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노동 시장 구조 개혁 논란이 뜨겁습니다. 정부-여당은 '개혁' '선진화' 등의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반면 야당과 노동계는 '개악' '구조 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고요. 임금 피크제, 취업 규칙 불이익 변경, 임금 체계 개편, 일반 해고, 노동 시장 이중구조, 기간제 기한 연장 등 알 듯 모를 듯 용어들이 쏟아지다 보니 누구 말이 맞나 알쏭달쏭합니다.
자, 그래서 하나씩 쉬운 말로 풀어서 정부-여당의 시장 개편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3가지, △임금 피크제와 취업 규칙 불이익 변경 △일반 해고 요건 완화와 가이드라인 논란 △기간제 사용 기한 연장 및 파견 허용 업종 확대를 하나씩 뜯어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 모두 남의 일이 아닙니다. 당장에 독자 여러분의 일자리와 미래에 직결되는 정책들입니다.
[노동 시장 구조 개혁 뜯어 보기 ①] 임금 피크제,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 있다
[노동 시장 구조 개혁 뜯어 보기 ②] "업무 성과가 C급? 그럼, 넌 해고야!“
지금까지는 정부-여당의 노동시장 구조개편 정책을 하나씩 뜯어봤습니다. 이번 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잠시 복기를 해볼까요.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확대 시행하겠다는 임금피크제. 신규 일자리의 대량 창출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프레시안>이 만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일반해고 요건 완화는 사용자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죠.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를 쉽게 하겠다는 것은 이론이자 포장일 뿐, 실제 현장에서는 무엇보다 강력한 노동자 통제 수단이 될 거라는 게 노동계의 우려입니다.
기간제 사용기한 연장은 기업의 비정규직 사용 유인을 외려 키울 것으로 보입니다. 숙련직 노동자가 필요한 곳에까지 기한이 4년으로 연장된 비정규직을 쓸 수 있게 되니까요. 파견 허용 업종 확대는 비정규직 중에서도 가장 '악질’로 평가받는 파견직의 확대를 아예 목표로 한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앞선 기사들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번 기사에선, 임금피크제와 일반해고 요건 완화 이 두 가지와 모두 관련한 '불공정한 정책 설계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앞의 기사에서 설명해 드렸듯, 정부는 이 두 정책을 현장에 도입하기 위해 관련 법인 근로기준법을 개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선 각 회사의 취업규칙을 지금보다 더 쉽게 바꿀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내릴 작정이고요, 일반해고 요건 완화와 관련해서 역시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의 절차나 사례 등을 종합한 가이드라인이 발표될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이 '가이드라인'을 작성할 때 무엇을 참고하게 될까요. 여러분이 정책 설계자라면 어떤 기준, 누구의 입장을 반영해 가이드라인을 만드시겠습니까. 법처럼 '강제력'이 있지는 않지만, 현장에서는 권위 있게 받아들여지는 가이드라인이 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할까요.
높은 소송 문턱→기업에 유리한 판례→판례를 종합한 정책
정부-여당이 선택한 것은 '판례'입니다. 취업규칙, 일반해고와 관련해 이전까지 나온 '판례'를 가이드라인 작성의 '참고서'로 삼겠다는 것이죠. 판례라고 하니 제법 그럴싸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판례는 과연 공정할까요? 판례를 통한 정책 설계는 과연 합리적일까요?
소송을 해본 분은 아실 겁니다. 법적 분쟁을 한다는 것은 굉장한 부담입니다. 우선 변호사 비용도 들지요. 게다가 해고, 체불임금 등 노동 관련 법적 분쟁은 다른 법적 분쟁과 달리 1심 지방 법원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습니다. 노동 사건은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 및 심판을 거쳐 1심 법원으로 가게 됩니다. 사실상 3심제가 아니라 5심제인 것입니다.
노동조합이 있고 어느 정도의 임금 소득이 뒷받침되는 노동자들은 그나마 소송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노조 가입률은 잘 아시다시피 10% 전후 수준입니다. 중소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며 노조도 없는 노동자가 취업규칙 변경이나 해고에 반발하며 사장님을 고발한다?!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미 해고당한 노동자가 그거 고발 못 하겠어?'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 텐데요. 현실에선 해고 노동자들 또한 법원을 통한 권리 구제 방법을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수년에 걸쳐 5심을 모두 버티고 승소해서, 그 극단의 갈등을 겪은 사장님 아래에서 다시 일을 하겠다는 선택이니까요.
이처럼 사법 분쟁은 애초부터 노동자들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습니다. 비교적 물적·인적 자원이 더 풍부한 사장님들은 버텨낸다고 해도, 노동자들은 소송을 하다가도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죠. 이런 현실 속에서 지난 시간 쌓여온 판례들을 들고, 정책을 설계한다…. 노동자들의 입장보단 기업들의 입장이 정책 설계에 더 반영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정부가 믿는 구석? '사회 통념상 합리성' 판결뿐…
특히나 취업규칙과 관련해선 판례 자체도 별로 나온 게 없는 상황입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데요, 이를 설명하기 전에 일단 정부가 가이드라인 설계에 참조하겠다며 제시한 판례를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부가 제시한 판례는 대체로 취업규칙 중에서도 '퇴직금' 조항과 관련한 법적 분쟁들 끝에 나온 판례들입니다. (잠깐, 여기서도 알 수 있습니다. 퇴직금 규정을 두고 다퉜다는 것 자체가, 이 소를 제기한 노동자는 이미 해당 일터를 떠난 후란 것을 시사합니다. 일하면서 사장님을 고발하긴 진짜 어렵죠.)
