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신경숙의 1994년 단편 '전설'을 둘러싸고 불거진 표절 의혹이 지난 2000년에도 유수 문예지를 통해 공식적으로 제기됐던 것으로 18일 드러났다.
이는 현재 표절 의혹 대상인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본명 히라오카 기미타케(平岡公威))의 소설 <우국(憂國)>을 "알지 못한다"고 반박한 신 작가의 해명에 강한 의문을 갖게하는 대목이다.
또 과거에도 제기된 표절 의혹이 아무런 반향없이 묻혔다는 점에서 문단의 자정 기능에 대한 회의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부산 출신의 문학평론가 정문순(46) 씨는 지난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에 실은 '통념의 내면화, 자기 위안의 글쓰기' 기고문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단편 '전설'은 명백히 일본 극우 작가 미시마 유키오 <우국>의 표절작"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6일 소설가 이응준이 표절의 증거로 한 문단의 유사성을 집중 거론한 반면, 정씨의 주장은 모티브는 물론, 내용과 구조 면에서도 유사하다는 전면 표절의 주장을 담고 있다.
정 평론가는 "일제 파시즘기 때 동료들의 친위 쿠데타 모의에 빠진 한 장교가 대의를 위해 자결한다는 <우국>의 내용과, 한국 전쟁 때 한 사내가 전쟁터에 자원 입대하여 실종되는 '전설'은 남편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릴 때 남은 아내들의 선택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점에서 주요 모티브부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신 작가는 이응준의 주장에 대해 17일 출판사 창비를 통해 "'우국'을 알지 못하고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고, 창비 또한 "두 작품이 유사한 점이라곤 신혼부부가 등장한다는 정도"라며 표절 의혹을 공식 부인했다.
그러나 정 씨의 주장은 이를 전면적으로 뒤집는 내용이다.
"<우국>의 아내는 남편 따라 죽는 데 일호의 주저도 없으며, '전설'의 여자는 남편의 실종 통보를 받고도 평생을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보낸다. 또 10여 개의 비슷하거나 거의 동일한 문구는 물론이고 남편의 죽음이나 참전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아내의 태도, 역순적 사건 구성, 서두에 역사적 배경을 언급한 전개 방식 등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나 영향 관계로 해석될 여지를 봉쇄해버린다."
정 씨 기고문의 존재는 과연 신 작가가 주요 문예지에 발표된 표절 의혹조차 15년 동안 몰랐겠느냐는 새로운 의혹을 불러 일으킨다. 한 평론가는 "자신에 관한 평론은 꼼꼼히 찾아보는 소설가들의 속성상 그가 주요 문예지에 게재된 이 평론의 존재를 몰랐으리란 개연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표절의 문제를 한국 문단의 저급화를 초래하는 상업적 담합 구조와 연결짓고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신경숙이 견고한 작품 세계를 갖춘 작가라도 표절의 유혹을 피할 수 없었을까? 또 문단이 실력보다 무늬가 큰 작가를 자기네 취향과 상품성을 고려하여 띄워 준 점이 과연 표절을 낳은 요인과 무관하다고 볼 수 있을까?"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똑같은 표절의 문제가 논쟁의 수면 위로 올랐다. 적어도 정 씨는 그에 대한 결론을 이미 15년 전 내렸다.
"신경숙은 개인 이름에 그치지 않고 90년대 문단을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 작가가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데서 필자는 한국 문단의 허위성을 보고 있다. 문단이, 실력이 달리는 소설가에게 지나친 기대로 압박을 가하는 일을 멈추지 않거나, 표절 시비에 수수방관하는 직무유기를 보인다면 글도둑들은 계속 양산될 것이다."
정 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15년 전 제가 제기한 게 새로운 것인양 논쟁으로 불거지는 모습을 보는 건 유쾌하지 않다"며 "하지만 이번에라도 확실하게 진상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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