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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장그래법' 시행되면 오 과장도 잘린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원 인터내셔널이 아니라 선희·혜미에게 지원금을!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 그리고 생활임금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 쉬운 방법이 하나 있다. 그걸 위해서 적극적으로 일하는 노동조합에 정부 지원금을 듬뿍 쏴주겠다고 하면 되잖아!"

괜찮은 아이디어 아닌가? 비정규직 노조들은 자기 일이니 당연히 열심일 거고, 정부 지원금까지 듬뿍 나온다면 그동안 비정규직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정규직 노조들도 나서려 할 테니 말이다. 아무래도 자본가들보다 노동조합이 이 문제에 더 적극적이니 성과도 꽤 나올 것임에 틀림없다.

"에이, 설마 그렇게 하겠냐…." 이런 반론이 벌써부터 귓전을 때려대는 것 같다. '노'와 '사'가 각각 서로 다른 이해 당사자인데, 어느 한쪽에만 지원금을 쏴주겠다고 약속하는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으면 다른 쪽에서 반발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사용자와 재벌을 지원하는 비정규직 대책?

그래, '인사이드 경제'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다. 어느 한쪽에만 듬뿍듬뿍 지원금을 쏴주면서 그걸 비정규직 대책이라고 내놓으면 다른 쪽이 가만히 있겠냐고 말이다.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가계소득 증대를 위한 정책은 물론이고, 조만간 발표될 '비정규직 종합 대책' 역시 온통 자본가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대책이니 말이다.

이를테면 박근혜 정부가 내어놓을 대책 중 하나는, 상시적인 업무에 투입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사용자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이다. 아니 '비정규직 지원을 위한 종합 대책'인데 왜 비정규직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지원금을 준다는 걸까?

게다가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쓰고 있는 업무 태반이 실제로는 상시적인 업무들이다. 즉, 정규직을 채용해야 할 업무에 비정규직을 투입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다. 그렇다면 그 업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비정상의 정상화'에 해당한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인데 돈까지 줘가며 지원한다고?

이건 앞뒤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차별이 확대되는 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자들이 누구인가? 재벌을 비롯한 사용자들이다. 그들은 틈만 나면 비정규직을 늘리고 임금을 삭감하려 한다. 그렇다면 사용자들의 그런 행태에 벌을 줄 생각을 하는 게 상식 아닌가.

▲ <카트>. ⓒ<카트>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지원을 받아야 할 쪽은 선희·혜미 그리고 노동조합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비정규직 양산에 가장 반대하는 세력,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영화 <카트>에 등장하는 선희·혜미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조합이다. 웹툰 <송곳>에 등장하는 지역 노동상담소들이다.

그들은 자기 몸을 희생해가며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를 위해 싸우고 노력한다. 영화 <카트>를 예로 들어보자. 정규직을 꿈꾸며 휴일 특근과 연장 근무도 마다 않고 일하던 마트 노동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집단 해고를 받게 되자 노조를 결성하고 고용 보장을 위해 나선다. 결국에는 노조 지도부의 희생을 조건으로 나머지 노동자들은 복직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박근혜의 비정규직 종합 대책은 어떠한가? 복직이라는 방식으로 고용을 유지한 것이므로 마트 사장에게 지원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과 생존권을 위해 몸을 던져 희생한 이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이 당연한 상식 아닐까?

자, '인사이드 경제'가 최근 1∼2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과 차별 해소를 위해 몇 가지 성과를 거둔 노동조합들의 사례를 열거해 보도록 하겠다. 이런 노동조합들을 지원하는 게 '비정규직 종합 대책'이 되어야 한다.

▲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서울 지역 주요 대학 청소 노동자 1000여 명을 조직하고 매년 집단 교섭을 통해 2011년 시급 4600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이던 노동자들의 임금을 2012년에는 시급 5100원, 2013년에는 시급 5700원, 2014년에는 시급 6100원으로 인상시켰다. 이와 별도로 식대 월 9만 원, 설·추석 상여금 각 18만 원으로 복지 혜택을 통일시켰다.

