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노동 시장 구조 개혁 논란이 뜨겁습니다. 정부-여당은 '개혁' '선진화' 등의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반면 야당과 노동계는 '개악' '구조 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고요. 임금 피크제, 취업 규칙 불이익 변경, 임금 체계 개편, 일반 해고, 노동 시장 이중구조, 기간제 기한 연장 등 알 듯 모를 듯 용어들이 쏟아지다 보니 누구 말이 맞나 알쏭달쏭합니다.
자, 그래서 하나씩 쉬운 말로 풀어서 정부-여당의 시장 개편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3가지, △임금 피크제와 취업 규칙 불이익 변경 △일반 해고 요건 완화와 가이드라인 논란 △기간제 사용 기한 연장 및 파견 허용 업종 확대를 하나씩 뜯어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 모두 남의 일이 아닙니다. 당장에 독자 여러분의 일자리와 미래에 직결되는 정책들입니다.
[노동 시장 구조 개혁 뜯어 보기 ①] 임금 피크제,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 있다
파견허용 업종 2개 늘린다? 400여 개 더 늘린다!
헉헉. 벌써 4편까지 달려왔습니다. 취업규칙 막 바꾸기, 쉬운 해고 제도를 통한 임금 인하 유도, 노조 활동 위축, 무분별한 해고, 기간제 사용 4년으로 확대를 통한 비정규직 확대를 짚어봤습니다. 이미 여기까지로도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편은 '비정규직과 청년을 위한 것'이란 포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친기업 정책이란 인상을 받으셨을 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기간제 파견 도급 등 생소한 단어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끝까지 읽어주세요. 아직 어마어마한 건더기가 하나 더 남아있습니다. 바로 '파견 허용 업종 확대' 대책입니다. 왜 허용 업종을 확대하려 할까요? 고용노동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현행 파견 대상 업무는 법 제정 이후 크게 변화가 없어 급변하는 노동 시장의 수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파견 제도의 장점*을 잘 살리지 못하는 측면이 있음"
* 근로자의 수요에 맞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기업들의 갑작스런 인력 수요에 대응.
- 2014년 12월 30일 고용노동부 '비정규직 종합 대책 중
여기서 잠깐, 노동부조차도 파견의 장점을 '갑작스런 인력 수요 대응' 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노동자가 잠시 필요에 의해 다른 기업에 가 파견 업무를 봐야 할 때, 또는 기업들이 어떤 일을 할 사람이 잠시 필요한데 계속 채용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때 쓰라는 것이 바로 파견이죠.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은 일시·간헐적 사유가 있을 때에만 3개월짜리 파견 사용이 허용되고, 1번 연장까지 가능하니 최대 6개월만 파견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6개월을 쓰고 버린 후에 새 사람을 6개월간 또 쓰거나, 심지어 6개월이 지난 뒤 집에서 1~2주 정도 쉬게 하고 다시 불러들여 6개월을 쓰는 돌려막기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어렵게 느껴질 때마다 사장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현행법이 어떻게 악용될지 쉽게 그려집니다. (☞ 관련 기사 : 매일 아침 벌어지는 기괴한 '인간 경매', "이름도 몰라요")
학교 선생님, 유치원 교사, 기자 파견도 가능해진다
사정이 이럴진대, 정부는 이런 불법 파견을 바로잡고 필요할 때에만 최소한으로 파견을 쓰도록 정책을 짜는 것이 아니라, 외려 파견 허용 업종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 파견제한 합리화(고령자, 고소득 전문직 등 파견 대상 확대)
ㅇ 고령자* 및 고소득 전문직**의 재취업 활성화를 위해 파견 허용 확대
* 55세 이상 고령자: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및 절대금지 업무를 제외하고 파견 허용
** 고소득 전문직: ①절대금지업무(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를 제외한 한국표준직업분류 대분류1(관리직), 2(전문직) 업무에 대해 파견 허용 ②기간제법과 동일하게 기간제한(2년) 예외
- 2014년 12월 30일 고용노동부 '비정규직 종합 대책' 중
자 보이시나요? 55세 이상이면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파견을 전면적으로 허용해주겠다고 합니다. ('절대 금지 업무'에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지금도 파견이 거의 없는 업종입니다.) 많은 이들이 정년 60세까지 제 일터에서 버티지를 못하고 밀려납니다. 그러나 수명이 늘어난 터라 어떻게든 더 먹고 살아야 하죠. 늙어서 찾아야 하는 새 일자리는 '파견'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또 하나. 고소득 전문직이란 대목입니다. '고소득'이란 말을 살짝 가리고 보겠습니다. 어차피 정부 대책에는 '연봉 6000만 원 이상인 경우'와 같은 구체적인 고소득 기준 같은 건 적혀있지 않습니다. 전문직이어도 박봉인 업종이 있고, 단순 반복직이어도 고연봉인 경우도 있죠. 고소득 기준을 굳이 설정하지 않는다면 있으나 마나 한 단어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한국표준직업분류 대분류 1과 2'이란 부분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2개 업종에 한해서만 파견 허용을 확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대분류이고요. 한국표준직업분류표에 따르면 해당 두 업종에 속하는 세세 분류업무는 400개가 넘습니다. 현재 파견 허용 업종 32개를 400여 개로 확대하겠단 게 정부의 속셈인 것이죠.
파견이 허용될 업종에는 초·중·고 교사, 유치원 교사, 보험 및 금융관리자, 기자, 자동차 부품 등 기술영업원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간 '기간제 비정규직 교사'들의 서러움을 다룬 언론 기사들을 종종 접하셨을 텐데요. 이제는 기간제는 웬 말, 파견직 사용도 가능해질지 모릅니다. 파견 기자는 어떤가요? 보도 자료를 그대로 베껴 쓸 기자를 인력 업체로부터 받아 2년에서 4년 정도 쓰다가 버릴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4년 지나도 직접 고용 의무 없는 '평생 파견'의 탄생
이전 기사에서 쭉 설명드린 파견직을 법에 따라 조건에 맞춰 사용하더라도 2년이 최대 사용 기한입니다. 2년이 지난 후에는 직접 고용으로 전환해야 할 법상 의무가 생깁니다.
그런데 정부 대책이 도입되면, 기간제 사용기한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파견 사용 기한도 4년으로 늘어납니다.
거기에 하나 더. '기간 제한(2년) 예외'를 통해 2년 후 또는 4년 후 직접고용 전환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 이른바 '평생 파견' 사용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파견업체에서 보낸 초등학교 선생님이 몇 년이고 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는 상황이 열리는 셈입니다.
파견법은 지난 세월 이런 식으로 '허용'을 확대하는 변화들을 단계적으로 밟아왔습니다. 처음엔 법상 불가능했던 파견이 가능해졌고요, 그다음엔 파견 허용 업종이 차츰 늘었습니다. 그러더니 2년 이상 파견을 사용하면 2년이 지난 시점부터 직접 고용으로 '간주'한다고 했던 조항이, 직접 고용으로 전환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는 조항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누더기' 법이 되고만 파견법.
종국엔 어디로 향할까요. 전 업종 파견 허용으로 가는 길, 그 중간 어디쯤 우리가 서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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