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노동 시장 구조 개혁 논란이 뜨겁습니다. 정부-여당은 '개혁' '선진화' 등의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반면 야당과 노동계는 '개악' '구조 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고요. 임금 피크제, 취업 규칙 불이익 변경, 임금 체계 개편, 일반 해고, 노동 시장 이중구조, 기간제 기한 연장 등 알 듯 모를 듯 용어들이 쏟아지다 보니 누구 말이 맞나 알쏭달쏭합니다.
자, 그래서 하나씩 쉬운 말로 풀어서 정부-여당의 시장 개편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3가지, △ 임금 피크제와 취업 규칙 불이익 변경 △ 일반 해고 요건 완화와 가이드라인 논란 △ 기간제 사용 기한 연장 및 파견 허용 업종 확대를 하나씩 뜯어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 모두 남의 일이 아닙니다. 당장에 독자 여러분의 일자리와 미래에 직결되는 정책들입니다.
근로기준법 23조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하지 못한다"
해고.
어느 날 갑자기 해고되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청춘을 다 바친 일터에서 좀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해고된다면 앞날이 캄캄해질 것입니다. 일자리는 나와 가족의 미래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니까요. 그래서 해고와 관련된 법·제도 장치는 그만큼 신중히 설계돼야 합니다.
노동법을 다루는 학자들은 공·사석에서 종종 이런 얘기를 하곤 합니다. "근로기준법에 116개 조항 중 다 버린다고 해도 꼭 하나 지켜야 하는 조항이 뭔 줄 알아? 바로 23조 1항이야 23조 1항"이라고요. 근로기준법 23조 1항. 바로, 해고에 관한 핵심 법 조항입니다.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이하 '부당 해고 등'이라 한다)을 하지 못한다."
근로 조건의 최저선, 그러니까 절대 이 선만은 지켜야 한다고 정해 놓은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법적으로 가능한 해고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리 해고입니다.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를 회사가 입증할 수 있을 때 진행되는 집단 해고죠. 또 하나는 방금 이야기한 23조 1항에 따른 일반 해고입니다. 이를 개별 해고라고도 부릅니다.
취업 규칙에 이어 또 '가이드라인'…만병통치약?
정부-여당이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노동 시장 정책 중 큰 덩어리 하나가 바로 이 같은 일반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것입니다. 정부-여당은 '완화'라는 표현보다 '구체화'라는 표현을 선호할 것 같네요. 법 조항 중 "정당한 이유 없이"라는 부분이 추상적인 탓에 해고나 징계 등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빈번하고 사법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너무 많다는 게 정부-여당의 생각입니다.
그럼 그 "정당한 이유 없이"를 어떻게 하려는 걸까요?
정부-여당은 근로기준법 자체를 개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정당 해고냐 부당 해고냐를 두고 다툰 끝에 나온 법원 판례들을 모아 정당한 이유를 목록으로 만드는 '가이드라인(지침)'을 작성하겠다는 게 계획입니다. 짜잔. 또 등장했습니다, 가이드라인. 지난 기사 "임금 피크제,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 있다"에서 설명한 취업 규칙 불이익 요건 완화 시도와 마찬가지입니다. 가이드라인으로 노동 시장을 '개혁'하겠다는 발상이죠. (☞관련 기사 : 임금 피크제,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 있다)
여기서 정부의 노동 시장 개혁 정책이 이처럼 법 개정이 아니라 시장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방식에 집중돼 있다는 걸 한 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일자리의 구성 방식을 바꾸는 문제인데,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들이 여야 합의로 관련 법을 바꾸는 방식이 아니란 게 영 이상하죠. 정책 설계자들은 '가이드라인'일 뿐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현장에서는 '법'처럼 받아들여질 텐데 말입니다.
업무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 활로…성과는 누가 측정?
아직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부-여당이 지난해부터 거듭 말해온 해고의 정당한 이유에는 '저성과'와 '업무 태도 불량'이 들어갑니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시나요? 나는 회사에서 저성과자인가? 혹시 인사 부서에서 나를 업무 태도 불량으로 찍어놓지는 않았을까? 이러다 해고되는 것은 아닌가.
지금까지는 어땠을까요. 일반적으로 근무 성적이 하위권이라고 해서 바로 해고 사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근무 성적 불량이 근로 계약서나 취업 규칙에 해고 사유로 명시돼 있다면 경우에 따라 해고도 가능합니다. (자신의 근로 계약서나 취업 규칙을 이래서 꼭 한 번쯤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를 결정적인 이유로 해고해 법원까지 가서 '정당 해고' 판결을 받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근무 평가가 강제적인 상대 평가여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누군가는 하위권이 되는 경우라면, 해고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들며 이런 성과 인사 제도를 시행해온 기업들을 많죠. KT가 대표적입니다. KT에서는 직원들을 A급·B급·C·급으로 나누어 C급인 이들은 감정 노동이 심한 부서로 보내거나 도서·산간 지역으로 보내 가족들과 떨어뜨리는 제도를 썼습니다. 흔히들 CP 제도라고 불렀죠. (☞관련 기사 : 7개월째 찜질방으로 퇴근하는 51세 그 남자, 어쩌다?)
2011년 KT 내부 고발자가 세상에 공개한 'CP 명단'에는 민영화 이전인 한국전기통신공사(한통)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우르르 포함돼 있었습니다. 워낙에 인사 평가가 강도 높다 보니 KT 직원들의 유난히 높은 스트레스는 사회적 논란 거리가 될 정도였죠. 잊을만 하면 자살하는 직원이 나왔으니까요.
노동계 "해고 요건 완화…일상적인 해고 부추길 것"
이런 사례들을 이미 오래전부터 몸으로 느껴 온 노동계는 그래서 일반 해고 요건을 완화하려는 정부 시도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불법적이었던 일들을 합법화주는 것이란 반발이죠. 해고 요건 구체화는 곧 "사용자의 일상적 해고 조장 분위기"를 만연케 할 것이라고도 노동계는 주장합니다.
특히 일반 해고 요건 완화가 해고 여부를 가리는 기준으로만 작용하지 않을 거란 점도 매우 중요합니다. 노동계는 "사용자가 성과 부진을 내세워 임금 인하를 강요하거나 노동조합 가입을 방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노조법 위반이 되죠.
"지금도 노조 활동 등을 이유로 소위 '찍힌 노동자'들이 업무 성과 부진자로 간주되 전환 배치되거나 해고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정부 안이 구체화되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한국노총 지난해 12월 8일 성명)
이처럼 정부-여당은 불법·탈법 논란을 줄이기 위해서 해고 가이드라인을 만든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되레 다른 종류의 불법·탈법 논란이 무성해질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이래서 노동 정책은 설계하기가 매우 까다롭죠. 현실은 이론과 다릅니다. 책에 나오는 경제학 이론대로, 그리고 준법주의라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결코 굴러가지 않습니다.
해고는 '살인'이란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경영계는 해고를 '경영권'의 하나라고 하죠. 해고만큼 노사가 치열하게 대립하는 사안이 없습니다. 정부-여당이 이번 노동 시장 구조 개편 시도에서 일반 해고 요건 완화를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극렬한 노사정 대립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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