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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승계, 이재용 앞에 놓인 네 가지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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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승계, 이재용 앞에 놓인 네 가지 선택

[비즈니스 프리즘] 이재용 체제 삼성, 어디로 가나?④

삼성물산 주주총회(17일)에서 '엘리엇'과 표 대결을 앞둔 삼성이 확보한 우호 지분이 얼마인지 점치는 보도가 넘쳐난다.

"운명의 날" 같은 표현이 나온다. 삼성물산 사장 및 임원에겐 맞는 말이다. 소액주주들에게서 받은 의결권 위임장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명나면, 삼성물산 사장 및 임원들의 운명이 바뀔 게다.

그런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운명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설령 삼성이 진다고 해도, 이 부회장이 삼성 경영권을 물려받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다만 삼성전자에 대한 장악력이 느슨해진다. 애초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자체가 삼성물산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4.1%를 장악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 부회장이 '운명'까지 달라지는 일은 없다. 누가 뭐래도, 그의 운명은 '삼성 회장'이다.

48세 이재용, 6년 뒤면


누가 이길까? 이런 질문을 잠시 미뤄두자. 구구한 지분 숫자 계산해봐야 부질없다. 어차피 답은 곧 나온다. 대신, 다른 질문을 해보자. 그간 언론이 묻지 않았던 질문이다. 역시 숫자 이야기다.

이재용 부회장은 올해 나이가 48세다.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 승계 준비를 공식화한 건 1995년이다. 당시 유학생이었던 이 부회장의 나이는 28세였다. 이 회장은 이 부회장에게 당시 61억 원을 줬다. 이 과정에서 세금 16억 원을 냈다. 나머지 45억 원을 종자 돈 삼아 경영권 승계 작업이 진행됐다.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이 이듬해에 있었다.

1995년 당시 이건희 회장의 나이는 54세였다. 아마도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한 물밑 작업을 시작한 건, 그보다 한참 전이었을 게다.

여기서 간단한 산수. 54 빼기 48은? 그렇다. 딱 6년만 지나면, 이 부회장은 1995년 당시의 이건희 회장 나이가 된다. 지금 중학생 나이인 이 부회장의 아들은, 그때 대학생이 된다. 이 부회장이 자식에게 경영권 물려줄 준비를 할 때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부회장은 아직 회장 직함도 달지 못했다.

이건희가 물려받은 삼성, 이재용이 물려받을 삼성"'다른 기업'이다!"

변수가 많다. 일단 이 부회장이 언제 회장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취임과 동시에 승계 작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건 맞다. 그간 갈고 닦은 경영능력을 발휘하는데 전력투구할 시간은 길지 않다. '승계 준비를 그렇게 일찍부터 해야 하나….' 일반인의 체감으론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봉건 왕조를 떠올리면 이해가 된다.


왕이 즉위하면 첫 과제가 후계자 선택이다. 왕자를 많이 낳아야 하고, 적당한 때 세자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나선, 교육이라는 과제가 있다. 조선 왕실의 세자 교육은 매우 엄격했다. 세자를 잘 길러내야, 왕이 죽어서 선조들을 볼 면목이 선다고 믿었다. 당연하다. 왕의 절대 목표는 왕조의 유지다. 왕권이 한 세대로 끝나서는 안 된다.

재벌도 똑같다. 기업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 속에 있는 봉건 영지다. 영주의 권력을 대대손손 누리고 싶어 한다. 어느 정도 성공한 기업인에게 물어보라. 가장 큰 고민거리가 무엇인지. 십중팔구 자식 문제라고 한다. 자식 걱정 없는 부모가 어디 있겠나 싶지만, 재벌은 경우가 다르다. 재벌 왕조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문제다.

여기서 재벌과 왕조가 다른 대목이 있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크기나 인구는, 한 세대 만에 확 달라지지 않는다. 전쟁 같은 예외만 없다면 말이다.

재벌은 그렇지 않다. 이건희 회장이 물려받았던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이 물려받을 삼성은, 완전히 다른 기업이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 그룹을 물려받을 당시엔 순환출자구조 같은 편법을 동원할 필요가 없었다. 세금을 제대로 내고 싶지 않았을 뿐, 그룹 장악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간판 격인 삼성전자를 장악하려면 복잡한 편법이 필요하다. 삼성전자는 더 이상 국내시장에서 옥신각신하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휴대폰, 반도체 등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글로벌 기업이다. '엘리엇 사태' 역시 그래서 생긴 일이다.

