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시즌 KBO 리그에서 단연 돋보이는 성적을 올리고 있는 투수는 KIA 양현종이다. 23일 현재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중인 양현종은 만약 지금 시점에서 시즌이 끝난다면 2010년의 류현진 이후 5년만에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가 된다. 2010년에는 리그 경기당 평균득점이 4.98이었고, 올해 6월 셋째 주까지의 리그 평균 득점은 5.15점으로 투수들이 좋은 평균자책점을 올리기 힘든 환경이라는 점에서 양현종의 기록은 더 눈부시다.
이에 양현종의 올해 성적이 KBO 리그에 길이 남을만한 역대급 성적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이는 성적만 놓고 봐선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양현종의 지금 성적이 과연 시즌 마지막까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호랑이 팬들이 들으면 아쉽겠지만, 그 가능성은 그리 높다고 볼 수 없다.
물론 그 동안 양현종은 매년 전반기에 비해 후반기 성적이 떨어지던 선수였고, 그 어떤 선수라도 1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는 것이 워낙 힘든 일이기에, 지금의 성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얘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현종은 매년 후반기 체력으로 고전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캠프 때 수천 개의 공을 던졌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그렇게 하지 않고 힘을 아껴두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준비를 많이 해 왔다. 이에 예년의 체력저하 문제가 올해 또 나타날 가능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그걸 알면서도 성적이 유지되기 힘들 것이라 보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올해 양현종의 성적에는 ‘우주의 기운’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절대 오해하지 말라. 양현종에게 운이 함께하고 있다는 말은 절대 양현종의 올해 성적이 주사위를 굴렸는데 운이 좋아서 나온 성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겐 운이 따라주더라도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성공을 거둔 사람들 중에서도 순수하게 실력과 노력만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실력과 노력은 기본적으로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고, 거기에 운까지 따라줘야만 큰 성공을 이뤄낼 수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우주의 기운’이란 과연 무엇일까? 먼저 페어 지역으로 인플레이 된 공이 안타가 되는 확률인 BABIP를 꼽아볼 수 있다. 양현종은 현재까지 0.266의 매우 낮은 BABIP를 기록하면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와서야 제대로 주목 받기 시작한 BABIP은 ‘메이저리그 투수들 사이에서는 인플레이 된 공이 안타가 되고 범타가 되는 것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가 사실상 거의 없다’라는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들리는 주장에서 출발했다. 당연하게도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되면서 많은 반대에 부딪혔지만 놀랍게도 많은 증거를 따져본 결과 그 주장을 제대로 반박할 수 없었고, 이제는 정설로 여겨지면서 야구를 이해하는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었다.
저 명제는 KBO 리그에서도 마찬가지로 성립된다. 일각에서는 양현종의 구위가 뛰어나기에 힘없는 타구를 많이 유도하면서 범타의 비율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구위가 좋다고 해서 BABIP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야구 팬이라면 누구나 구위 하면 떠오를만한 선수인 랜디 존슨의 통산 BABIP도 0.291이며, KBO 리그를 초토화 시키면서 그 누가 봐도 리그 최고의 투수였고 최고의 공을 뿌렸던 류현진마저도, 통산 BABIP는 리그 평균에 수렴했다. 양현종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올 시즌을 포함해 최근 5년 동안 KBO 리그에서 20경기 이상 선발등판 한 투수 중 BABIP가 가장 낮은 선수들의 명단을 보더라도 낮은 BABIP와 구위를 연결 짓는 것이 얼마나 현명하지 못한 일인지를 잘 알 수 있게 된다. 다음 표를 보자.
위 표에서 가장 낮은 BABIP를 기록한 투수는 강윤구이며, 양현종이 그 뒤를 잇는다. 만약 당시 강윤구의 구위가 올해 양현종보다 더 뛰어나고, 명단에 오른 선수들이 그 해 리그에서 가장 구위가 뛰어난 투수들이라고 믿는다면 양현종의 구위가 뛰어나 범타를 많이 유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해도 좋다. 그러나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아마도 아예 없거나, 극소수에 그칠 것이 분명하다.
