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에는 김부겸 전 최고위원이 공개적으로 문 대표의 재신임 추진안을 비판하고 나섰다. 김 전 최고위원은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문 대표는 재신임 카드를 내리고 폭넓게 당의 화합을 요청해야 한다"며 "당 지도부와 함께 국민의 의견을 더 경청해야 한다. 천정배를 만나고 정동영을 만나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종걸 원내대표가 주장한 '천정배 포함 통합 조기 전당대회'론이나 정세균 상임고문이 주장한 '문 대표 2선 후퇴 및 범계파 연석회의 구성'론을 상기시킨다.
김 전 최고위원은 "총선에서 이기려면 우군을 모두 합해야 한다"며 "절대적으로 옳은 혁신도, 완벽하게 틀린 비판도 없다. 승리의 길이라면 상처도 영광도 다 모아야 한다"고 혁신안 통과를 놓고 배수진을 친 문 대표를 우회 비판하기도 했다. 단 김 전 최고위원은 그러면서도 "우리는 문재인만으로도 총선 승리가 불가능하지만, 문재인을 배제한 총선 승리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반문' 진영에도 경고하며 "모두 냉정을 되찾고 정치의 대의를 다시 생각할 때"라고 덧붙였다.
앞서 김한길, 안철수, 박지원 등 비주류 주요 인사들은 물론 범주류인 정세균 상임고문까지 문 대표의 재신임 추진에 대해 비판적 의사를 밝힌 가운데, 김 전 최고위원까지 가세한 것. 김 전 최고위원은 지난 2.8 전당대회 당시 '반(反) 문재인 대항마' 추대설이 돌았으나 결국 본인이 고사해 불출마했었다.
문재인의 비판자들
새정치연합 내에서 문 대표의 '재신임 카드' 비판론에 동참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통적 의미의 계파 수장들이다. 김한길 전 대표, 정세균 고문,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이다. 김한길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는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김 전 대표와 가까운 주승용 최고위원은 이날 "참담한 심정"이라며 "대표는 자신의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고 화만 내고, 같은 지도부인 최고위원들과 전혀 대화하지 않고 복종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주 최고위원은 "문 대표는 재신임 여부는 물론 절차에 대해서도 전혀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며 "최고위원 다수가 반대하는 재신임 투표를 강행하는 것은 정당 민주주의에 위배된다. 지도부 존폐가 걸린 중대한 사안이므로 최소한 최고위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세균 고문도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에서 "대표의 고충이나 고심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시기적으로나 방법상으로 적절치 않다. 재신임 투표가 지금보다 더 큰 혼란을 낳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라며 "당 대표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갈등과 분열을 극복해야지, 상대를 제압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 고문은 지난 9일 "문 대표 등 지도부가 살신성인의 자세로 대결단을 해달라"며 2001년 보궐선거 패배 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 총재직에서 물러난 것을 언급하기도 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도 트위터에 글을 올려 "문 대표가 최고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신임을 여론조사(국민·당원)로 하겠다며 일방적 선언을 하고 퇴장한 것은 독선"이라며 "대표의 결정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또 앞장서서 '조기 전당대회론'을 주장하고 있는 이종걸 원내대표는 본디 계파색이 없는 인물이지만, 원내부대표단 10여명을 지명한 원내지도부의 수장이다. (☞관련 기사 : 비주류 '조기 전당대회'론에…文 '당원·국민 재신임'으로 응수)
계파·세력그룹보다도 인물 면에서 차기 대선주자급으로 점쳐지는 인사들 가운데에는, 이날 공개 입장 발표를 한 김 전 최고위원 외에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문 대표에 대해 강하게 날을 세우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아무도 혁신안이 통과된다고 당이 혁신적으로 바뀌고 총선 승리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보지 않는다"며 "지금은 대표의 미래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 당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때"라고 일침을 가했다. 안 전 대표는 "결과에 상관없이 극심한 분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재신임이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 혁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힘을 모을 때"라고 했다.