그리고 이들 판례는 하나같이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을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에 정해진 취업규칙 변경 절차(노동자 과반 동의 또는 노동조합 동의)를 거치지 않아도 일방적인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하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냐 없냐는 어떻게 따질까요. 그간의 판례를 종합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①취업규칙 변경으로 노동자가 입게 되는 불이익의 정도 ②사용자 측의 취업규칙 변경 필요성의 내용과 정도 ③변경 후 취업규칙 내용의 상당성 ④대상 조치 등을 포함한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 상황 ⑤노동조합 등과 교섭 경위나 노동조합이나 다른 노동자의 대응 ⑥동종 사항에 대한 국내 일반적인 상황 등.
이제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대강 그려지시죠? 위의 여섯 가지 정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노동자의 동의를 거치지 않더라도,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하다"는 게 정부의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의 핵심 내용입니다.
취업규칙 변경 무효 소송, 걸어도 안 걸린다
그렇다면 이와는 다른 결과를 제시한 판례가 있을까요? 그게 궁금해서 법원 사이트에 가서 판례 검색을 마구 해보았는데요. 신기할 정도로 취업규칙과 관련한 판례는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해고, 임금, 노사 분규 등과 관련한 판례와 비교하면 그 수가 눈에 띄게 적은 편입니다.
해고나 파업 같은 극단적인 상황보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현장에선 더 일상적으로 많이 일어나고 있을 텐데, 판례는 더 적다….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그래서 노동법 전문 변호사들에게 '취업규칙 소송은 잘 안 하십니까'라고 물어봤습니다. 역시, 여기에도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변호사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렇습니다. 법원은 취업규칙 또한 다른 법들과 비슷하게 법적 효력을 가진 것으로 보기 때문에, 취업 규칙이나 그 변경 절차 자체를 두고 다투는 싸움은 애초에 받아들이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이를 소송 용어로 쓰면 '각하'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민법에 적힌 어떤 한 조항을 들고 법원으로 달려가 국회에서의 개정 과정에 문제가 있었으니 이 조항이 불법인지 합법인지를 판단해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미 그 조항이 법이니까요. 다만 헌법에 어긋난다면 위헌 소송은 해볼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령, 사장님이 과반 노동자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취업규칙의 인사 조항을 마음대로 바꾸었을 때 노동자들이 '취업규칙 변경 무효' 소송이나 '취업규칙 효력 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법원은 이를 각하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취업규칙 판례가 거의 없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저도 불과 얼마 전에 취업규칙 효력 정치 가처분을 내봤는데 각하가 됐어요. 변경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법원에서 다툴 수 있어야 하는데 법원이 정말 이걸 어렵게 엄격히 제한을 해놓은 거예요. 저뿐 아니라 다른 변호사들도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따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이해를 못 합니다."
-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권영국 변호사
가이드라인 수법에 녹아 있는 놀라운 '쓰리 쿠션'
이 같은 상황은 굉장히 암울한 미래를 그리게 합니다. 정부가 머지않아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가이드라인을 현장에 내리면, 곧바로 취업규칙 변경 사례가 속속 등장하게 될 텐데요. 그렇지만 위에서 설명한 이유로, 노동자들은 사장님을 사후에라도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으니 안심하라는 정부의 말은 거짓말에 가깝습니다. 그보다는 '쓰리쿠션'을 활용해 가이드라인을 법처럼 권위 있게 만들 작정이죠.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현장에 뿌리고, 기업은 '정부 말을 따르겠다'며 취업규칙을 바꾸고, 노동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어도 사법부의 구제 요청 자체를 못 하는 놀라운 쓰리쿠션.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기에 뿌릴 '사탕 가루' 만들기에 정부-여당은 요즘 분주합니다. 바로 최근 언론 지면을 계속 장식 중인 '노·사·정 대타협'이 그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저도 여기저기에 물어봤습니다. 법을 바꿀 것도 아니고 가이드라인을 내리겠다면서, 굳이 노사정위원회를 열어 노동계의 동의를 받으려는 건 대체 왜냐고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두쪽 다 비슷한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의 오민규 미조직비정규실장의 말을 빌리겠습니다.
"가이드라인 그거, 그냥 내릴 수도 있겠지 물론. 그런데 그렇게 일방적으로 내려버리면 현장에선 권위가 별로 없지 않겠어요. 노조가 힘 센 곳에서는 그 가이드라인 종이 조각 취급해 버릴 텐데. 그런데 '노동계가 동의했다'. '이건 노사정 대타협의 결과물'이다 그러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지지. 개별 사업장에서 싸움이 나서 법원까지 가더라도 '노사정 대타협에 따른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서 했다'고 하면 승소하기도 훨씬 유리하고 말야."
새누리당이 비교적 정부와의 대화에 협조적인 한국노총에 '노사정위 복귀'를 열심히 요청하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기사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이 점을 짚겠습니다. 정부-여당은 이처럼 노동 개혁에 목적지를 이미 정해놓았습니다. 목적지까지 향하는 도로도 정교하게 설계해 놓았고요. 이에 발맞춰 보수 언론은 뻥튀기된 통계와 그럴싸한 이론을 시중에 보급 중입니다. 이거, 사회적 대타협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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