즉 양현종이 계속 지금과 같은 공을 뿌린다 하더라도, 페어 지역으로 인플레이 된 공이 안타가 될 확률은 지금보다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거기에 양현종은 원래 그동안 낮은 BABIP를 꾸준히 유지하던 유형의 투수도 아니었다. 2013년에는 0.317, 작년에는 0.321을 기록하면서 그 역시 리그 평균과 별 차이가 없는 수치를 보여주던 투수였다. 지금의 성적이 계속 유지되지 못 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 중 하나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매우 높은 잔루율을 꼽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위기상황에서 에이스급 투수의 경우 훨씬 더 전력투구를 하면서 타자들을 범타로 이끌어낸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도 마찬가지의 허상이다. 흔히 잔루율이라고 불리는 Left On Base Percentage(LOB%)를 봤을 때, 대부분의 에이스급 투수들의 잔루율도 역시 리그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즉 위기관리능력이라는 것은 마땅히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며, 좋은 투수들이 그렇지 못한 투수들보다 더 나은 점은 아예 위기를 자초하지 않는 면이 더 크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양현종의 잔루율은 89.9%로 대부분의 규정이닝을 채운 다른 투수들이 60% 후반대에서 70% 초반대에 머무는 것과 비교한다면 매우 높은 편이다. 양현종 본인도 작년의 잔루율은 60% 후반대에 그쳤다. 혹자들은 양현종이 주자가 나갔을 때 더 집중해서 던지고, 더 좋은 공을 뿌린다고 하지만 이는 클러치 히터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유과 다르지 않다. 이제 팬들은 클러치 히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정 기간 동안의 득점권 성적이 특출하더라도 그 기록이 그 선수의 실력을 말해주지는 않으며, 결국 득점권 성적도 전체 성적에 수렴해 나간다는 것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주자가 나간다고 갑자기 기운이 펄펄 솟아나는 선수는 없다. 투수도 타자와 다르지 않다. 앞서 BABIP와 마찬가지로, 최근 5년 동안 리그에서 가장 잔루율이 높은 투수들이 누군지 한 번 살펴보자.
명단에 있는 선수들이 과연 ‘위기관리능력’이 당 해 투수들 중 가장 뛰어났기에 저런 기록을 남긴 것일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범위를 더 넓혀보자. 1982년 원년부터의 기록을 살펴보더라도 20경기 이상 선발등판 하면서 90% 이상의 잔루율을 기록한 투수는 ‘단 한 명도 없다.’ 가장 높은 잔루율을 기록한 선수는 2010년의 류현진(85.8%)이며 85%를 넘긴 투수들은 단 4명에 그친다.
‘류현진’의 이름이 나오면 “그렇다면 정말 최고의 투수들은 원래 잔루율이 낮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2010년은 류현진에게도 그 부분에서 운이 따라준 해라고 볼 수 있다.
스포츠 뿐 아니라 그 어떤 분야에서도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내가 봤을 때 그럴 수는 있지만 사람의 뇌는 그렇게 뛰어난 저장장치라 볼 수 없으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특정 부분만을 기억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서 중요한 일들을 사람의 기억력에 의지하지 않고, 굳이 비용을 들여서까지 각종 저장장치에 저장해두는 것이다.
이렇게 스탯을 바탕으로 살펴봤듯이 분명 올해의 양현종에게는 엄청난 행운이 함께 하고 있다. 현재 양현종의 주위에 머물고 있는 ‘우주의 기운’이 계속 그와 함께할 확률은 매우 낮으며, 그러면 당연히 성적은 지금보다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운도 어느 정도 준비된 사람에게 따라줘야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법이기에 현재까지 양현종이 보여주고 있는 대단한 모습을 굳이 운빨이라며 억지로 폄하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굳이 운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억지로 부정할 이유도 없다. 원래 대단한 업적은 운이 함께 따라줘야 이룰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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