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수많은 진단과 처방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지겹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그럼에도 정확하고 끈질긴 평가, 더 많은 대안을 말해야 한다고 우리는 이미 지난 '서리풀 논평'(7월 6일)에서 강조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메르스 이후, 더 많은 대안을 말하기)
이러한 평가 과정에서 국가 방역 체계나 의료 공급 시스템 등에 대한 평가는 물론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와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시민의 관점에서 우리네 일상적인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았고 그 속에서 어떠한 문제들이 있었는지 등을 공유하고 평가하는 일이다.
특히 사회적, 정치적 참여에서 배제되기 쉬운 집단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한 집단 중의 하나가 바로 아동 청소년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회적 이슈에서, 아동 청소년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사회적으로 표출되기가 어려운 상황에 있으며, 또한 그들의 보호자인 부모들의 견해와 평가가 당사자들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아동 청소년들의 질병 경험과 의료 이용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아동들은 질병 치료 과정에서 무엇을 힘들어하고 또 무엇을 가장 필요로 할까?
최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잉게 샬케르스(Inge Schalkers) 교수 팀은 병원 입원과 관련한 아동 청소년의 경험에 대해 논문을 발표하였다. (☞관련 자료 : '[I would like] a place to be alone, other than the toilet' - Children's perspectives on paediatric hospital care in the Netherlands)
샬케르스 교수 팀은 병원에서의 치료(돌봄/관리)와 서비스에 대한 아동의 경험을 직접 듣고 그들의 관점에서의 필요와 요구를 파악하는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여기에는 네덜란드 8개 병원의 소아과가 참여하였으며, 급성 혹은 만성 질환을 앓는 6세부터 18세까지의 아동 청소년 환자 63명이 참여하였다. 연구는 아동 청소년 환자들의 포토 보이스, 병원장에게 편지쓰기, 온라인 면담, 면대면 면담 방식 등을 통해 진행되었다.
연구 결과, 병원 입원과 관련한 아동 청소년 환자의 필요와 요구는 크게 5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는데, 1) 보건의료(health-care) 전문가의 태도, 2) 의료인 등 병원 직원과의 소통(communication), 3) 친구/가족과의 연락(접촉), 4) 치료 과정, 5) 병원 환경과 시설에 대한 것들로 나눌 수 있었다.
우선 아이들은 의료인의 사교성, 친절함, 상냥함과 같은 개인적 자질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경험을 했고, 간호사의 과도한 업무로 인해 자신과 상호 작용할 시간이 부족한 점에 대해 아쉬움을 느꼈다.
또 아이들은 의료인들이 부모가 아닌 자신에게 직접 정확한 정보를 이야기해주길 기대하였으며, 병원 직원들 간의 협진이 원활하지 않은 점을 불평하며 소통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 12살 소년은 모든 의사들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해야 했다며, 왜 의료진은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두지 않는지 이상하다고 얘기하였다. 아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들어주길 바랐고, 모든 의사 결정 과정에 스스로 참여하길 원했다.
다음으로 아이들은 입원해 있는 동안 외부와 연락이 닿길 원했다. 인터넷,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하고, 방문객의 방문 시간제한도 없길 희망했으며, 병원에서 홀로 외롭게 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즉, 자신이 친밀하게 느끼는 이들과 함께 하기를 바란 것이다. 한 9살 소년은 "(병원에서) 노트북은 중요해요. 만약 부모님이 보고 싶다면 히브스(Hyves, 네덜란드 사회 연결망 서비스)나 페이스북을 통해 부모님과 이야기할 수 있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학교 친구나 선생님에게도 메시지를 보내고 연락하고 싶어 했다.
아이들은 처치 과정에 대한 경험도 이야기했는데, 많은 아이들이 처치 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 느꼈고, 이러한 대기 시간은 심지어 매우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든다고 토로했다. 한 여섯 살 소녀는 "경막외마취를 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짜증났어요. 경막외마취를 할 때는 항상 예정된 시간보다 더 기다려야 하는데, (그 시간이) 불안하고 걱정되기 때문에 정말 싫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자신이 병원장이라면 이를 즉시 바꾸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컴퓨터나 TV, 인터넷 접속 등과 같은 병원 시설들의 문제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병원에서 지루하게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으며, 특히 청소년들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얼마간 학교 수업에 빠져서 뒤쳐질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병원 내 학교나 개인 과외, 또는 인터넷 방송 강의 등을 통해 병원 안에서도 수업을 받을 수 있기를 원했다.
아이들은 병원 음식이 맛이 없고, 어른들에 맞춰진 가구 배치와 장식 등의 불편함에 대해서도 불만을 털어놓았다. 한 9살 소년은 "화장실 외에도 내가 혼자 있을 공간이 필요해요"라고 이야기하며 사적 공간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물론 샬케르스 교수 팀이 연구한 네덜란드의 상황은 한국과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연구 결과를 한국의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동들에게 병원은 단순히 치료를 받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병원 치료 과정에서 아이들은 치료 외에 의사소통이나 사회적 관계와 같은 많은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아이들은 병원에 입원해 홀로 있는 것에 대해 "두렵고, 슬프다"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아동 청소년들에게도 예외 없이 영향을 미쳤다. 지난 6월 12일 황우여 교육부장관 발표에 따르면, 학령기 메르스 격리자는 유치원생 39명, 초등학생 80명, 중고등학생 66명 등으로 185명에 이르렀다. 확진 환자 가운데는 10대 청소년도 한명 있었으며, 성남시의 7세 아동의 경우 10세 미만 아동의 메르스 감염 첫 사례로 의심되어 격리 당한 채 여섯 차례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부모와 떨어진 채 열흘 가까이 병원에 격리되어 있으면서 그 어린 아이가 홀로 감당했어야 할 외로움과 공포의 크기는 가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는 단지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 때 어떤 이들은 질병 그 자체보다 격리를 통한 사회적 관계 단절에 더 힘들어 하기도 하였다. 비단 메르스 뿐 아니라 질병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것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경험들이 때때로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의 크기를 더욱 증폭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감염병 격리와 같은 방식의 질병 치료 과정에서 고려해야할 것은 단지 치료의 성패가 중요한 의학적 모델만이 아닐 것이다. 고립으로 인한 두려움, 외로움, 사회적 관계의 단절과 같은 인간적, 사회적 차원의 문제들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들이다. 그밖에 병원 치료 과정에서 느꼈던 소소한 문제들과 우리네 일상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해서도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고 개선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특히나 사회적, 정치적으로 배제되기 쉬운 사람들의 경험과 그들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한 의식적이고도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메르스의 상처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이런 부분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게 되길 기대해 본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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