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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일감이 늘면 '해고 직원'을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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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일감이 늘면 '해고 직원'을 부를까?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증발하는 일자리

"생산 물량이 줄어들어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 일감이 없는데 회사로서도 다른 수가 없다. 나중에 사정이 나아져서 생산 물량이 늘어나면 다시 부를 테니 지금은 고통 분담 차원에서 인력 감축안을 받아들여 달라."

제조업 부문에서 인력 구조 조정이 벌어질 때마다 경영진들로부터 익숙하게 들을 수 있는 얘기이다. 물량이 줄어드는 공장에서는 어김없이 정리 해고와 인력 감축이 실시되고 심한 경우에는 공장 폐쇄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 가지 의문

그렇다면 물량을 새롭게 유치하거나 늘어나는 곳에서는 그만큼의 일자리가 추가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경영진들이 자주 말하는 것처럼 나중에 생산 물량이 늘어나면 다시 부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물론 물량을 늘어남에 따라 자본가들은 가끔씩 신규 공장을 건설하기도 하고, 생산 능력을 확장하면서 교대 조를 추가하고 신규 고용을 늘리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 정도가 어느 만큼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문제에 대해 의문을 품을 만한 사례 하나가 있다. 2013년 3월, GM의 미국 플린트 엔진 공장에서 뷰익 앙코르에 들어갈 1.4리터 가솔린 엔진 생산을 한국GM으로 이전한다면서 104명에 대한 정리 해고를 단행한 적이 있다. 뷰익 앙코르가 한국에서 생산되어 미국에 수출되고 있으니, 그 엔진 생산도 한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엔진 생산이 이전된 한국GM에선 104명의 고용이 새롭게 창출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한국GM 엔진 공장에선 단 한 명의 고용도 늘어나지 않았다. 저 정도의 물량이면 잔업 특근 몇 번 더 시키는 방식으로 해소해 버린다. 상당한 규모의 엔진 생산 물량이 태평양을 넘어 이동했는데, 한국의 장시간 노동 시스템에서 104개의 일자리는 공중으로 증발하고 만 것이다.


▲ 한국GM 부평·창원 비정규직지회와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군산공장의 1교대제 전환을 반대하고 고용 보장을 촉구했다. 노동자 30여 명은 지난달 26일 전북 군산시청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사측이 군산공장의 1교대 전환을 추진 중이며 만약 1교대제로 전환되면 660여 명의 비정규직이 해고된다"고 주장하며 고용 보장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글로벌 GM의 노동력 변화

좀 더 스케일을 키워서 사례를 들어보도록 하자. 아래 그래프는 전세계 GM 노동자들의 숫자와 글로벌 GM의 차량 판매량을 연도별로 나타내본 것이다. 글로벌 GM 판매량은 웬만한 검색 엔진만 사용해도 구할 수 있는 수치들이지만, GM이 고용한 노동자들의 숫자를 찾아내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행히 GM이 매년 2월마다 발표하는 실적 자료(Annual Report)에 각 대륙별로 GM의 법인들이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숫자가 공개되고 있었다.

따라서 아래 그래프에 등장하는 수치는 모두 GM 본사가 공시한 자료에서 뽑아낸 것이다. 다만 2008년 이전의 수치는 구할 수 없었는데,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파산 보호 신청에 내몰린 이후 GM은 'Good GM'과 'Bad GM'으로 나뉘게 되고, 2008년 이전에 작성된 실적 자료와 2008년 이후 실적 자료가 통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프를 살펴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2009년에 판매량이 상당히 줄어들었으나, 이내 2010년에 2008년 판매량 수준을 회복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GM이 고용한 노동자 규모는 2008년 24만3000명에서 2009년 21만5000명, 2010년에는 20만2000명으로 급격하게 줄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이후 판매량 증가에 따라 고용 규모도 조금씩 늘어나기는 했으나, 사상 최대의 판매량을 기록한 지난해의 경우 오히려 전년 대비 고용 규모가 3000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이후 가장 많은 고용 규모인 2013년의 21만9000명은, 2008년의 24만3000명보다 2만4000명이나 줄어든 수치이다. 다시말해 생산량과 판매량은 과거 수준 회복을 넘어 훨씬 늘어나고 있지만, GM이 고용한 노동자 규모는 결코 과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생산량 늘어도 생산직 노동자 규모는 그대로

아래 표는 GM의 실적 자료에 나온 각 대륙 사업부별 노동력 규모를 연도별로 정리한 것이다. 여기서 IO(International Operations)라고 적시된 것은 GM의 해외사업본부로서, 한국GM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호주 지역의 법인들로 구성된 사업부를 뜻한다.


