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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에게 기후 변화를 말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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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에게 기후 변화를 말하는 법

[초록發光] 차례상에서 기후 변화를 논할까

'조상이 밥 먹여주느냐'는 말도 있지만, '조상 덕에 이밥'이라는 말도 맞다. 추석에는 더욱 그렇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말은 제대로 못 먹고 못 입던 시절에도 무르익은 오곡에 힘입어 집집마다 조금은 여유를 갖게 된 추석 명절의 성격을 참으로 잘 드러낸 표현이다. 그런데 한가위도 이제는 해마다 같지 않다. 무엇보다 눈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 차례상의 변화다.

"우리 조상들은 추석 차례상에 햅쌀로 빚은 송편과 모양 좋고 알 굵은 햇과일 등 신토불이 음식을 정성껏 올렸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솔잎 대신 바나나 잎으로 송편을 찌고, 사과나 밤이 있던 자리에는 멜론이나 오렌지가 놓일지도 모릅니다. 왜 이러한 변화가 예상될까요?"

2011년에 출간된 어느 고등학교 한국지리 교과서에 실린 구절이라고 한다. 물론 기후 변화의 영향을 가까운 사례를 통해 설명하려는 물음이다. 실제로 우리의 밥상은 한편으로는 자유무역협정(FTA)과 수입개방 확대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의 기후 변화 영향 때문에 그 구성이 이미 상당히 바뀌었다. 가장 귀하고 가장 잘 자란 곡식 채소와 들과 바다의 고기들을 선별해서 올리는 추석 차례상은 이제 이러한 변화의 전시장이 되고 있다.

동해에서 잡힌 명태로 만든 북어포가 사라진 것은 벌써 한참 전의 일이고, 사과도 예전에 이름 높았던 대구 근교의 것이 아니라 장수, 홍천 같이 큰 일교차와 추운 겨울이 유지되는 곳들의 것이다. 한국의 기후 변화 전망에 대한 연구들은 전반적인 온난화 속에 변덕스러운 날씨가 잦아지면서 앞으로 우리의 차례상이 더욱 바뀔 것으로 앞다퉈 전망하고 있다. 기후 변화에는 초본류가 더욱 취약하기 때문에 시금치와 고사리, 도라지 등 차례상에 빠지지 않는 삼색나물도 50년 후면 국내산을 찾아보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얘기다.

기후 변화는 단지 생육 환경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가뭄이나 일기 불순은 작물의 재배 조건과 가축류의 사육 조건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온도 유지에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높아진 곡물 가격은 높아진 사료 가격을 유발하여 농민과 소비자들을 더욱 어려운 처지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단작 위주로 개량된 관행농의 종자들은 한반도의 아열대화에 따라 새로 들어올 병충해에 더 취약할 우려도 있다.

어쨌든 차례상에 감과 배 대신 망고와 용과를 올리고, 조기 대신 다랑어를 먹게 되는 일은 그 나름 기후 변화에 대한 자생적 '적응' 행동이다. 그러나 국제 사회의 온실 기체 감축 노력이 미진함에 따라 더욱 격화될 기후 변화는 더욱 많은 적응 행동을 요구하게 될 것이니, 앞으로 그 비용과 희생이 얼마나 클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조상님께 절을 하면서도 뭔가 더 죄송함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런 걱정은 당연히 한국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어서,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 식탁과 기후 변화를 연결시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미국의 진보 매체 <마더 존스>는 몇 년 전 기사에서 앞으로 기후 변화가 추수감사절의 주요 메뉴들을 직접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 예를 들어 고온화가 미국 남부의 '칠면조 벨트'에 영향을 끼치고 사료로 쓰이는 옥수수 가격도 폭등시켜, 추사감사절의 대표 요리인 칠면조 구이를 만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인들이 즐겨 먹는 으깬 감자 요리도 으깬 바나나로 대체될지 모르며, 캘리포니아의 가뭄이 계속되면서 시금치 같은 샐러드 재료 공급도 지장을 받을 것이다. (☞관련 기사 : This Is Your Thanksgiving on Climate Change)

한국에 비해 국토도 어마어마하게 넓고 농축산물 재배 규모도 큰 만큼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기후 변화에 더욱 취약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추수감사절에 가족 친지들이 모여 다들 기후 변화 걱정을 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후 회의론자인(아마도 공화당 지지자일) 아저씨, 아주머니와 공연히 언성 높이고 낯만 붉혀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수감사절이라는, 기후 변화 문제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기는 너무 아까운 일이 아닌가? 마침, 염려하는 과학자들의 모임(Union of Concerned Scientists) 언론 담당 아론 휴어타스(Aaron Huertas)가 추수감사절에 기후 변화를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를 간단한 레시피로 소개하고 있다. (☞관련 기사 : How to Talk About Climate Change at Thanksgiving : Recipes for Good Conversations)

우선 그는 기후 변화가 너무도 중요한 일이라고 해서 그래프와 차트를 명절 저녁 식탁에 들이밀지는 말라고 주의를 준다. 첫 번째 코스는 주장 대신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어떤 친지는 기후 변화 자체를 믿지 않거나 사기라고 생각할지 모르고, 다른 근거들을 갖고 있을 수 있다. 그럴 경우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대하기보다는, 그들이 어디서 그러한 정보를 얻게 되었는지를 반문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들어보는 게 중요하다. 누군가가 부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기후 변화의 과학적 증거를 믿지 않는다기보다는 기후 정책의 실효성을 회의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두 번째 코스는 누군가의 가치를 공유하는 이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즉, 기후 변화에 대해서 정치적이거나 문화적인 배경이 입장을 좌우할 수 있는데, 그러한 다양성 속에 공감할 수 있는 집단이나 개인과 연결하고 동일시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마도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후 변화 관련 발언은 이런 점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겠고, 친환경 실천에 앞장서는 문화예술인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마지막 코스는 '테이블을 청소하고 해결책을 내오는 것'이다. 여기서 휴어타스는 다분히 실용적인 접근을 주문하는데, 식탁의 친지들에게 북극의 대기 운동은 어렵거나 먼 이야기겠지만, 예컨대 에너지 절약으로 얻는 경제적 이득, 특히 연비가 좋은 자동차 모델에 대한 이야기는 훨씬 쉬운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서로의 인식 변화를 서두르지 말고 경험하자는 것이다.

정부와 산업, 주류 언론은 기후 변화와 에너지에 대한 주장과 의견을 양극화하고 그것이 이미 정치 진영과 결부되어 식탁의 대화 소재로는 민감한 것이 되었다. 미국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4대강과 케이블카에 대한 찬반마저 보수와 진보, 노년과 청년 집단의 대립 구도 속에 엮여 버린 지금의 한국은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민감한 문제를 좋은 음식을 앞에 두고 풀어내는데 추석 차례상과 식탁만한 자리도 없을 듯싶기도 하다. 이번 추석 차례상 앞에서 기후 변화를 재주껏 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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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나라를 보호하는 에너지 정의, 기후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독립 싱크탱크입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로, 한국 사회의 현재를 '녹색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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