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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北 붕괴' 전제한 통일대박론, 부메랑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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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세현 "'北 붕괴' 전제한 통일대박론, 부메랑 될 수도"

[정세토크] 통일 문제 중국과 협의하겠다는 美 국무장관, 속내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과 남북통일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져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고위 정부 당국자가 공개석상에서 통일문제를, 그것도 중국과 논의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미국이 북한의 급변사태나 붕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은 케리의 이번 발언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가 보기엔 전혀 통일의 기운이 없고, 중국이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 논의를 미국과 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은 상황에서 케리 장관이 그런 메시지를 던진 의도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케리의 메시지를 두고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퍼뜨려 미국이 의도하는 다양한 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우선 동북아의 안보 상황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며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정 전 장관은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 일본의 힘을 빌리기 위해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키워줘야 할 필요가 있는데 여기에 북한이 이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 군사력 강화의 출발점은 집단적 자위권의 인정인데, 이를 정당화시키려면 ‘한반도에서의 유사 상태’가 필요하다”면서 “케리의 발언은 이러한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관련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 전 장관은 “북핵 위협, 또는 북한 급변사태 등을 전제로 한 외교란 결국 남북 대치 상태의 지속과 심화, 나아가 미·중, 일·중 군사 대결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결코 득이 될 수 없다”며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한 통일 대박론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그는 “미국과 일본이 북한의 유사 상황을 핑계 삼아 합동으로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는 상황이 되면 남북대화는 시작도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한일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지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독도, 야스쿠니 문제 등으로 언제까지 일본과 얼굴을 붉히고 있을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는 지난 8일 박인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이사장과 대담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 지난 1일(현지시간) 뮌헨에서 열린 안보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미국 존 케리 국무장관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최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중국과 남북통일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1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안보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 “2주일 뒤에 중국을 방문해 북한 이슈를 협의할 것”이라며 “(남북) 통일 문제와 남중국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국무장관이 공개석상에서 한반도 통일 문제를 중국과 논의하겠다고 밝힌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연초부터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2015년 자유민주주의체제 통일’을 외쳤다는 보도가 있었는가 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언급했고, 한 보수신문은 통일 관련 대형 기획기사들을 내보내고 있어 마치 북한의 붕괴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분위기마저 풍기고 있습니다. 최근의 통일 담론, 어떻게 보십니까?

정세현 : 지난번에도 얘기했던 것처럼 통일에 대한 관심이 점점 옅어지는 요즘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이 직접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표현을 써서 통일의 편익에 대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통일의 편익을 이야기했다는 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2015년 자유민주주의체제 통일론’이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보다 먼저 나왔다는 점에서 결국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남북관계 개선 등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진행되면서 통일 대박론이 나왔다면 진정성을 인정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현재 신뢰프로세스는 시작도 못하고 있고, 남북관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긴장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이렇게 아무런 진전도 없는 상황에서 통일 대박을 강조하다 보니 대통령의 통일론이 흡수통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케리 장관의 발언은 곱씹어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현재 통일의 기운이 전혀 없는데, 미국이 나서서 남북이 통일됐을 때 한반도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미·중 간 대화를 시작하자는 것 아닙니까? 현재처럼 남북관계가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통일을 얘기한다는 것은 북의 붕괴에 의한 남의 흡수통일을 의미하는 것일 텐데 중국이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미국과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한 논의에 동의할 가능성이 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중국은 지금까지 한반도 통일에 대해 두 가지 원칙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습니다. 첫째 평화적으로 통일돼야 하며, 둘째 남북이 합의 하에 통일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북 합의 하에 통일이 돼야 한다는 말은 지정학적으로 중국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북의 동의 없이 남에 의한 일방적인 흡수통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중국의 국력이 급성장하면서 최소한 동북아에서는 미국과의 군사적 분쟁에서 밀리지 않을 정도는 됐다고 봅니다. 물론 동북아 이외의 지역에서 미국과 군사적 힘겨루기를 한다면 상대가 안 되겠지만, 적어도 중국과 지리적으로 연결돼 있는 한반도에서 중국이 미국과 힘겨루기를 한다면 그렇게 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통일이 임박했으니 대국들이 한반도 통일문제 논의해보자는 케리 장관의 제안에 중국이 동의해 나올 리가 없다고 봅니다. 여기서 말하는 통일이란 북한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케리 장관은 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일종의 성동격서 전략입니다. 통일을 대비하는 척하면서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퍼뜨리고, 이를 통해 동북아의 안보 상황이 혼란스러워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키워주기 위한 의도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즉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는 데 일본의 힘을 빌리려는 것이지요. 미국은 앞으로 10년간 국방비를 매년 약 500억 달러씩 줄여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자국의 군사력 대신 일본을 내세워 중국을 견제하려 합니다.