또한 2008년의 경우에는 IO 항목에 남미 법인이 고용한 노동자 규모가 합산되어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아울러 파산보호신청 이후 GM의 금융 관련 자회사는 GM 파이낸셜로 통합되게 되어 2010년 이후에는 '파이낸셜' 항목이 추가되어 있으나, 그 이전까지는 다양한 자회사들을 모아 'Corporate' 항목에 기입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륙별로 살펴보면 북미 대륙의 경우 2008년 위기의 영향을 가장 극적으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11만6000명이던 고용 규모는 2년 뒤인 2010년에 9만6000명으로 무려 2만 명이 줄어들게 된다. 대부분이 공장 폐쇄로 인한 정리 해고로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그 이후 고용 규모는 꾸준히 늘어나긴 했으나, 지난해 규모가 11만 명으로 과거 수준에 많이 근접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2008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이다.

IO 부문과 남미 대륙의 경우 소폭 증감을 보이고 있으나, 유럽 대륙의 경우 지난 5~6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2만 명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북미 대륙이 2008년 위기의 영향을 가장 극적으로 받은 경우라면, 유럽 대륙은 위기의 여파가 즉각적이지는 않았으나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기간의 길고 짧음이 있을 뿐 고통의 정도는 비슷했다는 얘기이다.

겉으로 보기에 고용 규모가 회복세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북미 대륙의 경우에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좀 다른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북미 대륙 고용 규모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의 경우를 따로 떼어놓고 살펴보도록 하자.




위 그래프는 GM의 미국 법인 소속 노동자들 중 생산직(US Hourly)과 사무직(US Salaried)의 규모가 연도별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나타내본 것이다. 이 수치들 역시 GM이 매년 발표하는 실적 자료에 나온 것을 활용하였다.

생산직과 사무직을 합한 총고용 규모는 2008년 9만1000명이었다가 2009년에 7만7000명으로 대폭 줄었으나, 2010년 이후 꾸준히 늘어나기 시작해 작년에는 다시 9만1000명 선을 회복했다. 그러나 붉은 색으로 표시된 생산직 노동자들의 규모를 보면, 2008년 6만2000명에서 2009년 5만1000명으로 대폭 줄어든 이후 2014년까지 5년 동안 이 규모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반대로 사무직의 경우 2008년 2만9000명에서 2009년 2만6000명으로 소폭 감소하였으나, 그 이후로 꾸준히 규모가 늘어나 작년에는 무려 4만 명으로 증가하게 된다. GM이 위기에서 벗어나 다시 원기를 회복하면서 글로벌 사업 전반에 대한 관장력을 높이기 위해 본사의 인력을 대폭 보강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08년과 2014년의 총고용 규모는 9만1000명으로 같은 수준이지만, 생산직과 사무직의 분포를 보면 2008년 '6만2000 : 2만9000'에서 2014년 '5만1000 : 4만'으로 완연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의 자동차 생산량이 엄청나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줄어든 생산직 노동자의 숫자는 결코 회복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노동조합 말살하려는 수단

'인사이드 경제'가 몇 차례 분석한 것처럼, 바야흐로 제조업은 이제 세계적 수준의 물량 이동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물량을 줄이고 공장 폐쇄에 나서지만, 어떤 곳은 물량이 늘어나 공장 가동률이 높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일자리의 총량은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즉, 세계적 수준에서 물량이 옮겨 다닌다고 일자리도 함께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물량을 유치한 곳에서 장시간 노동을 통해 일자리를 흡수해 버리거나 노동강도를 극단적으로 늘리는 방식으로 일자리는 증발해 버리고 만다.

