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반도평화포럼은 지난 26일 서울 조계사 불교역사문화기념관 대강당에서 광복 70주년, 6.15 공동선언 15주년과 <통일은 과정이다> 단행본 발간을 기념하는 특별좌담을 열었다. 이날 좌담에는 한반도평화포럼 공동이사장인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백낙청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와 강만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이만열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가 패널로 나섰다.
임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한반도 문제의 핵심을 이야기했다"고 평가하면서도 "북한이 신뢰를 보여야 우리도 신뢰를 줄 수 있다는 접근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남북 간 신뢰를 내세운 것은 잘한 일이지만,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7년은 그 이전 20년 동안 구축해왔던 한반도 평화와 남북 화해 노력을 부정한 시대였다"며 "남북은 사사건건 갈등과 대립을 겪으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켰고, 평화를 지키기도 어려워진 상태가 됐다"고 진단했다.
임 전 장관은 "물론 북한의 핵 개발과 무모한 군사적 강경책도 원인이지만, 강자인 우리가 북한을 다루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었다"면서 "이명박 정부 때 북한 붕괴론에 집착하면서 남북 간 대립이 격화됐는데 이 흐름이 박근혜 정부 취임 이후에도 이어지면서 남북이 경색 국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 국면을 돌파할 카드로 6.15 공동선언 15주년과 광복 70년을 잘 활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권 말기까지 남북관계 개선은 어렵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 이렇게 해야 통일된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이로 인해 통일로 가는 로드맵도 잘못 그리고 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이만열 교수는 "통일부 책임자나 청와대 내에서 통일분야를 담당하며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 가운데 북한과 제대로 접촉해 본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더라"라며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을 보좌해 통일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만길 교수는 "우리 통일은 베트남, 독일식의 통일이 아니라 과정을 밟아서 가는 통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남북이 어떻게 분단됐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분단의 위협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청·일 전쟁, 러·일 전쟁 시기에도 있었다면서, 이는 해양과 대륙 세력 모두가 한반도를 자신의 손에 넣고 싶어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중립화를 이뤄야 하지만, 세계 2차대전 직후에는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강 교수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의 쇄국정치로 남북 국민들은 중립화 국가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국제적 감각을 갖추지 못했고, 중립화가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도 맞지 않았다"며 중립화 실패 원인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냉전체제의 이야기다. 강 교수는 대립과 반목을 거듭했던 20세기 초와는 달리 20세기 말 세계사의 흐름은 지역공동체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면서 "우리의 통일 문제도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드는 흐름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독일의 통일 역시 유럽연합(EU)의 발달 과정과 연계돼서 나타났다"면서 "아세안 국가들과 한중일 3국이 함께하는 이른바 '아세안+3' 체제가 점점 강조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베트남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을 이 체제에 편입시켜 '아세안+4'로 체제를 개편하고 통일된 한반도가 대륙과 해양을 잇는 평화적 가교가 돼야 한다는 논리로 우리의 통일 문제를 부드럽게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백낙청 공동이사장 역시 독일의 통일과 남북의 통일은 다르다면서 남북 간에는 정치적인 타결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독과 서독은 통일은 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교류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의 남북 간 합의는 모두 통일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독일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긴 힘들다"면서 "더 정교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 이사장은 "중국과 대만처럼 활발한 교류를 하는 정도만 돼도 사실상의 통일이 된 것이라는 평가는 맞지만, 그 정도 수준으로 교류가 진행되기도 전에 남북은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일정 수준의 교류 협력이 진전되면 낮은 단계의 연합제를 합의하고, 이후에 진행되는 교류협력의 속도에 맞춰 남북연합, 낮은 단계의 연방을 합의하는 등 통일을 염두에 둔 정치적 타결을 차례대로 이뤄나가는 것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구 기득권세력 이길 수 있는 전략 보이지 않아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후 경색에 빠진 남북관계가 헤어날 방안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야당에도 이를 타개할 만한 명확한 비전이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백 이사장은 현재 야당에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 수구 기득권 세력을 이길 수 있는 전략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통일을 어떻게 할지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면서 "다른 일에서 잇속을 챙기는 것 보면 굉장히 유능한 사람들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백 이사장은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정권에 위기를 느낀 수구 기득권 세력의 반격으로 집권하게 됐다"면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국내 개혁과 남북관계 개선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서 진전시키는 노력이 부족했던 측면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기득권 세력의 막강한 힘을 이겨낼 만한 전략이 없었는데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에도 여전히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날 사회자로 나선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참여정부 직후에는 야당에서 전직 장관들을 불러놓고 자문을 구하기도 했는데,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부터 이런 관례가 사라졌다"면서 "우리 사회 '종북'이라는 강력한 주홍글씨에 야당이 굴복하면서 대안을 찾아보거나 합리적인 정책을 만들어 보려는 의지가 없어졌고, 대놓고 싸우지도 못할 정도가 된 것 아닌가 싶다"고 진단했다.
야당의 이러한 지지부진함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은 없을까? 백 이사장은 젊은 세대들에게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무엇인지 명확한 비전을 보여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일은 과정이라는 명료한 비전을 가지고 젊은 세대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줘야 한다. 통일이 이뤄지지 않을 때 우리 사회에서 어떤 퇴행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알려야 한다"며 "청년 실업을 비롯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문제 등도 분단이 낳은 폐해라는 점을 설명하면서 이를 극복해 나가자고 설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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