▲ 건설 일용 노동자 300∼400명을 조합원으로 조직하고 있던 대구 지역 건설노조는 2012년 지역 전체 건설 현장에 적용될 수 있는 임금협약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사업을 전개, 1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추가로 조직했다. 2012년 임단협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당을 1만3000원 인상시켰고, 2013년과 2014년에도 각각 1만2000원, 1만4000원씩 인상시켰다. 정시 출근, 정시 퇴근 준수 등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 강도를 완화하여 대구 건설 현장에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 희망연대노조 소속 케이블방송 씨앤앰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을 지원해 2013년 2월에 비정규직 노조 건설에 성공했고, 같은 해 정규직·비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임금 인상을 함께 요구해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봉을 360만 원 인상시키는 데 합의했다. 또한 같은 노조 소속 케이블방송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원청인 태광그룹을 상대로 34일간 파업을 벌여 평균 23퍼센트(45만 원)의 높은 임금 인상을 이뤄냈고, 노동시간도 일부 단축시키는 데 성공했다.
원 인터내셔널에는 페널티를 부여해야

웹툰과 드라마 <미생(未生)>에서 '원 인터내셔널'이라는 종합상사의 계약직 신입 사원 장그래는 끝내 정규직이 되지 못한다. 2년 계약직이 끝난 뒤에 계약 만료로 해고되고 만 것이다. 사실상 정규직보다 더한 노동 강도로 부려먹고 정작 채용해야 할 때에는 외면했다. 박근혜의 비정규직 종합 대책은 원 인터내셔널에 지원금을 주면 장그래를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겠냐는 식이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박근혜 정권 들어선 이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대표적인 사례만 돌아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인수위 시절, 한화 그룹이 1900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 바 있다. 취임 후 정권 초기에는 신세계 이마트가 1만 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했으며, 곧바로 SK 그룹이 5800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그런데 이들 사례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그렇다. 한화 그룹과 SK 그룹은 각각 김승연 회장, 최태원 회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정권 초기에 이런 조치를 통해 선처를 호소하려는 의도가 있었고, 신세계 이마트의 경우 노동부의 불법 파견 판정과 함께 직원 사찰을 비롯한 엄청난 부당노동행위가 폭로되면서 이를 무마하기 위한 조치의 성격이 짙었다.

쉽게 말해 인센티브(보조금/지원금)가 아니라 회초리를 들어야만 자본가들이 최소한의 정규직 전환 조치를 했었다는 얘기다. 원 인터내셔널이 장그래를 채용하면 지원금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반대로 장그래를 채용하지 않은 사용자에게 페널티를 주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늘리면서 이득을 보는 이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게 '비정규직 종합 대책'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은가?

'장그래법'? 만화를 라디오로 들었나

박근혜 정권의 비정규직 종합 대책은 몇 가지 윤곽만 나와 있을 뿐 아직 구체적인 대책으로 발표되진 않은 상태이다. 그러던 중 어제(23일) <중앙일보>가 1면 톱으로 "비정규직 4년으로 늘린다"라는 제목으로 예상되는 정부 대책을 매우 상세하게 보도했다.

특히 그중에는 본인이 원할 경우 비정규 계약직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만 35세 이상에게만 적용되도록 한다는 이 대책에 대해 <중앙일보>는 "계약직 구제 '장그래법' 마련"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어이가 없는 대목이다. 마치 2년만 일하고 잘리던 것을 그나마 4년은 일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미생>의 작가와 프로듀서가 명예훼손으로 소송이라도 걸어야 할 판이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려주는 게 비정규직을 위한 대책이라니?

