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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기자의 눈] 이런 분들과 하니 정치가 잘 되겠습니다

16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선물을 들고 청와대를 찾았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퇴출'이라는 아주 큰 선물이었다.

보수 언론은 관련 기사에 "웃음 빵빵 터졌다", "다시 손잡다" 등등의 제목을 달았는데, 사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밥도 못 얻어먹고 오전 10시 58분부터 11시 50여 분까지, 약 50분 정도 만난 뒤에 떼밀리듯 나왔다. 10분 정도만 있으면 점심시간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식 오찬 일정은 이날 없었다. 그리고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는 오후 1시에 국회 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김 대표나 원 원내대표가 점심이나 제대로 드셨는지 모르겠다.

정치는 등가교환이라는데, 아니, 최소한 '양보'를 얻어내는 기술이라고 하는데, '유승민 퇴출'이라는 큰 선물을 안고 간 새누리당 지도부가 얻은 것이 있는가?

먼저 새누리당은 청와대와 정부가 주도하는 추가경정예산을 조속히 처리하겠다고 다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7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법안 3건을 이름까지 콕 찍어서 새누리당 지도부에 안겼다. 고위당정청회의도 새누리당 측에서 먼저 얘기를 꺼냈다. 김정훈 정책위의장이 "언론에서 언제 재개하는지 관심이 많다"고 뜬금없이 '언론탓'을 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민생을 돌보기 위해서라도 빨리 하시죠"라고 했다고 한다. 언론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박 대통령을 찾았나? 고위당정청회의가 언제 열리는지 알아내는 게 최근 언론사의 지상 과제였나? 청와대가 날짜를 주지 않으니, 당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모습이다. 고위당정청회의는 하는 게 정상이고, 안 했던 게 이상한 거다. 숙제만 얻어온 셈이다.

새누리당이 유일하게 목소리를 냈던 게 하나 있긴 했다. 김 대표는 '8.15 특별사면' 때 경제인 사면을 건의했다고 한다. 며칠 전부터 당내에서 강하게 요구가 있었던 것인데, 박 대통령은 당의 그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특별사면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인데, 새누리당 건의, 청와대의 수용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경제인 사면은 비판 여론이 뻔히 예상되는 이슈다. 새누리당이 고맙게도 청와대 앞에 서서 총대를 메 줬다. 이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이날 대통령의 복장은 상징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빨간 옷을 입었고, 나머지는 검은 양복을 입었다. 이런 방식의 '복장 정치'는 박 대통령의 전매특허다. 지난 2012년 8월, 새누리당 의원연찬회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기념사진 촬영 과정에서 남녀 할 것 없이 흰옷으로 '드레스코드'를 맞췄는데, 박 대통령은 홀로 녹색 재킷을 입고 의원들 정 가운데 박혀 사진을 찍었다. 옷 색깔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무리의 리더' 이미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정두언 의원만 튄다. 그는 안에 입은 빨간 티셔츠를 드러냈다. 참으로 정두언답다.

▲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지도부를 만나고 있다. ⓒ청와대
▲ 2012년, 박근혜 대통령과 황우여 대표 등 의원들이 천안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의원연찬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2012. 6. 8 ⓒ연합뉴스

원유철, 황진하박 대통령의 화려한 '드림팀'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쫓겨난 자리를 꿰찬 원유철 전 정책위의장(현 원내대표)의 발언들은 특히 주목을 받았다. 원 원내대표 특유의 '정치 스타일'이 나타났다는 평이다. 그는 '유승민 찍어내기' 파동 과정에서 침묵을 내내 지키다가 몇 마디를 던졌는데, 요약하면 "해도 너무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유 전 원내대표 없이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민 사퇴 결의안 채택'을 통한 퇴출 방식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고 한다.

그는 코드 맞추기도 탁월한 감각이 있다. 원 원내대표는 지난 2월, 유 전 원내대표와 짝을 이뤄 정책위의장에 당선된 후 "현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믿는 국민들이 별로 안 계시다"며 "정직하게 국민 앞에 털어놓아야 한다"고 유 전 원내대표에 코드를 맞추었는가 하면, 불과 5개월 뒤인 지난 15일에는 "증세 없는 복지는 국민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가야 된다"고 박 대통령에게 코드를 맞췄다.

자신의 발언을 손바닥처럼 뒤집은 셈이다. 정치인 원유철은 원래 그런 스타일이었다는 당직자들, 동료 의원들의 증언들은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특히 원 원내대표의 유머감각은 대통령의 마음에 쏙 들었던 것 같다. 원 원내대표가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 데 코피를 쏟겠다"고 하니 박 대통령은 "어떻게 그렇게 말씀을 잘 하십니까"라고 감탄했고, "당에서 합의로 선출돼 선거 비용이 남아 찹쌀떡을 사서 돌렸다. 당청간 찰떡 화합을 하자는 의미"라고 하니 박 대통령은 "말씀만 들어도 든든합니다"라고 했다.

원 원내대표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기자들에게 "대통령이 많이 웃으셨다", "빵빵 터졌다"고 했다. 그런데 밥은 같이 못 먹고 나왔다.

김 대표가 청와대에 가기 전 기자들의 질문에 "소통 강화"가 목적이었다고 했는데, 그 목표는 이뤄진 것 같다. 당청간 고속도로가 뚫린 듯하다. 하행선만 개통이 됐다. 시원하게.

마침 친박계라는 황진하 사무총장이 화제가 되는 새 '대북 정책 구상'을 내놓은 모양이다. 미국 워싱턴에서 카네기국제평화연구원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황 총장은 "북핵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는 만큼 새로운 제안을 해야 할 때이다. 한미 관계처럼 핵보유국인 중국이 북한에 안보를 제공하는 방안의 하나로 핵우산(nuclear umbrella)을 제공하는 것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했다.

이 분야에서만큼은 원 원내대표도 뒤지지 않는다. 그는 2013년 4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도 핵무장을 하되 북한이 폐기하면 우리도 즉시 폐기하는 '조건부 핵무장'을 해야 한다"라고 했었다. '중국의 핵우산', '조건부 핵무장' 지나치게 창조적이다.

당은 청와대에 의해 완전히 접수된 것 같다. 개혁파들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그나마 정두언 의원 정도가 정확한 지적을 내놓는다. "야당이 지리멸렬하니 여당과 정부도 함께 부실해지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무성 대표가 "내년 총선에서 안정된 과반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런 식으로 정치를 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이런 분들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정치가 잘 될 것 같다. 박 대통령, 시원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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