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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짝패>(2006년)는 나에게 한국 영화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고쳐먹게 한 영화였다.
물론 나는 영화를 좋아했고, 한국 영화도 좋아했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한국의 영화들은 우리의 현실과는 상관도 없고, 있다고 해도 그냥 관련만 있어 보이는 척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학자로 살아온 내가, 정말로 영화가 우리의 얘기를 하고 있다고 느낀 첫 번째 영화가 바로 <짝패>였다. 흥행으로 보면, 그렇게 성공한 영화는 아니었다. 당시 흥행에 성공한 영화 <킬빌>을 베꼈느니, 안 베꼈느니, 그런 얘기들이 당시에 <짝패>에 대해서 내가 들었던 얘기의 거의 대부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 영화는 너무 선구적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지방이 관광 아니면 살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고, 그걸 위해서 카지노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영화 <짝패>의 속 얘기였다. 치고 받고, 찌르고 쑤시고, 그렇게 고향 친구들이 서로 죽어가는 그 속에는 지방의 한 도시에 카지노를 만들고자 하는 시대의 흐름이 있었다.
곁다리로 하는 얘기지만, 그 시절에 류승완 감독이 포착한 카지노 얘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도시마다 여전히 카지노를 놓겠다고 하고 있다. 그걸 넘어서, 세월호의 아픔을 넘어 크루즈 선을 전국 도시에 놓겠다고 하는데, 그 핵심 사항은 역시 카지노이다. 지방 소도시에서 카지노를 하겠다는 게 영화 <짝패>라면, 그걸 그냥 배에서 하자고 하는 게 세월호 이후에 통과된 크루즈법에 들어가 있는 '배 안 카지노' 얘기이다.
2006년에 카지노가 결국 한국 자본주의가 봉착하게 된 폭력적이며 자가당착적인 상황의 본 모습이라는 것을 영화 <짝패>에서 본 후로, 난 류승완 감독의 직관적이며 통합적인 성찰에 대해서, 무조건 존경한다. 그에게 그 시절,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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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짝패>에,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악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서울 본사에서 모든 걸 결정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런 사람은 그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짝패>에는 현지의 무식한 잡것들과 서울에서 파견된, 나름 유능한 직원들만 등장한다.
"어이, 회장님 죽은 거 아니쟎여."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서울에서 파견된 조 사장의 머리를 이범수가 자신의 이름의 새겨진 명패로 짓이겨서 죽이는 장면이다. 어차피 파견직, 죽이나 마나, 별 상관없지 않냐, 그런 얘기이다.
<짝패>에서 서울 본사는 이 짧은 몇 마디의 실루엣만으로 등장한다. 누가, 왜 보냈는지, 그런 건 카지노로 갈라진 지방 도시에서 알지도 못하고, 볼 수도 없는 얘기이다.
서울에서 잠시 놀려왔다가 사건에 휘말린 형사, 정두홍도 죽고, 동네의 토속 깡패 이범수도 죽는다. 그들은 뭔지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싸우다 죽는다. 2006년, 류승완의 세계는 그렇게 본사와는 멀고도 먼 곳에서 모순 투성이로 고등학교 절친들이 서로 찌르고 쑤시고 죽어가는 세계를 보여주었다.
학자로서 내가 본 2006년, 대한민국은 딱 그랬다. 토건과 토호, 다만 현실은 영화와 달리,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지는 않았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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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짝패>의 그 슬픈 얘기는 이제 드디어 서울 본사로 올라왔다. 건물 하나를 제대로 올리려고 하는 아직은 마이너인 건설사 사장들과, 그들에게서 돈을 받는 검사와 경찰의 스폰서 관계가 영화 <부당거래>의 주제이다.
영화 <짝패>의 친구들끼리의 부조리가 드디어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건설사들이 어떻게 거래하고, 그들의 힘을 공권력과 나누는지 보았다. 영화는 역시 슬펐다.
유해진을 비롯한 건설사 사장 둘은 영화 끝나기 이미 전, 벌써 죽어버렸다. 그리고 그들을 쫓던 광역수사대의 황정민 역시 죽는다. 그의 죽음이 더욱 슬픈 것은, 오해가 겹치고 겹쳐서 결국 그의 동료들에게 죽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짝패>와 <부당거래>는, 실제 나쁜 놈들은 아무 상관도 없고,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게 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부당거래>의 진짜 악인은 검사 류승범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류승범에게는 아무 일도 없이 좋은 일만 벌어질 것이라는 암시가 벌어진다.
가난한 사람들끼리, 없는 사람들끼리, 흔한 플롯이다. 그리고 그 흔한 플롯에 류승범은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건설사 사장 둘을 슬쩍 끼어넣는다. 그래봐야 깡패 혹은 그 비슷한 출신에, 건물 하나를 성공적으로 지을 거냐 말거냐, 목숨 걸고 싸우는 건설사 사장 둘의 죽음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끼어넣는다.
영화 <부당거래>는 <짝패>를 거쳐 드디어 본사에 왔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어이, 회장님 죽은 거 아니쟎아."
