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아, 오늘은 '500일 학교 가자' 행사가 있어 왔어. 거기 세상은 어떤 곳인지, 좋은 것만, 하고 싶은 것만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항상 봄이겠지?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 우리 아들은 멀고 먼 수학여행을 간 거야…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단다. 우리 아들은 엄마를 지켜보고 있겠지. 교실에 자주 오네. 그때마다 엄마는 더욱 강해지려고 해. 아들아 사랑한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 권순범 군을 잃은 최지영 씨는 아들이 생전 앉았던 자리에 준비해온 노란 국화를 놓았다. 그간 몇 번이나 온 그였다. 그래도 그새 쌓인 먼지가 있었나 보다. 손수건으로 정성스럽게 아들 자리를 닦기 시작했다.
얼마를 그렇게 닦았을까. 아들 자리에 앉아서는 책상에 놓인 아들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눈물이 쏟아졌다. 허탈한 웃음과 함께.
"내가 이래 우네. 자식 자리 앞에서…."
아이들의 공간, 내년엔 폐지?
4.16가족협의회, 416연대, 안산시민대책위 등은 22일 '세월호 참사 500일, 애들 보러 학교 가자'를 경기도 안산 단원고에서 진행했다. 단원고에는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의 빈자리를 그대로 보존해놓고 있다. 세월호 참사 500일 주간을 맞는 첫 행사였다.
하지만 이곳도 내년이면 어떻게 될지 모를 운명이다. 단원고 일부 학부모 등은 더는 아이들의 교실을 보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경기도교육청에 전달했다. 면학 분위기 등이 이유다.
안산 단원고 1·2학년 재학생 학부모 10여 명은 지난 7월 17일 경기도청을 항의 방문해 "교육감은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학생들의) 2학년 교실을 명예졸업식 때까지 보존하기로 한 약속을 지켜달라"고 촉구했다.
단원고는 작년 12월 "졸업 때까지 2학년 교실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이재정 교육감의 방침에 따라 세월호 희생 학생들이 사용하던 10개 교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당시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한때 2학년 교실 보존을 두고 반대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학생들의 죽음을 기리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추모관'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기억하는 교실이 존치되길"
세월호 유가족은 반발한다. 아이들의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때문이다.
"아이가 살아 있을 때, 학교에 간 적이 많다. 내 기억에 아이들의 교실은 재미있게 놀던 공간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아이들이지만 그때의 모습을 아직 기억한다. 그렇게 아이들이 즐겁게 지냈던 교실을 없앤다고 한다. 가슴 아프다. 아이가 행복하게 놀고 공부했던 공간을 없애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기억하는 교실을 없애지 말고 지켰으면 한다."
이날 열두 번째 '304 낭독회'가 단원고에서 열리기도 했다. '304 낭독회'는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작가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낭독회다. 이날 낭독회에는 단원고 교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만영 평론가는 '교실'을 두고 "세월호와 함께 바다속으로 가라앉은 학생들에 대한 기억의 저장소"라고 표현했다. 그는 "선생님 및 친구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꿈을 키워나갔던 아이들의 공간은 엄연히 그 아이들의 '집'"이라며 "누군가는 우리 기억은 기념비나 추모지 같은 물리적 수단에 의지하지 않기에 그것들을 굳이 조성하지 않아도 우리 기억은 항존 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 말은 공간의 의미를 쉽게 기각하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교실은 육체성을 상실해버린 우리 아이들의 마지막 남은 거주 장소"라며 "우리는 이들의 죽음을 증언하는 공간뿐만 아니라 삶을 증언하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아이들에 대한 기억의 쇠퇴에 저항할 수 있는 매개의 공간으로 (교실은)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곳에 머문 이들의 삶을 기억할 것인가"
소설가 김탁환 씨는 "어떤 공간을 지킬 것인가 없앨 것인가 하는 것은 그곳에 머문 이들의 삶을 기억할 것인가 잊을 것인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단원고 2학년 교실은 세월호 사건을 겪은 학생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모인 공간이다. 이곳에 와서, 걸상에 한 번 앉아보고,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느끼며, 깊게 심호흡하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의 일상을 그릴 수 있다.
그 학생들의 방을 담은 사진전을 본 적이 있다. 그렇게 저마다의 방에서 밤을 보낸 학생들이 이 교실에 모여 서로의 눈짓과 몸짓을 나눈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비유나 상징을 동원한 추모 공간도, 생생한 교실에 미치지 못한다. 학생들을 존중하고, 그 삶의 가치를 되새겨야 한다면 이 유일무이한 공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다."
이날 낭독회에 참석한 한 대학생은 "보존은 기억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는 역사적 사건의 장소가 되는 공간을 존치하고 기념하는 게 아니라 없애왔다"며 "지금도 세월호 참사의 상징적 공간이 되는 교실을 보존하지 않고 없애려 하고 있다.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교실 책상, 그리고 의자에 적힌 내용 등은 아이들과 자기 스스로를 등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며 "우리는 큰 사고로 희생된 사람은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와 똑같은 사람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 것에 대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서 교실은 꼭 보존돼야 한다"며 "이제 시간이 지났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이유나 현실적 문제 등은 우리가 소중히 해야 하는 '기억'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핑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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