지금 이재용이 겪는 문제, 아들에게 물려줄 때 또 겪는다

삼성전자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이다. 7.6%를 갖고 있다. 그 다음은 삼성생명으로 7.2%다. 삼성물산이 그 다음인데, 4.1%를 갖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네 번째로 3.4%를 쥐고 있다.

삼성전자는 개인이 지배하기에 너무 큰 기업이 됐다. 다른 계열사가 지분을 갖게 하고, 그 계열사를 다시 총수가 지배하는 편법이 쓰인 건 그래서다. 이재용 부회장이 23.23% 지분을 갖고 있는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 합병한다면, 이 부회장이 우회적으로 삼성전자 장악력을 높일 수 있다. 이 대목을 '엘리엇'이 겨냥했다.

앞서 이재용 부회장도 곧 승계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지금 이 부회장이 겪는 문제가 몇 년 뒤에 반복된다는 뜻이다. 취약한 지배구조가 그대로라면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네 가지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삼성, 지주회사 전환을 왜 두려워 하나?

하나는, 국민경제를 위해 불행한 경우다. 삼성전자가 확 쪼그라드는 것. 그래서 시가총액 자체가 줄어들면, 굳이 편법으로 장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누구도 이런 경우는 원치 않는다.

두 번째는 지주회사로의 전환이다. 일부 언론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탄생할 통합 삼성물산을 가리켜 "삼성그룹 지주회사"라고 부른다. 틀린 표현이다. "지주회사 격" "지주회사 역할" 정도가 무난하다. 삼성은 아직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았다. 지주회사로 전환한다는 건, 지금처럼 다른 계열사를 동원해서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방식을 버린다는 뜻이다.

삼성 수뇌부는 당장 이렇게 할 마음이 없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주회사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데 드는 비용 때문이다. 지주회사 전환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 부회장이 왜 안정적인 지분 비율 확보에 목을 매야하느냐"고 반문한다. "안정적인 지분"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른데, 주주총회에서 특별결의를 막을 수 있는 수준을 가리킬 때가 많다. 특별결의를 위해선 3분의 2 지분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한 지분 비율은 3분의 1이상이다. 지주회사 지분을 이 정도 확보하고 있다면, 어떤 돌발변수가 생겨도 경영권이 흔들릴 일은 없다.

반면, 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 장하성 고려대학교 교수 등은 약간의 경영권 위협 가능성은 총수에게 약이 된다고 보는 편이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경영권이라면, 오히려 총수의 전횡 등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 부회장이 20%대 지분만 확보할 수 있다면, 지주회사 전환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정도라면, 삼성으로서도 큰 부담이 아니다.

포이즌 필, 차등의결권 도입 주장부작용은 없나?


세 번째는 법을 바꾸는 것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는 지난 15일 '공정한 경영권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한 상장회사 호소문'을 발표했다.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포이즌 필(신주인수선택권)과 차등의결권 등이 도입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포이즌 필이란, 기존 주주들에게 회사의 신주를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다. 경영권 확보를 노린 누군가가 회사 주식을 전격적으로 사들일 때, 그를 제외한(즉 신주인수권자를 선택해서) 기존 주주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다. 기존 주주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경영권 방어를 할 수 있다.


차등의결권이란, '1주 1표' 원칙의 예외를 두는 제도다. 경영권을 쥔 측이 적은 지분으로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외국에서도 흔히 쓰인다. 예컨대 미국의 구글, 페이스북 등은 창업자가 차등의결권을 갖고 있다. 기술은 있지만 자금은 부족한 벤처기업이 경영권 위협을 신경 쓰지 않고 적극적으로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게끔 하자는 취지다.


재벌 총수 일가가 차등의결권 등을 활용할 수 있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제2, 제3의 엘리엇 사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등이 비슷한 주장을 했었다. 재벌 총수에게 안정적인 경영권을 보장해주고, 대신 세금을 제대로 걷자는 게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포이즌 필(Poison pill)'은 우리말로 '독약'이다. 부작용이 그만큼 명백하다. 경영권을 쥔 측이 이 제도를 악용하면, 견제할 방법이 없다. 기존 주주들은 영속적인 지배권을 갖는다. 정상적인, 꼭 필요한 인수합병마저 불가능해진다.

