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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캠핑·먹자 캠핑'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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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캠핑·먹자 캠핑'에서 벗어나자

[작은것이 아름답다] 캠핑의 기쁨

매킨리를 기다리던 날

몇 해 전 알래스카를 여행할 때다. 캐나다에서 알래스카 하이웨이를 따라 시작한 여정은 두 달 가까이 걸렸다. 그 여행 동안 잠자리는 모두 캠핑장이었다. 여름날의 북극은 아름다웠고,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밤은 어느 캠핑장에서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알래스카 여행이 중반을 넘어섰을 때 디날리국립공원을 찾았다.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미터)가 있는 디날리는 알래스카에서도 가장 엄격하게 관리되는 국립공원이다. 야생의 자연을 해치지 않도록 탐방객에게는 최소한의 편의만 제공한다. 공원 안에 일반 차량은 진입을 금지하고 있다. 오직 국립공원에서 운영하는 투어버스를 이용해 관람해야 한다. 국립공원으로 드는 외길도 비포장이다. 그 외길의 끝에 원더 레이크 캠핑장이 있다. 캠핑장까지는 국립공원 정문에서 버스로 6시간 30분 거리다.

원더 레이크 캠핑장에 닿았을 때 감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곳의 캠핑 시설은 작은 텐트를 칠 수 있는 사이트와 식량 저장고(곰의 습격을 예방하기 위해 설치해 놨다), 재래식 화장실, 수도꼭지 1개가 전부다. '캠퍼'들이 쳐놓은 텐트는 나무들이 허리춤을 넘지 않는 툰드라의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보일 듯 말듯 박혀 있었다. 캠핑장 시설이 좋기로 소문난 미국에서 이처럼 간소한 캠핑장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보낸 캠핑만큼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곳이 없다.

▲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미터)가 있는 디날리는 알래스카에서도 가장 엄격하게 관리되는 국립공원이다. 야생의 자연을 해치지 않도록 탐방객에게는 최소한의 편의만 제공한다. 캠핑장은 온종일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아침이면 캠퍼가 떠나고, 또 다른 캠퍼가 들어왔지만 발자국까지 죽여 가며 조용조용 움직였다. ⓒ김산환

▲ 알래스카의 여름은 모기 천국이다. 얼굴을 가리는 모기장을 쓰지 않고는 생활할 수 없을 정도다. 밥을 먹을 때도 모기장을 살짝 들추고 재빨리 숟가락을 입속으로 밀어 넣어야 할 만큼 모기가 많다. 그런 열악한 조건이었지만 캠퍼들의 표정은 여유가 넘쳤다. ⓒ김산환

캠핑장을 찾은 이들은 모두 최소한의 장비를 이용했다. 텐트도 혼자 드러누우면 그만인 아주 작은 것이었고, 먹을 것이라고 해야 샌드위치나 간단한 즉석식품이 전부였다. 풍부한 것이 있다면 하나, 아주 다양한 종류의 모기약이다. 알래스카의 여름은 모기 천국이다. 얼굴을 가리는 모기장을 쓰지 않고는 생활할 수 없을 정도다. 밥을 먹을 때도 모기장을 살짝 들추고 재빨리 숟가락을 입속으로 밀어 넣어야 할 만큼 모기가 많다. 그런 열악한 조건이었지만 캠퍼들의 표정은 여유가 넘쳤다. 이들의 일과는 툰드라를 따라 난 트레일을 걷거나 구름 속에 숨은 매킨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먼 산 바라기를 하는 것뿐이다. 캠핑장은 온종일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아침이면 캠퍼가 떠나고, 또 다른 캠퍼가 들어왔지만 발자국까지 죽여 가며 조용조용 움직였다. 오직 매킨리를 뒤덮은 구름만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캠퍼들을 황홀경에 빠트렸다.

도심에서 자연으로 장소만 달리한 소비캠핑

요즘 캠핑이 대세다. 바람이 불었다 하면 무섭게 몰아치는 우리 사회에서 캠핑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여가가 없다. 수도권 근교의 캠핑장은 주말이면 캠퍼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빈다. 휴가철은 말할 것도 없다. 전국의 산과 계곡이 캠핑족으로 넘쳐나다 보니 일부 캠퍼들은 여름에는 아예 캠핑을 포기하기까지 한다. 캠핑 장비도 비약해서 발전했다. 캠핑장에서는 정말 집채만 한 텐트를 쉽게 볼 수 있다. 또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장비들이 초보 캠퍼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든다. 아웃도어도 하나에서 열까지 제대로 갖추고 즐기려는 캠퍼들 마음이 그 장비에 담겨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캠핑 열풍은 조금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자연과 하나가 되려는 서구의 캠핑 문화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분명하다. 우리 사회의 캠핑은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통한 휴식이라는 캠핑이 실종됐다. 캠핑이 점점 어른들을 위한 놀이로 변질되고 있는 느낌이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도심에서 먹고 마시고 놀던 것을 캠핑장으로 옮겨와 똑같이 하고 있다. 캠핑장의 일과를 보면, 점심부터 시작된 먹고 마시는 일이 새벽까지 이어진다. 저녁이 되면 캠핑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텐트마다 불을 피우고 삼겹살을 굽느라 정신이 없다. 그 사이를 아이들은 소란스럽게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술잔을 돌리기에 바쁘다. 어두워지면 어른과 아이들은 두 패로 나뉜다. 어른들은 화롯불을 가운데 두고 여전히 부어라 마셔라 하고, 아이들은 노트북이나 닌텐도 게임을 하며 논다. 도심에서 자연으로 장소만 달리했지 어른 중심의 소비 문화는 그대로다.

