배당'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공적 사안이 많다. 최근 '메르스 유행'이 입증했다. 한국의 공공의료 인프라는 턱없이 취약하다. 시민이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복지 서비스는 지금보다 대폭 강화돼야 한다. 제한된 공공 재원을 어디에 더 써야 하는지는 논란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본소득' 주장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이재명 시장은 차별과 모멸감에 대해 아는 사람이다. 초등학교만 나온 뒤 공장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를 겪었다. 그래서 6급 장애인이 됐다. 훗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갔고, 변호사가 됐다. 이런 그가 기본소득을 이야기 한 건, 일단 반갑다.
"생전에 기본소득 실현 가능성 '제로'"라는 유시민, 이재명과 토론했으면…
마침,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근 블로그에 소개한 서울대 <대학신문> 인터뷰에도 '기본소득' 이야기가 있다. 유 전 장관은 이 인터뷰에서 "내 생전에, 정신이 말짱하고 눈 뜨고 있을 때 기본소득이 실현될 가능성은 제로"라고 말했다. 이 시장이 유 전 장관과 '공개토론'이라도 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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