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5일(현지 시간) 실시한 채권단의 제안에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박빙을 보일 것이란 예상을 깨고 반대가 61%로 찬성(39%)을 20%포인트 이상 앞질러 반대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내무부는 이날 초기 전망이 유효한 기준을 충족한 상황에서 추정한 결과 반대 61%, 찬성 39%로 예상했다. 개표율 70% 기준으로도 반대가 61.5%로 찬성(38.5%)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앞서 그리스 방송사들이 이날 오후 7시 투표 종료에 맞춰 방송한 최종 여론 조사에서는 박빙이 예상됐지만 개표율이 높아갈수록 '6대 4' 구도는 공고해지고 있다.
사전 여론 조사에서 찬성과 반대는 각각 44%와 43%, 43%와 42.5% 등 1%포인트 안팎의 차이로 오차 범위(3%)에 있었지만 예상을 깨고 '큰 반대'(Big No)를 보였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의 '반대가 클수록 정부의 협상력을 높여 채권단으로부터 더 좋은 합의안을 끌어낼 수 있다'는 설득 등이 막판 반대 여론을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유권자 약 985만 명은 이날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채권단이 지난달 25일 제안한 협상안에 찬성과 반대를 선택했다.
투표 질문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이 6월 25일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회의에서 제안한 협상안을 수용하느냐"다.
반대가 다수로 결정되면 그리스의 운명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치프라스 총리의 주장대로 '더 좋은 협약'이 체결될 것인지, 협상이 난항을 겪고 ECB가 유동성 지원을 중단해 그리스 은행들도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맞을지 등 180도 다른 주장이 맞서고 있다.
치프라스 총리는 반대가 다수로 나오면 부채 탕감 등이 포함된 더 좋은 협약을 48시간 안에 체결하고 은행 영업을 7일부터 재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반대 승리가 확실해지자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 유로존 지도자들과 전화 통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도 이날 밤 기자 회견을 열고 "오늘 그리스 국민의 용감한 '반대' 결정을 갖고 내일 채권단에 합의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유로존 지도자들은 반대가 나오면 그리스는 유럽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경고해 최악에는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전망도 나온다.
그리스 정부가 지난달 30일 국제통화기금(IMF) 채무를 이행하지 않아 '기술적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놓인 데 이어 그리스 시중은행들도 디폴트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지난달 28일 은행 영업 중단과 자본통제 조치를 전격 단행한 것은 뱅크런(예금 대량인출)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현재 그리스 은행의 유동성 완충 규모는 10억 유로 정도에 그쳐 유럽중앙은행(ECB)의 지원 없이 예정대로 7일 은행 문을 열고 하루 인출금액을 60유로로 제한한 자본통제를 푼다면 은행들은 도산이 확실시 된다.
따라서 6일 예정된 ECB 회의 결과에 따라 그리스가 어느 갈림길을 택할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ECB는 채권단과 그리스 정부 간 구제금융 협상이 재개되는지를 면밀히 살필 것으로 예상된다. 협상 재개를 넘어서 협상 타결이 가시화하기 전까지는 ELA 증액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양대 채권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6일 긴급 회동할 예정으로 두 정상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ELA 증액이 유보된다면 그리스의 자본통제가 연장되고 그리스 경제의 충격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수입이 중단되고 기업이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본통제 장기화에 따른 경제 마비는 급속도로 악화할 수 있다.
이 경우 그리스 정부는 차용증서인 'IOU' 발행이 불가피하다. 다만 IOU로 국내 결제는 가능하겠지만 대외 지급결제 등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IOU 가치하락 등이 예상됨에 따라 자국통화 도입 이외의 수단은 중장기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렉시트는 유로존의 신뢰도 깨뜨리고 경제적 손실도 상당하기 때문에 반대 결정에 따른 3차 구제금융 타결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바루파키스 장관은 스페인 일간 엘문도와 인터뷰에서 "그리스가 붕괴됐을 때 1조 유로의 손실이 있을 것"이라며 "채권단이 그렇게 되기까지 내버려둘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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