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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톈안먼 광장'이란?

[차이나 프리즘] 중국 국가 이미지, 현실 모순과 욕망을 은폐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높아지는 국제적인 위상에 맞춰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이미지 외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정치·경제·기업·스포츠·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광고·인터넷·신문 등의 매체를 활용, 정부가 만들어낸 이미지 광고를 국내외로 쏟아냄으로써 '소프트 파워'를 다져나가고 있다.

2000년대 중국에서 진행돼온 '국가 이미지'에 대한 연구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CNKI(中國知網, 중국 내 학술지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에서 '중국의 이미지(中國形象)'를 주제로 검색한 결과(7월 20일 기준) 총 694편의 석·박사 학위 논문이 검색됐다. 일반 논문까지 합치면 총 3100여 편에 달하는 매우 많은 양이다.

'중국의 이미지'에 대한 연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로 본격화됐으며, 최근 몇 년 동안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연구 영역은 신문·방송 매체, 세계 문학, 중국 정치와 국제 정치, 연극·영화와 TV 예술, 문화, 중국 근현대사, 스포츠, 미술·서예와 조각 및 촬영 등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현대 중국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릴 때 톈안먼(天安門) 광장을 빼놓기는 어렵다. 본래 광장은 많은 대중들이 모이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 속의 개방된 공공 공간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 로마 시대의 포럼(forum)은 시민들의 종교·집회·상업 등이 이루어지는 다목적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그렇다면, 톈안먼 광장은 어떤 이미지로 인식되고 변화돼왔는가? 톈안먼 광장은 역사적 공간이자 정치적 격변의 중심지로서 1919년 5·4 운동 시기부터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저항과 시대 정신의 상징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정치적·군사적 행사를 치르는 장소로써, 지배 이데올로기의 대체물이던 톈안먼이 1980년 이후부터 점차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또 다른 이미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국의 조선족 록가수 추이졘(崔建)은 광장에 모인 시위 인파와 함께 자신의 노래 '하나도 가진 게 없다(一無所有)'를 불렀다. 그는 "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날 비웃었지. 난 네게 내 꿈을 주겠어, 내 자유도 함께…"라는 노래를 시위대와 함께 외쳤다. 이 노래는 이후 금지곡이 됐다.

추이졘은 2014년 2월 9일 홍콩 <핑궈일보(蘋果日報)>에서 톈안먼에 마오쩌둥(毛澤東)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한 시대는 바뀌지 않으며 우리는 그들과 '동시대인'이라고 지적했다. 추이졘에게 톈안먼은 개혁 개방 이후 젊은이들의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공간이었다.

톈안먼은 음악 외에 중국 현대 미술에서도 등장한다. 2014년 4월 송원아트센터에서 전시회를 가졌던 쑹둥(宋冬)의 <입김(哈氣)>은 1996년 새해 전날 새벽에 멀리 자금성의 불빛을 대하며 톈안먼 광장의 시멘트 바닥을 엎드려 퍼포먼스를 하는 행위 예술이다. 차오양(尹朝陽)의 <광장>(2000년)은 붉게 물든 톈안먼 광장과 붉은 깃발 아래 희미하고도 미미한 군중들이 넓게 퍼져있는 그림이다.

2007년 베이징 '798 예술구'에서 활동했던 황루이(黃銳)는 톈안먼 광장의 마오쩌둥 사진을 배경으로 CHINA와 拆那, ('拆那'의 발음은 '차이나'인데, '그곳을 철거한다'는 의미다) 두 글자를 써넣은 사진 작품인 <차이나(拆那)>를 발표했다. 이는 중국 정부의 무분별한 철거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천하를 편안하게 한다'는 천안문의 의미는 적어도 위 세 작품 속에서 거대한 국가 권력 하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미미한 군중을 대변하는 공간으로 그려졌다.

중국 대표적인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 쉬퉁(徐童)의 <보리수확(麥收)>에서도 톈안먼이 등장한다. 이 작품은 허베이(河北) 딩싱(定興)현에 살면서 도시(베이징)를 오가며 성매매를 통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홍먀오(紅苗)'의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작품 앞부분에 나오는 2008년 쓰촨(四川) 원촨(汶川) 지진의 애도 의식을 거행하고 있는 톈안먼이 그녀가 살고 있는 공간이다.

톈안먼(또는 베이징)은 그녀에게 배고픔과 경제적 수익은 보장해줄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정신적 '수확'은 거둘 수 없는 상실의 터전으로 그려진다. 또 농촌과 융합할 수 없는 '거부된 도시이며 공간'이자 '국가권력과 소외계층'을 대비하는 상징으로 작용했다.

이를테면 톈안먼은 사회주의 시기 집단적, 정치적 의미를 띤 역사적 공간으로부터 개인적, 일상적 의미를 지닌 공공 공간으로 변화하였지만 실제로 개혁 개방 이후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 중국 서민들의 사회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 이미지란 한 국가의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 심상(心象)이자 통념, 관념으로서 특정한 정치적·문화적 함의를 지닌다. 이러한 상징적 이미지는 보편성을 띠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특정 상황을 부각시키려는 국가의 이상 내지는 욕망이 담겨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국가 이미지와 국가 신뢰도 간에는 상호 인과관계는 존재할지 모르지만 등식관계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가 만든 국가 이미지 광고와 민간이 만든 이미지 광고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2011년 후진타오(胡錦濤)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중국의 첫 우주인 양리웨이(楊利偉), 미국 프로 농구 선수 야오밍(姚明) 등이 중국 국가 이미지 광고인물로 등장했다. 하지만 2011년 1월 23일 홍콩 <핑궈일보>에는 중국 정부가 알리지 않는 이면을 담은 '민간판 국가 이미지'가 올라왔으며(☞바로 가기), 이는 '신랑(新浪)망' 등을 비롯한 인터넷 사이트와 블로그를 통해 빠르게 퍼져갔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정형화된 국가 이미지는 실제로 현실적 모순과 다양한 욕망을 은폐하고 있다. 적어도 위의 작품들 속에서 톈안먼 '광장'이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고 권력 앞에 미미한 군중의 고개 숙임과 삶의 터전을 상실한 이미지로 상징화되고 있다는 점을 봐도 그렇다.

(박영순 교수는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홈페이지에서도 '차이나 프리즘'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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