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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펀드', 은행 직원들 '강제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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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펀드', 은행 직원들 '강제 가입'?

KEB하나은행 "1인당 계좌 2개씩 만들라"…은행 측 "자발적 동참"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처음 제안하고 스스로 '1호 기부자'까지 된 청년희망펀드(☞관련 기사 : 朴대통령, 청년 일자리 펀드에 2천만원 기부) 모금 과정에서, 모금 창구가 된 은행의 은행원들이 사실상 동참을 강요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박 대통령이 최초로 기부 약정서에 서명했던 KEB하나은행에서 일어난 일이다.

22일 KEB하나은행에서 일하는 복수 노동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전날부터 서울 시내에 위치한 이 은행의 복수 지점에서 소속 은행원들에게 펀드 가입을 종용하는 일이 일어났다. 은행 측은 가입을 강제한 사실이 없다고 하고 있지만, 직속 상사의 '권유'를 거절하는 것은 직장인들에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크다.

서울 소재 이 은행 A지점에 근무하는 ㄱ씨는 이날 아침 '청년희망펀드'에 가입했다. 가입액은 1만 원. ㄱ씨는 "지점장이 동료 직원에게 이야기해서, 그 직원이 다른 직원들에게 '지점장이 가입하라고 했다'고 전달했다"며 "우리 지점 직원들은 모두 1구좌씩 가입했다. 대부분 1만 원씩 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영업그룹(지역본부)별로 '우리는 몇 퍼센트 가입했다', '우리는 몇 퍼센트다'라고 집계를 한다는데, 굳이 '강제'니 '의무'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회사라는 곳에서 이게 무슨 뜻인지는 뻔히 알지 않느냐"고 했다. ㄱ씨는 "본점 직원들은 1인당 4계좌씩 만들라고 했다고 한다"며 은행 직원들 사이에 도는 소문을 전하기도 했다.

ㄱ씨가 전한 소문은 단지 소문만은 아니었다. 역시 이 은행 B지점의 ㄴ씨는 "처음에는 1인당 1계좌를 만들라고 하더니, 오늘 오전에는 지점장이 '보고해야 하니 배우자 등 명의로 하나씩 더 만들라'고 했다"고 전했다. 1인당 1계좌씩의 '억지 기부'도 모자라, 실적을 더 늘리기 위해 타인 명의로까지 가입을 하라고 한 셈이다. ㄴ씨는 "청년희망펀드 (기부자가 아닌) 수혜자여야 할 이들(비정규직 등)까지 모두 계좌를 만들었고, 은행 정직원이 아닌 청원경찰에게도 '가입하지 않겠냐'고 권유했다"면서 "(직원들) 가입률을 본부 단위로 집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은행 직원 ㄷ씨는 "전사적 차원에서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청년희망펀드 자체가) 청년실업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인데, 그것도 모자라 자율도 아니고 강제로 직원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5개 은행 중 유독 '박근혜 서명 은행'에서 문제…우연일까?

B지점 지점장은 과연 '보고'를 어디에 해야 했을까? 취재 결과, 이 은행의 한 직원은 다른 직원에게 청년희망펀드 '1인 1계좌' 가입을 권유하면서 이같은 "신규(가입) 요청"은 "총회장님 연락"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KEB하나은행에 '총회장'이라는 직함을 쓰는 이는 없다. 단 KEB하나은행을 소유하고 있는 하나금융지주에는 김정태 '회장'이 있다.

김 회장은 이날 KEB하나은행 본점에서 함영주 은행장, 프로골퍼 박세리 씨와 함께 청년희망펀드 가입신탁 출시 행사를 열고 임직원들의 동참을 독려했다. 이 은행에 따르면, 출시 첫날인 21일에만 8631명이 청년희망펀드에 가입했고, 금액은 총 1억5741만 원이었다. 지난 1일 구 하나-외환은행 힙병 당시 이 은행 전체 직원 수는 1만5700여 명이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무회의에서 청년희망펀드를 처음 제안했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그 다음날인 16일 펀드 운영 방안 등을 개략적으로 발표했고, 그 닷새 후인 21일 박 대통령은 첫 기부금을 냈다. 일시금으로 2000만 원, 이후 매달 대통령 급여의 20%씩을 내겠다는 약정서는 KEB하나은행에 접수됐다. ㄱ, ㄴ씨 등이 '억지 기부'에 동참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다음날이다.

KEB하나은행 측은 이같은 사례가 나왔다는 기자의 질문을 받자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은행 홍보실 측은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의무 가입 같은 것은 없다. 자발적 동참"이라며 '영업그룹별로 가입률 통계를 냈다고 한다'는 지적에도 "그런 적 없다"고 부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직후 '청년희망펀드' 가입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청와대

금융노조 "노동자 실적 압박 안돼…벌써부터 '은행원 본인 가입하라 했다' 들려와"

노조는 사태 파악에 나선 상태다. 전국금융산업노조 하나은행지부 측은 은행 직원들의 펀드 가입 종용 사례에 대해 "노조 간부들이 조사 중"이라며 "사례를 수집해봐야 한다. 지금은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청년희망펀드 수탁사인 국민은행 노조 측은 "오늘이 첫날이라 아직 직원들에게 가입하라는 등의 내용은 없다"면서도 "노조 입장에서는 은행원들이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상품 소비자가 되는 일이 있지 않을까 우려돼서,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청년희망펀드 가입 신청은 KEB하나은행 외에 신한·우리·KB국민·NH농협(이상 가나다 순) 등 총 5개의 시중 은행에서 받고 있으며, 이들 5개 은행의 노동조합은 모두 한국노총 금융산업노조 소속이다. 나기상 금융노조 홍보본부장은 "아직 금융노조에 접수된 피해 사례는 없지만, 그런 경우가 생길 수는 있을 것"이라며 "내용을 파악하는 중이다. 일부 지부에서는 그런 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사전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노조로 알려달라'고 선(先)조치를 해 놓았다"고 말했다.

금융노조는 이날 오후 성명을 내어 "벌써부터 수탁은행들이 은행원 본인들부터 청년희망펀드에 가입하라고 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고 언급하며 "우리는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선의의 노력이 은행원들에 대한 실적 압박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금융노조는 "금융노동자들이 각종 금융상품 판매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청년희망펀드 출시를 보며 수탁은행 금융노동자들은 즉각 이같은 실적 압박을 걱정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자발적 의사에 의한 순수한 기부로 추진돼야 할 청년희망펀드를 강제 할당(함)으로 인해 본연의 취지를 훼손시켜서는 안 될 것"이라며 "청년희망펀드가 강제적 실적 압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금융 당국과 수탁은행들에 각별한 주의와 경계를 촉구한다"고 경고했다.

이날 정부는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을 통해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은 전적으로 자발적 참여 의사의 따른 자발적 기부 형식으로 진행될 것"이라며 "공공기관장이나 공무원에게 의무적 기부를 강요하거나 유도하는 움직임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바로 "평화의 댐 모금을 연상시킨다"며 "대통령이 1호 입금자라고 홍보하고, 고위 정부관료들을 줄세우며, 재벌과 유명인사에게 반강제로 권유하는 모양새를 누가 '자발적 기부'라 믿을 것인가"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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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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