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다시 판도라의 상자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지난 2~3월 노사정위원회 논의에서 워낙 강력한 반대 여론에 부딪혀 '추후 과제'로 돌렸던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파견허용업종 확대를 하반기에 다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인사이드 경제>는 박근혜 정부의 기간제법·파견법 개악이 몰고 올 머지않은 미래를,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의 시점에서 한 번 그려보았다. 필자
장그래, 2년 동안 고생 많았지? 앞으로 2년 더 고생해!
나는야 고졸 계약직 노동자 장그래. 청운의 꿈을 품고 (아버지 지인의 소개로) □□회사에 입사했다. 비록 계약직이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겠지. 곧 2년째가 다가온다. 두근두근, 조마조마, 그래, 죽도록 노력했으니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될 꺼야. 게다가 정부가 나 같은 비정규직을 위해 '장그래법'을 만든단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주니 힘이 나는걸~♩♬
어라? 그런데 법 내용이 뭐가 이래? 2년 만에 해고될지 모르니 4년 동안 일할 수 있게 해준다고? 정규직 선배님들 성과급·상여금 받을 때 '열정 페이'로 박박 기어온 시간을 2년 연장하라고? 그럼 4년 일하면 정규직 시켜주나?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단다. 만일 해고되면 위로금 몇 푼 얹어준다는 게 전부다.
고령자와 400여 개 업종에 '평생 파견'의 문이 열린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집에 들어갔더니 어머니가 고등어를 구워 주신다. 존경하는 대통령께서 고령자 일자리 마련을 위해 파견 허용 업종을 늘려주신다나? "아, 어머니, 그게 아니에요. 소개료 떼이고 파견업체 이윤 떼이고 나면 남는 돈 얼마 없어요. 게다가 2년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도 고령자 파견에는 해당 사항이 없답니다."
우리 잘 나가는 프리랜서 사촌누나, 토목 건축 설계사 사무실에서 못 모셔가서 안달이다. 이번 구정 때 어머니 모시고 큰집에 가서 만났는데 자존심 강한 누나가 풀이 죽어 있다. "그래야, 전문직들도 파견을 대폭 늘린대. 나도 앞으론 파견업체 통해서 일자리 구해야 되나봐."
파견의 빗장이 열리면 …
박근혜 정부 대책에 따르면 어떤 업무이건 <전문가>로 포장만 하면 파견이 허용된다. 완성차 공장을 예로 들자면, 품질관리(QC) 업무를 <자동차 품질검사 지원 전문가 업무>라고 포장하고, 보전 업무는 <기계장치 수리 지원 업무>로 둔갑시키며, 생산관리 업무는 <물류·배송 전문 업무>라 이름붙이고, CKD·수출선적 업무는 <포장·선적 지원 준전문가 업무> 딱지를 붙이면 모두 <전문직>이 되어 파견 노동자를 쓸 수 있게 된다.
심지어 교사도 파견이 가능해진다. 한국표준직업분류상 관리직과 전문직에는 판사,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감정평가사 등 이른바 <사>자 들어가는 업종도 있지만,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초·중·고등학교 교사, 유치원 교사, 보험 및 금융 관리자, 자동차 부품 등 기술 영업원, 기자 등도 포함돼 있다. 이제 교사들도 파견업체 통해 취업하라는 거다.
그래도 뭐 나아지는 게 있지 않겠어?
"근속 1년이 되지 않더라도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법을 고치겠습니다." 아니, 고작 나아진다는 내용이 이런 거야? 조카들 알바 뛰어서 3~4달 일한 뒤에 퇴직금 몇 십만 원 집어주겠다는 게 대책? 그나마도 법 고쳐서 시행하려면 앞으로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한단다. 너희들 지금 개그하니? "아이고~ 의미 없다."
그런데 이 정책은 본래 지난해 최경환 경제팀이 발표한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쉽게 말해 퇴직연금으로 쌓인 돈까지 주식투자에 꼴아 박도록 하려는 정책이다. 그래서 근속 3개월 넘으면 퇴직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3~4개월 알바 퇴직금까지 주식투자에 쏟아 붓는 주식시장 활성화 대책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정부 대책 중에는 여객운송 선박, 철도, 항공사업 중 생명·안전 관련 핵심 업무에는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역시 좀 나아지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이미 파견법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업무에 근로자 파견을 금지하고 있다.
이걸 기간제법에도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뿐이다. 세월호 참사를 보더라도 이런 조치는 오래 전에 이뤄졌어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 대책은 '아' 다르고 '어' 다른 법! 생명·안전 업무에 비정규직 사용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제한'한다는 거다.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법 조항을 어떻게 만들어올지 지켜봐야 저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는 거다.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도 무력화 된다
현대차 사내하청으로 일한다는 고등학교 동창, 그래도 이 친구는 대법원 판결도 났다고 하니 좀 나아지겠지? 그런데 웬걸, 고향에 내려갔더니 곡소리만 들린다. "대법원 판결 회피하려고 촉탁계약직으로 현대차에 뽑혔어." 아니, 현대차가 직접 고용했다면 대박 아닌가? "그런데 2년 지나면 더 일 못한대. 이제 석 달 남았다. 잘리고 나면 어디로 가지?"
얼마전 SK브로드밴드 인터넷TV 설치기사로 입사했다는 장 조카. "입사 직후에 본사 교육원에 가서 교육도 받았고요. 등급이 높아지면 본사에서 분기별로 수당도 몇 십만 원씩 줘요." 야, 그럼 꿈에도 그리는 정규직이란 말이냐? 그런데 젠장, 설명을 듣고 보니 행복센터라는 이름으로 하청업체 소속이란다. "그럼 저도 SK 원청 상대로 소송 한 번 해볼까요?" 그래, 용기가 가상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신문 기사가 마음에 걸린다. "원·하청 상생협력 차원에서 원청이 하청업체에 기술을 전수하고 교육·훈련을 해주는 등 투자를 지원할 경우 불법파견으로 보지 않겠다." 젠장, 이게 뭐야! 온가족을 다 비정규직 만드는 게 대책이야?
그 기사 아래를 보니 1년 전에 쓰러져서 일도 못하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올해 받게 될 주식 배당금만 1758억 원이란다. 현대차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에서 57억 원, 모비스에서 42억 원, 현대제철에서 115억 원, 도합 215억 7000만 원을 연봉으로 챙겼으며, 올해 초 배당금으로만 현금 742억 원을 챙겨서 도합 1000억 원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아주 재벌들만 살판 났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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