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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명 대변인' 박상천 새정치 상임고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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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명 대변인' 박상천 새정치 상임고문 별세

5선 '동교동계' 원로…'논문 쓰는 대변인' 별명도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맞수, 야권의 '명 대변인'이 세상을 떴다. '동교동계' 원로인 새정치민주연합 박상천 상임고문이 4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다.

박 상임고문은 평소 앓던 지병으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왔다가 이날 오전 11시에 숨을 거뒀다.

전남 고흥 출신인 박 상임고문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20년간 법조계에 몸담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눈에 들어 제13대 평화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현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가 1989년 '서경원 전 의원 방북 사건'으로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공격하자, 김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이후 박 상임고문은 제13, 14, 15, 16,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5선 의원으로 활약했다. 야당 대변인과 여야 원내총무, 김대중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 민주당 대표 등을 지냈다.

▲ 박상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연합뉴스

특히 새정치국민회의 원내 총무 시절인 1997년에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맞수이자 친구였던 박희태 당시 신한국당 원내총무와 협상에 나서 이회창 후보와 김대중 후보 간 TV 토론을 성사시킨 바 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첫 법무부 장관에 올랐다. 박희태와 박상천은 '대변인 전성시대'를 연 상징적 인물이기도 하다.

박 상임고문은 의원 시절 지방자치법, 통합선거법, 안기부법 개정 등 입법을 주도해 '법안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3년 9월 새천년민주당 분당 사태 때는 '정통모임'을 만들어, 열린우리당 창당 반대파로 앞장섰고, 분당 직후에는 당 대표를 맡았다. 이후 열린우리당이 '범여권 통합'을 요구하자, 선결 조건으로 참여정부 관계자 배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물갈이 대상 인사'로 지목받아 17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이후 원외 세력의 지원을 받아 18대 총선에서 정계에 복귀했다가, 19대 총선을 앞두고 젊은 후배 정치인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2011년부터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으로 추대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금자(65) 씨와 1남 2녀가 있다. 빈소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1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6일이며 장지는 경기도 광주시 시안 가족추모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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