차등의결권도 문제가 있다. '1주 1표'의 원칙 위에 세워진 현행 상법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 그뿐 아니다. 한국의 재벌기업은 대부분 순환출자 구조 혹은 그와 유사한 형태다. 삼성처럼 계열사 지분을 동원해 다른 계열사를 장악하는 구조라는 말이다. 이런 구조와 차등의결권이 맞물리면, 재벌 총수의 권한이 너무 강해진다.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나라는 대부분 순환출자 구조 문제가 없다. 재벌이 차등의결권 도입을 주장한다면, 먼저 지배구조부터 손질해야 한다.

"이재용과 삼성을 생이별 시키자"

남은 한 가지는 총수 일가와 재벌을 '생이별'시키는 방안이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막대한 세금이 발생한다. 국가가 이를 현물 주식으로 징수하면, 사실상 국가가 대주주 역할을 할 수 있다. 국민연금 지분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국영 지주회사를 만들 수 있다. 논리적으론 그럴 듯하지만, 현실에서 구현되기란 쉽지 않다. 재계와 보수 진영의 반발이 필연이다.

'생이별'을 위한 방법은 또 있다. 재벌 총수가 주식을 공익재단에 넘긴다. 그리고 공익재단이 지주회사가 돼 계열사를 지배한다. 총수 일가는 재단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다만 총수 가문 구성원은 일종의 명예직으로 참가한다. 총수가 왜 그래야 하느냐고? 정부가 정상적으로 세금을 걷고, 기업 규모가 계속 커진다면, 후계자 입장에서 다른 방법을 찾기 힘들다. 세금 내고 나면 상속분은 줄어든다. 그런데 기업이 커지니까, 지분 비율이 너무 적어진다. 다른 계열사를 동원한 지배방식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경영권을 행사할 방법이 없다. 그럴 바엔 차라리 공익재단에 지분을 넘기는 게 낫다. 때마다 배당도 받고 명예도 누린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 독일의 보쉬 등 유럽 대기업 중엔 이런 경우가 꽤 있다. 이들 가문이 공익재단에 지분을 넘긴 건, 모두 보수 정권 집권기였다. 따라서 '좌파 정책'이라는 비난을 살 여지도 적다. 정승일 <사민저널> 기획위원장이 이런 입장이다.

하지만 우려도 있다. 기업을 지배하는 공익재단 구성원을 누구로 할지가 문제다. 정치적 외압으로부터의 독립성, 경영 투명성 등이 확보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권 바뀔 때마다 몸살을 겪는 포스코나 KT처럼 될 수 있다.

이재용, 자식도 '엘리엇 사태' 겪게 할 건가?

위의 네 가지 답 가운데 첫 번째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 나머지 세 가지 중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재용 부회장은 올해 48세다. 사실상 회장 역할을 하고 있지만, 당분간은 부회장 직함에 머물러야 한다. 이런 불안정한 상태로 얼마나 있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회장이 되면, 곧 경영권을 물려줄 준비를 하게 될 게다. 이건희 회장이 남긴 지분 가운데는 동생들의 몫도 있다. 그걸 뺀 나머지 지분으로 거대 기업을 지배해야 한다.

이건희 회장이 그랬듯, 당장은 이렇게 불안정한 지배구조로도 꾸려갈 수 있다. 하지만 자식에게 물려줄 때가 되면, 문제가 생긴다. 이런 허점을 투기자본이 그냥 넘어갈 리는 없다. 게다가 '엘리엇 사태'로 삼성의 실력도 검증이 됐다. 허점이 찔리면, 삼성은 허둥지둥 한다. 자사주 매각 같은 궁여지책까지 쓰면서, 스스로 시장의 신뢰를 깎아내린다. 이걸 뻔히 봤는데, 제2, 제3의 엘리엇이 나타나지 않을까?

'엘리엇 사태'로 밤잠 못 이룰 이재용 부회장이 정말 자식을 사랑한다면, 답은 명백하다. 지배구조 개혁을 미뤄서는 안 된다. 어떤 식으로건 답을 찾아야 한다. 기자가 희망하는 답은 앞서 언급한 것 가운데 두 번째와 네 번째다. 모쪼록 이 부회장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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