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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고사직 거부하자 창고 발령" 출판 노동 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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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고사직 거부하자 창고 발령" 출판 노동 현실은…

출판 노동자 증언대회…"부당 노동 행위 종합선물세트"

김성현 씨는 지난 2012년 대학 졸업 후 바로 한 출판사 편집자로 취업했다. 대표이사를 포함해 6명이 근무한 이 회사는 주로 노동, 환경, 성 소수자 문제 등 진보적 사회 의제를 다루는 책을 만드는 곳이었다.

책이 팔리지 않자 문제가 발생했다. 2014년 4월 25일, 전체회의에서 대표이사는 "회사가 경영난에 처했으니 (여러분은) 시간을 두고 다른 회사를 알아보라"고 했다. 회사의 매출이 어느 정도이고 적자 정도는 얼마인지, 책은 얼마나 나가는지 등의 정보는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이후 개별 면담에서 대표는 7년 차 편집자와 디자이너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퇴사를 원한 김 씨에게는 "계속 함께하자"고 설득했다. 개별적으로 연차가 높은 직원만 내보내기로 한 셈.

김 씨와 대표이사의 갈등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 상황에서 대표이사가 직원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도록 서로를 이간질해왔다는 것을 김 씨는 알았다. 회사 경영상황을 공유하고 함께 대책을 마련하자는 김 씨의 요구는 석연찮은 변명으로 무시됐다. 갈등이 1년여간 이어진 후, 김 씨는 퇴사했다. "밖에 나가 선배들의 해고를 부당해고라고 말하고 다닌다면 명예훼손으로 대응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근로계약서도 작성 못 하는 출판노동자 '수두룩'

10일 오후 4시,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출판업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부당 노동행위 사례를 발표하는 증언대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는 언론노조 출판노동조합협의회(이하 출판노조협의회, 의장 강변구)와 배재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주재로 마련됐다.

김 씨를 포함해 모두 5명의 노동자가 생생한 경험담을 전했다. 이들 대부분이 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부당노동행위로 인해 해고되거나 부당 인사 발령이 나는 등의 고초를 겪었다.

출판사 자음과모음에서 부당 전보와 부당 노동행위로 인해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편집자 윤정기 씨(29)도 증언대회에 참석했다. 윤 씨는 "입사 당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했고, 지금도 표준 계약서 작성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출판노조협의회가 출판업계에 종사하는 노동자 501명을 상대로 실시한 '출판노동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업계 노동자의 32%가량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거나, 작성했어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씨는 "지난 3월 말 갑자기 권고사직을 요청받았다. 응하지 않자 바로 다음 날 파주의 물류창고로 인사발령이 났다"고 말했다. 윤 씨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로 인한 구제를 신청했고, 복직 주문을 받아냈다. 사측은 최근 복귀명령서를 냈다.

윤 씨는 "사내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직원 동의 없이 설치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사장의 폭언과 고성도 일상적이었다"며 "자음과모음은 부당노동행위의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곳"이라고 강조했다.

▲10일 출판 노동자들의 부당 노동 피해 사례 증언대회가 열렸다. ⓒ언론노조 제공

'회사 어렵다'며 외주 출판인 보상도 '후려치기' 만연

직원 5인 미만 출판사인 스코어에서 근무하다 이달 9일 해고된 송혜진 씨는 경영 악화를 이유로 퇴사를 강요받았다.

송 씨는 "퇴사 거부 의사를 밝히자 '이기적'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적법한 해고 절차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퇴사 전날까지도 야근에 시달리기만 했다"고 말했다.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연장노동(야근)을 하지 않는 노동자는 27.3%에 불과했다. 야근에 따른 수당을 받는 노동자는 17.6%에 그쳤다.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경우, 근로기준법의 일부 노동자 보호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송 씨는 "회사는 직원 채용 시에는 모 회사의 이름을 이용했고, 해고 시에는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점을 악용했다"며 "회사가 스스로 5인 미만의 영세사업장으로 남아 법을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회사의 사정을 이유로 외주 노동자의 원고료를 후려치는 일도 있었다. 송 씨는 "통상 원고료는 매당 8천~1만 원 정도이나, 2000원대까지 후려치는 일도 있었다"며 "근무하는 동안 급여 문제를 외주 노동자에게 전달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부당 회사 지원 중단해야"

이날 대회에 참석한 배재정 의원은 "지식을 책 안에 담아내는 멋진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노동을 하기 힘든 환경"이라며 "용기 있는 증언을 통해 좀 더 나아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소감을 언급했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관념으로만 알던 출판계와 현실이 매우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며 "오늘 일을 계기로 더 행복한 노동 현장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강변구 출판노조협의회 의장은 "근로계약서 작성부터 제대로 되어야 한다"며 "출판계는 근로계약서를 쓰는 분위기가 2, 3년도 되지 않았다"고 현실을 토로했다.

나아가 부당 노동 행위가 이뤄지는 출판사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를 촉구했다. 강 의장은 세종도서 사업,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우수 문예지 지원 사업 등 정부의 출판 지원 사업 대상 선정에서 부당 노동 행위가 일어난 출판사는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출판 노동자를 양성하는 교육 과정인 서울북인스티튜트(SIB)에 노동법 강좌를 의무화하고 외주 출판 노동자를 보호하는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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