<짝패>의 필호가 했던 그 회장님 얘기, 그 얘기는 아직 아니다. 여기까지가 <부당거래>. 충분한 힘을 갖추지 못한 마이너들의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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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영화 <베테랑>, <짝패>를 거쳐 10년 만에 류승완은 드디어 서울 본사에 도달한다. <짝패>의 그들은 건설사와 싸우는 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냥 '서울 본사'라고 표현했다. <부당거래>의 건설사 사장들은, 자신들이 본사인지 아닌지, 사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경찰도 만나고 검사도 만났다. 회사 사장인 유해진과 경찰 황정민이 회사 구내 식당을 배경으로 통화하고 있을 때, 누가 봐도 황정민이 우위에 있었다.
그 황정민이, 똑같은 경찰 신분으로 유아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관객 모두는, 다른 건 몰라도 유아인이 황정민보다 높은 신분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했을 것이다. 그렇다. 드디어 류승완의 카메라는 10년 만에 서울 본사, 거기에 계시는 높은 분들, 바로 그 '회장님' 얘기로 올라오게 되었다.
<짝패>, <부당거래>, <베테랑>, 이렇게 세 개의 영화는 구조상으로 지방 어느 곳에서 벌어지는 시골의 얘기에서 서울 중의 서울, 재벌 중의 재벌, 그 한 가운데의 얘기로 향하게 되는 '본사' 트릴로지(3부작)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세 편의 영화는 먼 곳에서 중심으로, 지방에서 서울로,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들어간 핵심의 인물, 바로 그 문제적 인사가 유아인이다. 당연하겠지만 그리고 그래서 슬픈 게, 류승완의 카메라가 유아인에게까지 오기 전까지 죽어간 수많은 인물들을 알지도 못한다.
"네가 옛날부터 손은 참 따뜻했어."
고등학교 친구 김범수가 찌른 칼을 배에 맞고, 그가 죽으라고 손을 움켜쥔 정두홍이 한 대사이다. 별 것도 없는 지방의 작은 고등학교 친구들이 맞게 된 운명, 그것과 서울 본사의 재벌 2세인 유아인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명령한 사람도 다르고, 지시한 사람도 다르고, 운명도 다르다.
그러나 10년에 걸쳐 서울 '본사'로 향한 류승완의 카메라는, 유아인에게 그의 전작들에 있던 서글픔을 단 한 편의 샷,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그 클라이막스로 끌고 오고 있다. 그의 전작들을 이미 본 관객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이 클라이막스 단 한 편에서 박수치고 기꺼이 감동할 수 있게 카메라가 사람들을 끌고 오고 있다.
해피엔딩, 이 10년에 걸친 트릴로지의 마지막 순간은 선이 악을 이기고, 서민이 부자를 이기고, 순진함이 악랄함을 이긴다, 그렇게 간결하게 마무리 짓는다. 이 장면의 구도는, <스타워즈> 6편의 마지막 장면과도 같다. 고도로 발달된 우주 제국의 마지막 전투를 결정짓는 것은 그야말로 구석기 시대와도 같은 '이웍'족의 '사랑과 우정'에 의한 전투이다. 기술, 지식, 명분, 다 필요 없고 그야말로 사람의 본능과도 같은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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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 혹은 <매트릭스> 같은 장편 영화들을 흔히 판타지 시리즈라고 부른다. 얘기가 길거나 스펙타클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얘기, 그것을 판타지라고 부르는 것, 그건 당연한 일이다.
류승완의 '본사' 트릴로지, <짝패>, <부당거래>, <베테랑>, 이렇게 이어지는 세 편의 영화는 그래서 판타지이다. 지방에서 토호들을 반대한 사람들이 이기는 일도 벌어지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서울 본사의 바로 그 2세의 적나라한 모습이 시민들에 의해서 목격되는 일이 벌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류승완의 영화는 판타지이다. 좋은 의미로는, 그래서 그는 다큐 감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정색을 하고 그간의 이 스토리를 다큐로 만든다고 했을 때, 과연 제작이 가능했을까, 상영이 가능했을까 아니 누군가 그걸 보려고 할까, 그런 현실의 벽 앞에 서게 된다. 비록 판타지의 형태이지만 엄연히 있을 법한 현실을 즐겁고 재밌게, 그리고 이 정도의 몰입도를 만들어낸 류승완 감독에게 감사할 뿐이다. 비록 판타지의 세계에서라도 진실의 한 단면을 보게 해준 그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10년에 걸친 류승완의 판타지가 끝났다. '온성'이라는 작은 도시에 벌어진 은퇴한 조폭의 사망을 알리는 작은 전화 통화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가 재벌 2세 유아인의 행패극까지 오는 동안, 내내 행복했다. 진실의 단면이라도 보는 것, 학자로서는 행복이다.
작은 질문이 남는다. 이제 서울 본사의 속내까지 들어온 류승완의 카메라, 이제 다음에는 어디를 향할 것인가? 본사 중의 본사로 갈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 또 다른 힘으로 갈 것인가? '본사' 3부작을 다 본 지금, 여전히 나는 류승완의 카메라가 향하는 다음 지점을 궁금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설령 판타지라도, 한국 경제가 꼭꼭 숨겨놓은 모습을 그렇게라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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