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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문단이 '문학 소녀'를 '괴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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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문단이 '문학 소녀'를 '괴물'로 만들었다"

[현장] "창비, 문동 편집위원들 이참에 퇴진해야"

창비 평단을 비롯한 한국 문단의 남성적 태도가 1980년대 리얼리즘 문학의 열패감을 극복하기 위해 신경숙(52) 작가의 성취를 부풀렸고, 그로 인해 신 씨의 표절이 문제없이 히트 상품이 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편집위원들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신 씨는 일본 극우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비롯해 여러 편의 다른 작품을 자신의 작품에 표절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15일 오전 10시 서울시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신경숙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의 미래'라는 이름의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정문순 평론가는 신 씨의 작품과 평단의 의도적 부풀리기가 만나 지금의 표절 사태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정 평론가는 지난 2000년, 신 씨의 표절 의혹을 처음으로 전면 제기했다.

"창비 진영 남성 평론가가 신 씨 의도적으로 지지"

정문순 평론가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 갈 곳을 잃은 리얼리즘 중심의 한국 문학이 "전혀 과격하지도, 불온하지도 않은 목소리의 작가"를 선택했다며 그 대표적 사례로 신 씨를 꼽았다.

자기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신 씨의 문학이 기성 문학의 권위에 전혀 균열을 낼 수 없었고, 이는 창비를 비롯한 기존 문학 권력에는 안전한 선택이었다는 것.

정 평론가는 "남에게 반성을 요구하기보다 자기반성을 더 잘하는 듯한 신경숙 문학이 패배감으로 전망을 잃어버린 당시 문단에는 남자의 잘못을 나무라지 않는 아내나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며 "한국 문단은 문학의 성취와 한계를 냉정하게 비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잣대나 준거마저 망설임 없이 놓아버렸다"고 비판했다.

그 근거로 정 평론가는 김사인 평론가의 비평을 들었다.

"신경숙 소설의 가장 소중한 몫은 나지막한 몸가짐, 나지막한 어조에 있다. 사소한 것들, 미미한 것들의 결코 사소하지 않음을 그는 그 나지막한 목소리로 얼마나 간곡하게 말하고 있는 것인가."

이 문구를 두고 정 평론가는 "남성의 시각으로 일방적으로 여성성을 규정하는 정치적 의도"를 드러냈다며 "환멸의 시대, 정확히는 이전 시대의 지배적 가치가 몰락함으로써 환멸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던 시대에 문단이 왜 신경숙 문학을 필요로 했는지 솔직하게 고백"했다고 지적했다.

정 평론가는 문단의 이와 같은 선택으로 인해 "문학 소녀 수준에 불과한 신 씨가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진 자신의 문학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길로 나아갔다"며 그의 잦은 표절에 한국 문단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실천 문학, 리얼리즘 문학이 민주화 이후 혼란에 빠졌을 때 수동적 태도로 일관한 신 씨의 문학에서 문단이 돌파구를 찾았고, 신 씨가 이에 호응했다는 의미다.

정 평론가는 "(신경숙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문단이 이번 기회에 스스로를 물갈이하지 않는다면 문학에 관한 한 진짜 환멸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문단이 전면 자기 쇄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7월 15일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정문순 평론가가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창비, 문학동네 편집위원 퇴진해야"

천정환 성균관대학교 교수도 신 씨와 함께 거대 출판사로 성장한 창비, 문학동네를 비판의 중심에 놓았다.

천 교수는 특히 <외딴 방>을 두고 "'우리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위엄을 부여하는 엄청난 일을 해내었다"는 이례적 상찬을 한 백낙청 창비 편집인의 비평 이후 신 씨가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반열에 올랐음을 지적하며 (신경숙 문학과 창비의 결합은) "창비의 '1990년대식 자유주의'에로의 투항 혹은 전향, 아니면 '탈(脫)민족 문학'"이라고 강조했다.

문학동네에서 펴낸 <외딴 방>은 1996년 창비에서 주관하는 만해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창비 편집인 백낙청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창작과비평> 1997년 가을호에 이 소설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때부터 신 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서기 시작했다.

천 교수는 "탈민중/민족 문학의 알리바이가 필요했던 백낙청과 몇몇 남성 주류 비평가들의 구미에 (신 씨의 작품이) 잘 맞는 것"이었다며 "창비와 문동(문학동네)의 고참 비평가들이 '비평의 좀비화'에 대해 제대로 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창비와 문학동네 측은 현재까지 신 씨의 표절 사태에 대한 뚜렷한 후속 조치를 내지 않고 있다.

천 교수는 창비와 함께 신 씨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친 문학동네를 두고도 "문동은 한국 문학 시장의 신자유주의화에 이바지하거나 그 혜택을 누렸"다며 "창비와 문동의 일부 편집위원들은 이번 참에 명예롭게 용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토론회는 문화연대와 인문학협동조합이 공동주최해 마련됐다. 주최 측은 창비와 문학동네에 참여를 요청했으나 두 출판사는 모두 참석을 거부했다.

토론회를 마련한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창비와 문학동네 등 편집위원과 토론회를 위한 사전 모임을 가진 후, 제3의 토론회를 만드는 방안을 출판사 측에 제안할 것"이라며 "문학판의 모든 사람이 모여서 한국 문학의 미래를 이야기할 자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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