따라서 생산량이 줄어들 때 잘려나간 노동력 규모는, 생산량이 이전 수준을 회복한다 하더라도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자본가들은 더 적은 인원으로 과거보다 더 많은 생산량을 뽑아내도록 요구한다. 그렇기에 초입부에 인용한 자본가들의 익숙한 속삭임은 대부분 거짓말이다. 나중에 물량이 늘더라도 신규 인력을 채용하거나 퇴직자를 다시 부르는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물량 감소를 이유로 한 인력 감축은, 최근 한국에서는 사내 하청·간접 고용 노동조합을 말살하려는 수단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이를 테면 지난달 30일 구미 4공단에 입주해 있는 일본계 기업 아사히글라스가 GTS라는 사내하청업체와의 도급계약을 전격 해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구미공장에는 3개의 사내 하청 업체가 존재하는데 다른 2곳은 가만히 두고 GTS와의 도급 계약만 해지한 것이다. 게다가 GTS와의 도급 계약 만료시점은 12월 20일인데, 계약기간보다 반년이나 앞서서 해지한 것이다. 도대체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3개의 사내 하청 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GTS에만 한 달 전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사히글라스 측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명분은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용 유리 생산 물량의 감소이다. 하지만 GTS와의 도급계약 해지로 이 업체 소속 170명의 사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쫓겨나게 되는데, 이 자리에는 아사히글라스가 보유하고 있는 다른 법인(한욱테크노글라스, 아사히피디글라스) 소속 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입된다.

즉, 물량 감소로 일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다른 대체 인력이 투입된다는 것이다. 이번 도급 계약 해지가 노동조합 말살에 가장 중요한 목표가 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런 사례는 비단 아사히글라스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강원도 삼척에 있는 동양시멘트에서도 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 고용노동부가 동양시멘트의 하청 업체들이 모두 위장 도급에 해당하기에 하청 노동자들을 전원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시정 명령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시정 명령이 나오자마자 동양시멘트 원청이 선택한 것은 하청 업체와의 도급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었다. 졸지에 100여 명의 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지난 6월 초에는 강원지방노동위원회 역시 위장 도급 및 정규직 전환 판정을 내렸음에도 동양시멘트 원청은 요지부동이다. 사용자들 앞에만 서면 엄정한 법 집행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작아지기만 하는 정부의 묵인방조 속에, 간접 고용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곳곳에서 업체 폐업과 집단 해고라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앞서 사례로 든 한국GM에서도 동일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군산공장 물량 감소와 1교대 전환이 이뤄지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에는 큰 변화가 없으나, 군산공장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올해 지속적으로 사직을 강요받으며 300여명이 쫓겨난데 이어, 끝까지 버티고 있는 198명의 사내하청 비정규직에 대해 전원 해고 예고 통보를 날린 상태이다.

현대중공업 울산공장 역시 올 상반기에만 업체 폐업이 10곳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선박 수주 잔량에는 큰 차이가 없음에도 하청 노동자들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도대체 뭘까? 그렇다. 올해 초에 한국GM 군산공장에 비정규직노조가 결성되었고, 현대중공업은 원·하청 노조가 협력하여 사내 하청 노동자 노조 가입 운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언론을 가끔 접하다 보면 자본가들이 "생산 공장을 그린 필드(Green Field)로 옮기려 한다"는 내용을 읽곤 한다. 자본가들이 말하는 그린 필드, 즉 청정 지역이란 곧 노동조합이 없는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아니, 노동조합이 없어서 청정 지역이라면, 그들에게 노동조합은 곧 오염물질이라는 뜻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언어 사용법에서부터 자본가들은 참으로 계급적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들도 이제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지금은 일감이 없어서 인력 감축을 할 수밖에 없지만, 나중에 물량이 늘어나면 다시 불러주겠다는 자본가들의 사탕발림부터 무시해야 한다. 그런 약속은 "생일날 잘 먹자"는 얘기보다 미덥지 못한 얘기이다. 반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다.

"나중 같은 소리 그만 하쇼. 과거에 생산 물량이 늘어날 때 언제 인력 충원 한번이라도 해본 적 있소? 죽어라고 우리들 잔업 특근으로 뺑뺑이 돌려놓고 말이야. 물량이 늘어도 인력 충원 하지 않았으니, 반대로 물량이 줄어도 인력 감원을 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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