캠핑은 자연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숲과 강, 산에 사는 모든 생명들의 품에서 하룻밤 머물다 가는 것이다. 캠핑장에서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처럼 행동해야 한다. 자연 속에서 이뤄지는 생명의 질서를 깨트려선 안 된다. 이런 캠핑문화가 정착이 되려면 빨리 '먹자캠핑'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한국의 음식 문화를 부정할 수는 없다. 샌드위치 한 조각이면 충분한 서양인들과 달리, 한국인에겐 밥과 국, 반찬이 필요하다. 또한, 농경 사회에 뿌리를 둔 한국인들이 한 끼 식사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 하다 싶을 만큼 캠핑장에서 먹는 것에 집착하는 모습은 이제 변해야 한다.

▲ 좋은 캠핑은 유명 메이커의 좋은 장비에 있지 않다. 진정한 캠퍼들은 상황에 맞는 꼭 필요한 장비만 사용한다. 집에서 사용하던 것을 가져가도 문제 될 게 없다. 캠핑은 자연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자연의 일부처럼 행동해야 한다. ⓒ김산환

소형 자동차 한 대 값 캠핑 장비

캠핑이 본래의 의미에서 곁가지로 빠지는 이유는 또 있다. 장비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다. 캠핑은 생활 공간을 집에서 자연으로 옮기는 일이다. 최소한이기는 하지만 집에서 필요한 장비는 캠핑장에서도 필요하다. 다만, 모양과 규모에서 차이를 보일 뿐이다. 따라서 캠핑은 모든 아웃도어를 통틀어서 가장 많은 장비가 필요하다. 문제는 규모에 있다. 오토캠핑용이라 불리는 장비들은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다. 차량이 캠핑 장비 운반의 수고를 대신해 주면서 캠핑 장비의 부피와 무게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어졌다. 캠퍼와 장비 제조 업체 모두 편리성만 극대화시키면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장비가 커지면 그에 따른 부작용도 생긴다. 우선 캠핑장이 커지게 된다. 텐트를 치는 사이트의 넓이는 텐트에 맞춰 넓게 조성해야 한다. 이전에는 텐트 두 동을 치던 곳이 오토캠핑용 텐트는 한 동을 치기도 벅차다. 사이트까지 진입로도 만들어야 한다. 주차장에서 사이트까지 그 무겁고 많은 캠핑 장비를 손수 나르려는 캠퍼는 없다. 캠핑장의 자연이나 환경은 우선 고려 대상이 아니다. 편리성만 좋으면 최고의 캠핑장 대접을 받는다.

문제가 또 있다. 장비가 대형화되면서 가격도 가파르게 올라간다. 캠핑 장비를 제대로 갖추려면 소형 자동차 한 대 값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캠핑을 시작하려던 이들 가운데는 비싼 가격에 놀라 캠핑을 아예 포기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캠퍼들의 열렬한 캠핑 장비 사랑에서 비롯한 것이다. 마치 캠핑 장비를 다 갖추지 않으면 초보 캠퍼 취급하는 분위기, 캠핑 장비에 대한 지나친 관심의 폐해다.

유명 메이커의 좋은 장비를 갖췄다고 그 사람이 경험 많은 노련한 캠퍼는 아니다. 진정한 캠퍼들은 상황에 맞는 꼭 필요한 장비를 사용한다. 캠핑장의 조건과 환경에 맞춰 장비를 선택할 줄 아는 캠퍼가 노련한 캠퍼다. 설령 장비가 부족하다고 해도 부끄러워하거나 초라하게 여길 일이 아니다. 여름에는 하늘을 가려줄 텐트 하나만 있으면 캠핑을 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나머지는 집에서 사용하던 것을 가져가도 문제 될 게 없다.

다만, 여름 한 철 떠나는 일회성 캠핑이 아닌, 봄가을에도 지속해서 캠핑을 즐기려면 전문 캠핑 장비가 필요하다. 이 장비들을 하나씩 사 모으는 재미, 이 재미도 아주 쏠쏠하다. 이렇게 마련한 장비는 그냥 장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캠핑장에서 가족이 나눈 소중한 추억이 된다. 이를테면 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어 오래된 장비를 이용해 캠핑을 갔다고 치자. 이 청년이 가져간 텐트는 유년 시절에 아빠와 함께 쳤던 것이고, 엄마와 함께 밤벌레 소리를 들으며 잠들던 것이다. 행복했던 유년 시절이 그 텐트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아이와 함께 캠핑을 가는 진정한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묻는다. 캠핑 가면 무엇이 가장 좋으냐고. 내가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똑같다. 랜턴이 어둠을 밝히는 불빛을 만들면서 내는 연소음, 텐트 속까지 찾아오는 풀벌레 소리와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안락의자에 몸을 묻은 채 모든 생각의 끈을 놓고 쉴 때다. 하나 더, 모닥불만 피워 놓으면 긴긴 숲 속의 밤도 지상에서 가장 아늑한 공간이 된다.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바로 가기 : <작은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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