'인사이드 경제'가 입 아프게 떠들 필요도 없다. 이런 대책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지, 이미 평범한 시민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보도가 나가자마자 SNS상에서는 '장그래법' 추진이라는 정부 대책에 대해 촌철살인과 같은 평가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비정규직을 4년으로 늘리는 장그래법이라니. 극중이라면 그런 새드엔딩이 어딨냐"
"만화 속 장그래가 알면 목덜미 잡고 쓰러질 법이라 장그래법인가?"
"장그래가 정규직 시켜달라고 했지 비정규직 연장해달라고 했냐"
"원래 단그래법이었는데 기간 연장돼서 장그래법임"
"장백기하고 안영이 결혼할 때쯤 퇴사하겠네"
"장그래법이라고 갖다 붙인 놈 입 잠그래"
"우리가 본 미생은 '취업의 어려움과 직장 생활의 애환, 비정규직의 힘듬' 등등이었다면 저분들이 미생에서 보신건 '그런 개차반 같은 환경에서도 성실하게 일하는 노예'"

▲ <미생>. ⓒ<미생>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정리해고' 말고 '일반해고'가 온다…'오과장법'?

이런 말도 안 되는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으면서, 정규직 과보호를 해소하기 위해 해고 요건을 완화하자고 한다. 일각에서는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려 하지 않겠냐는 얘기도 있지만,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정리해고 조항은 그대로 두고 '일반해고'라는 것을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일반해고'가 뭘까? 간단히 말하면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만 쓸 수 있는 해고 방식이라면, 일반해고는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없더라도 몇 가지 요건만 갖추면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일반해고의 요건을 '가이드라인' 형식으로 만들어서 공기업과 대기업부터 시행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자, 그럼 그 가이드라인이 뭘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일정한 '성과'와 '실적'을 요구한다. 그런데 상당수 노동자들은 그 목표를 맞추지 못한다. 자본가들이 애초부터 무리한 목표를 설정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자본가들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노동자에게 '훈련' 과정을 거쳐 다시 한 번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데 재차 삼차 기회를 주었는데도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 그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 바로 이것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일반해고'이다. 그래도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문답 형식으로 설명을 시도해 보겠다.

▲ 아니, 근로기준법 23조에 "정당한 이유 없이" 사용자는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 그러니까 상상을 초월한다고 하지 않았나. 박근혜 정부는 위의 과정을 거치면 그걸 '정당한 이유'로 봐줄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 그럼 법을 새로 만들든지 고치는 방식으로 해야 되는 것 아닌가?
-> 그렇게 하려면 국회 논의를 거쳐야 하는데, 야당이랑 논의하기 싫다는 것이다. 시간만 걸리니까 차라리 법 개정 없이 정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방식을 쓰는 것이다. 물론 가이드라인은 법 규정이 아니므로 한계를 갖고 있기는 하다.

▲ 가이드라인은 참고 사항일 뿐, 법에 명문 규정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 부당 해고로 소송을 걸면 법원에서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 논리적으로만 보면 맞는 말이다. 이게 정당한 해고인지 아닌지는 법원에 가서 따져볼 문제이다. 법 조항으로 명문의 규정을 두는 게 아니라 가이드라인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가이드라인만 갖고도 얼마든지 해고할 수 있다. 억울하면 밥 굶어가며 몇 년씩 걸리는 소송을 하라는 투로 대응할 것이다. 게다가 요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하는 짓들을 보라. 박근혜 정권이 원하는 방향 그대로 손을 들어주는 거수기 노릇을 하고 있지 않은가?

박근혜 정권이 하고자 하는 것은 '비정규직 고용을 보장하고 차별을 해소하는 대책'이 아니다. 대책 같지도 않은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으면서 반대로 정규직에 대한 해고를 쉽게 만들려는 것이다. 법을 만들어서 하면 시간이 걸리니까 정부 독단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가겠다는 거다.


만화와 드라마 <미생(未生)>에서 장그래만 잘리는 게 아니다. 정말 현실에서는 있을 법하지 않은 장그래의 상사, 즉 오 과장도 회사에 사표를 내게 된다. 원 인터내셔널에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회사 내의 이런저런 평판, 실적과 성과 위주의 평가 속에 밀려나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사표를 쓰는 거지만, 실제로는 쫓겨나는 거라 할 수 있다. 박근혜 정권이 하고자 하는 일이 바로 이런 거다. 오 과장이 사표를 쓰지 않더라도 자본가 눈에 미운털 박힌 사원을 언제든지 '일반해고'라는 이름으로 해고할 수 있는 것. 그럼 일반해고에는 '오과장법'이란 별명이 붙을 차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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