박영선 전 비대위원장은 당내 현안에 대해 '침묵 모드'를 유지하며 국정감사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최근 북콘서트에서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정계 복귀 필요성을 언급하고 문 대표를 비판해 주목을 끌었던 데다가(☞관련 기사 : '反문재인' 박영선, 손학규 정계 복귀 촉구?) 최근 김한길 전 대표와 가까운 '민집모' 소속 의원들이 16일로 예정한 혁신안 평가 토론회에 박 전 위원장을 초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목을 끌고 있다. 박 전 위원장 측 관계자는 "박 전 원내대표는 당내 상황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국정감사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언론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일축했다.
문재인의 옹호자들
문 대표에 대한 비판 세력이 이처럼 비주류 주요 계파와 인물들에 범주류 일부(정세균계)가 가세한 형국이라면, 문 대표의 '재신임' 결단을 이해 내지 지지한다는 쪽은 2.8 전당대회 후 당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로 분석된다. 특히 지도부의 일원인 전병헌 최고위원은 계파상으로는 정세균계로 분류되지만 이번 재신임 이슈에서는 문 대표 지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역시 정세균계인 최재성 총무본부장도 "문 대표가 언급한 '국민 여론조사 50%, 권리 당원 투표 50%' 방식이 합리적"이라며 이와 유사한 입장을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 최고위원은 이날 "문 대표가 재신임 조기 강행을 선택했다"며 "안타깝지만 현직 당 대표가 내릴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 최고위원은 "재신임 카드가 나온 이상, 그 방법과 의미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짧을수록 좋다"며 "하루라도 빨리 재신임 투표 결과에 따라 당을 수습해 가는 것이 당의 통합을 위해 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정 고문의 '연석회의' 제안을 겨냥한 듯 그는 "더 큰 통합이나 다른 버전의 테이블을 만들더라도 지도력이 정비되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하기도 했다.
486 운동권 출신 및 당내 진보 성향 의원들 상당수도 '문 대표가 다 잘한 것은 아니지만, 비판만 하기에는 문 대표가 짊어진 짐이 너무 크다'는 수준의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486 그룹의 대표 격으로는 이인영·우상호 의원이 꼽히고, 이들은 진보 성향 초·재선 모임인 '더좋은미래' 모임의 핵심 멤버이기도 하다.
이날 우상호 의원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재신임 방법을 가지고 왈가왈부 하는 것은 아주 협량하다"며 "그렇게 치사하게 왈가왈부 하는 게 아니다"라고 당내 비주류룰 겨냥해 강경한 비난을 쏟아낸 것은 그래서 주목받는다. 우 의원은 "당원과 국민의 의견을 묻겠다는 취지로 재신임 방식을 제시한 것 같은데 이 정도는 받아들여야 한다"며 정 고문의 '연석회의' 주장을 겨냥해서도 "원탁회의에서 대표가 선출된 게 아니지 않느냐. 원탁회의는 재신임이 되지 않았을 때, 비대위를 꾸릴 때 중진들의 협의 기구"라고 일축했다.
'김상곤 혁신위원회' 역시 문 대표가 혁신안 통과에 대표직을 건 만큼, 혁신안 관철과 실천을 위해 당분간이라도 문 대표 측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같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특히 혁신위원인 조국 서울대 교수는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비주류 측의 조기 전대론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조국 "혁신안 제쳐두고 조기전대? 같이 망하는 길")
안희정 충남지사는 문 대표의 재신임 투표 결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지만 '혁신안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면서 사실상 문 대표에게 힘을 싣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 지사 측 관계자는 "최근 안 지사는 충남도당 당보에 기고한 글에서 '혁신위가 합법적 프로세스를 통해 권한을 위임받은 만큼, 혁신안을 중심으로 단결하는 것이 성숙한 당원의 도리'라는 메시지를 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재신임은 문 대표의 결단"이라며 "안 지사는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밝힌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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