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답의 하나를 최근 인기 있는 <비정상회담>에 출연 중인 이탈리아 청년 알베르토가 던졌다. 그는 지난 5월 한 신문에 ‘식당·수퍼 식재료 절반을 그 지역 생산물로 채워라’라는 칼럼을 썼다. 슬로 푸드 운동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최근 로컬 푸드(지역 먹을거리)가 대세가 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자동차 딜러로 일하는 알베르토가 이런 의견을 피력할 정도라면 이탈리아 사회의 분위기를 대략 짐작해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밀라노가 패션이 아니라 농업과 먹을거리를 주제로 택한 이유이다.
오는 10월 16일 세계 식량의 날을 맞아 밀라노 시장은 전 세계 수십 개 도시의 시장들과 함께 도시 먹을거리 정책 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그 내용은 보다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먹을거리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이자는 것이다. 국내의 도시들도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사실 전 세계 대도시들이 2000년대 후반부터 먹을거리 전략 계획(도시 푸드 플랜)을 수립하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먹을거리 정책 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시민들에게 좀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이를 위해서는 통합적인 먹을거리 정책이 중요한 과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런던, 뉴욕, LA, 토론토, 밴쿠버 등이 그러한 일을 진행하고 있다.
의-식-주 중에서 그동안 도시에서는 주택(주)이 중요한 정책 과제였고, 먹을거리(식)는 사실 음식점 위생 관리 정도 말고는 정책적인 의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도시 농업이 중요한 정책적 과제로 부상하였고, 학교 급식 역시 사회적으로 뜨거운 의제로 떠올랐다. 즉, 먹을거리의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푸드 시스템)에 걸쳐서 도시가 정책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좀 더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됨으로써, 시민들이 좀 더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을 수 있고, 도시는 기후 변화에 맞설 수 있는 생태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논리가 형성된 것이다. 그 논리의 한복판에 로컬 푸드가 있다. 즉,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좀 더 가까워져야 건강, 환경, 지역 차원에서 다양한 이점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몇몇 도시들이 선구적인 사례들을 만들어가면서 이러한 추세를 선도했다면, 2015년 현재는 국제적인 조직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밀라노 도시 먹을거리 선언이 그렇고, 지난 4월 서울에서 있었던 이클레이(ICLEI) 서울 총회에서 발표된 서울 선언문에서 “지속 가능한 도시 먹을거리 생산 프로젝트와 회복력 있는 도시 푸드 시스템 관련 프로그램을 장려한다”는 문구가 들어감으로써, 박원순 시장이 2018년까지 의장으로 선출된 이클레이(지속 가능성을 위한 세계 지방 정부)가 이제 본격적으로 도시 먹을거리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서도 본격적으로 도시에서의 먹을거리 정책을 거론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서울시에서도 농업과 먹을거리 관련 정책들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음식점 위생 관리를 담당했던 식품안전과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다양한 부서들에서 도시 농업과 학교 급식, 그리고 취약 계층 영양 제공 정책을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정책도 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이 제각각 부서별로 흩어져서 뚜렷한 관점과 정책 틀 없이 고립적으로 추진되어 왔다는 점과, 현재 먹을거리를 현금 또는 현물로 제공하고 있는 다양한 급식 영역과 먹을거리 공공 조달 사업에서 (학교 급식의 사례처럼) 좀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먹을거리가 우선적으로 구입, 제공되어야 한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서울시가 현재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원전 하나 줄이기’ 종합 대책이나 건강 도시 계획, 더 나아가 서울시 도시 계획 마스터플랜 속에서 먹을거리 관련 내용이 전혀 없다는 점도 문제이다. 즉, 최근까지도 먹을거리는 서울시의 중요한 정책 분야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밀라노는 농업과 먹을거리를 주제로 엑스포를 개최하였고, 뉴욕은 시장 선거 때 뉴욕의 먹을거리 정책을 주제로 시장 후보 토론회가 열릴 만큼 먹을거리 정책은 우선순위가 높은 정책 영역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런던 푸드 비전에 의거하여 식재료들이 제공되었다. 따지고 보면 박원순 시장도 먹을거리 정책(친환경 무상 급식) 덕분에 그 자리에 올라가지 않았던가. 먹을거리는 시민들이 매일매일 체감할 수 있는 매우 긴밀한 생활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우리 도시의 먹을거리 정책을 만들어나간다는 의미도 매우 크다.
유네스코 음식 창의 도시로 지정되어 있는 전주시가 지난 7월 국내에서는 최초로 전주시 푸드 플랜을 발표하였다. 전주시 먹을거리의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전체 과정에 대해 앞으로 시가 생산과 소비를 지속 가능하게 연결하고 시민들에게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서울시도 현재 내부적으로 검토를 통해 조만간에 서울시 먹을거리 종합 계획의 윤곽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의 먹을거리 정책이 바뀌게 되면 전국적으로 많은 정책적 변화들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가 된다. 물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성공의 관건은 시민 사회 진영의 적극적인 주도 여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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