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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주총, 이재용 부회장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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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주총, 이재용 부회장도 잃었다"

[기고] 삼성 구조 개편, 주주친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지난 7월 17일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에서 제1호 안건인 제일모직과의 합병 건이 간신히 통과되었다. 합병에 반대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의 힘겨운 위임장 대결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승리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재용 부회장만의 승리를 위해 너무나도 많은 대가를 치렀다.


먼저, 삼성물산의 소액주주들은 직접적으로 금전적인 피해를 입었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실질에 있어서는 삼성물산에게 불리한 비율로 제일모직과 합병되었기 때문이다. 주총 출석주식 수의 69%가 찬성했다고 해서 합병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찬성을 한 삼성의 계열사들과 국내기관투자자들이 오로지 주주와 고객만을 위해 합병에 찬성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계열사들은 그룹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고 국내기관투자자들은 삼성과 직간접적으로 얽힌 영업상의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둘째, 합병의 당사자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도 이번 합병으로 상당한 비용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삼성은 두 회사가 합병되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창출될 것으로 홍보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투자자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실제로 합병 가결 직후 두 회사의 주가는 곤두박질 쳐 주총 당일 삼성물산은 10.39% 그리고 제일모직은 7.73% 폭락했다. 합병이 오히려 두 회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으로 시장은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개혁연구소 설문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23.5%만이 이번 합병을 회사와 주주를 위한 합병으로 보고 있고, 63%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합병으로 보고 있다.

셋째, 국민연금에 대한 연금 가입자들의 신뢰가 크게 추락했다. 투자자 보호와 자본시장 발전 등 장기적인 기금이익을 고려하면 당연히 반대했어야 할 안건에 찬성해 합병 성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은 안건분석기관들의 반대 권고를 모조리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의 관례를 깨고 의도적으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안건을 회부하지 않는 무모함도 보였다. 가장 뼈아픈 사실은 합병 가결 직후 두 회사의 주가가 폭락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민연금은 합병 찬성의 명분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삼성연금'이라는 오명도 얻게 되었다.


넷째, 국가 시스템과 지도층 인사들에 대한 국민의 환멸감이 더욱 깊어졌다. 일개 재벌일가의 이익을 위해 신문과 방송은 물론 공공기관인 국민연금까지 나서서 지원하는 모습을 보았고, 지도층 인사들이 앞 다투어 이재용 부회장의 입장을 옹호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너무나도 허술하고 공명정대하지 못한 국가시스템을 경험한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아닌 '삼성공화국'에서 살고 있다는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다섯째, 국가 이미지도 크게 손상되었다. 일부 언론이 엘리엇을 사악한 유대자본으로 묘사하면서 우리나라가 반(反)유대주의 나라로 둔갑해 버렸다. 재벌의 힘이 공공기관인 국민연금에게까지 미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시장임을 스스로 확인시켜주었다. 또, 사태의 본질을 떠나 이재용 부회장과 엘리엇 간의 대결을 국내기업과 외국자본 간의 대결구도로 몰고 가고 애국심에 호소하는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국수주의적이고, 성숙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에 얼마나 부족한지 스스로 보여주었다.

이처럼 우리는 이재용 부회장을 위해 상당한 대가를 치렀다. 그럼 이재용 부회장 자신은 어떤가? 이번 합병으로 막대한 경제적 부를 얻었고,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도 강화하였으며, 제일모직의 금융지주회사 지정도 회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분명 얻은 것들이 많다.

하지만 잃은 것들도 있다. 삼성그룹은 대외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었고, 이재용 부회장 자신은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인이 될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졌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는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에 대한 가시 돋친 비난을 접할 수 없다. 하지만 의사 표현이 비교적 자유로운 트위터나 포털 사이트의 금융토론방을 방문해보면 그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1일 오전 경북 구미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같이 어느 누구에게도 진정한 승리를 가져다주지 못한 이번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에 대해 재계는 차등의결권 제도나 포이즌필 등 경영권보호장치의 도입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고, 주주와의 소통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으로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 경제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소액주주들을 바라보는 기업인들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이다. 소액주주들은 결코 총수 일가와 경영진의 결정에 무조건 따르는 들러리가 아니고, 이들도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 이러한 주주의 목소리는 경청할 필요가 있으며 때로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선택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있을 삼성그룹 사업구조 재편과정에서는 보다 주주친화적인 접근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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