일본 또한 점차 강력해지는 중국의 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해 스스로의 군사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일본이 중국의 대항마로 나서려면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정당화시켜줄 명분이 필요합니다. 일본 군사력 강화의 출발점은 집단적 자위권의 인정인데, 이를 정당화시키려면 ‘한반도에서의 유사 상태’가 필요한 것이지요. 즉 북한의 군사적 위협, 나아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일본도 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케리의 발언은 이러한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결국 미국은 미·중 경쟁 관계를 일·중 경쟁 관계로 치환해서 일본의 힘을 빌려 적은 비용으로 계속 동북아 상황을 관리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한미동맹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점을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 미국이 만들려고 하는 동북아 국제질서의 틀이 짜여지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외교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북핵 위협, 또는 북한 급변사태 등을 전제로 한 외교란 결국 남북 대치 상태의 지속과 심화, 나아가 미·중, 일·중 군사 대결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결코 득이 될 수 없습니다. 현재 한국은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일과 중국의 외교적, 군사적 대립이 심화된다면 한국의 입장이 참으로 난처해질 것입니다.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한 통일 대박론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우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동북아 외교전에서 우리가 칼끝을 쥐게 되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의 유사 상황을 핑계 삼아 합동으로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는 상황이 되면 남북대화는 시작도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지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독도 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의 때문에 언제까지 일본과 얼굴을 붉히고만 있을 것인지, 한일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 것만이 능사인지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그동안의 일반적인 관측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 사회과학원은 2014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발전보고서에서 북한에 대해 ‘중국이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쉽게 말해 ‘중국은 북한을 버릴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중국의 진의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정세현 : 지난해 말 장성택의 전격 처형 이후 중국과 북한이 좀 불편해진 측면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장성택은 북·중 관계를 잘 관리해 왔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장성택 처형을 불과 30분 전에 중국에 알렸다고 합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최근에 핵실험도 멋대로 하고 북·중 관계 책임자 처형도 30분 전에 통보하는 등, 중국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제멋대로 굴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경고를 보낸 것이 사회과학원에서 나온 “중국은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판을 불식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로 보입니다. 일종의 외교적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경고는 그동안 한미 간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은 전직 관리나 영향력 있는 외교 전문가 등을 우리 쪽에 보내서 슬그머니 “이렇게 되면 미국이 안 좋아할 텐데”라는 식으로 경고 메시지를 전하곤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2001년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나왔던 전력 공급 문제입니다. 당시 경수로 공사가 지연되고 있어서 북한이 이대로 가면 원래 계획했던 200만 킬로와트 전기를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송전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엔 200만 킬로와트는 너무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50만 킬로와트 정도를 송전하는 것을 두고 남북이 협의 중이었는데 2002년 초 미국의 CFR(Council on Foreign Relations: 대외관계협의회) 멤버들이 한국에 와서 사견임을 전제로 하면서 사실상 미국 정부가 좋아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그래서 이 송전 논의 자체가 중단된 적이 있습니다. CFR은 미국의 전직 외교관과 학자, 재계 인사 등이 모인 단체로 미국의 외교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런 식으로 정부 주변의 전문가들을 통해 정책 수정을 요구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비공식적인 메모인 라는 것을 보내기도 합니다. 나중에 일이 커지면 우리는 모른다는 식으로 덮기 위한 것이죠. 간혹 실무자들의 실수라든지 양심선언 같은 것이 나와 미국의 압력을 받았다는 상황이 외부로 알려지게 되더라도, 이런 메모 형식이면 미국도 한국도 누가 했는지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정부의 공식 문서 아니지 않느냐는 식으로 발을 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메모 형식을 빌리지만, 중요한 것은 미국 정부가 실질적으로 한국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1970년대 박정희 정부가 자체 핵개발에 나서는 등 미국의 말을 잘 듣지 않자 미국은 주한미군을 뺄 수 있다는 식으로 겁을 준 적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중국도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북한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봐야지요. 이번 중국 사회과학원 보고서는 북한 정부의 대중 협조를 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경고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어떤 식으로 경고를 하든 미국정부는 결코 한국을 버릴 수 없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에 경고를 할 수는 있지만 북한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환구시보> 같은 관영매체에도 가끔 북한이 들으면 기분 나쁠 만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북한으로 하여금 중국 정부의 본심이 이건가 라며 확인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중국은 과거부터 주변 국가들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잘 도와주더라도 멀리 못 가게 만드는 경고를 많이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경고를 너무 크게 받아들이고, 그걸 토대로 중국의 대북정책이 바뀌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현명치 못한 일입니다.

북한 붕괴,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프레시안 : 장성택 처형 이후 2015년 자유민주주의 통일론과 통일대박론이 나오고, 여기에 케리 장관의 중국과의 남북통일 논의 발언, ‘북한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요지의 중국 사회과학원 보고서 내용 등이 보도되면서 국내에서는 북한 붕괴가 임박했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의 붕괴론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현재 북한의 상태가 어떻다고 보십니까?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 북한 붕괴론과 관련해서 북한의 상태를 질문했는데, 북한의 상태를 진단하기 전에 소위 북한붕괴론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에 무슨 일만 생기면 북한붕괴론이 나왔습니다. 북한붕괴론은 이번이 다섯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1980년대 말 90년대 초 동유럽 국가들과 소련에서 체제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그때는 아마도 북한에서도 동유럽이나 소련에서처럼 체제전환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입니다. 일종의 ‘희망적 관측’이었다고 봐야지요.

그러다가 1994년 7월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김일성 주석이 급사하자 다시 북한붕괴론이 탄력을 받았습니다. 김일성 사망으로 두 번째 붕괴론이 고개를 든거지요. 1년 이내 줄잡아 3년 내에 북한은 붕괴할 거라는 기대가 일어나면서 흡수통일론이 유행하고 국내외 북한경제 전문가들 사이에 남북통일비용 계산 경쟁이 붙었습니다. 그런데도 북한은 붕괴하지 않았고 70년대 초부터 권력승계를 준비해온 김정일 비서 중심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김정일 비서의 정치노선인 ‘선군정치’ 때문에 존재감이 약간 떨어지기는 했지만, 조선노동당도, 사회주의체제도 건재했습니다. ‘국가’도 ‘사회주의체제’도 ‘정권’도 그대로 유지된 겁니다.

세 번째 붕괴론은 1990년대 후반 탈북자들이 대거 남한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붐을 탔습니다. ‘희망적 관측’을 하는 일부 전문가들의 전망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1990년대 후반을 넘기고 2000년대 들어 대미(對美)협상도 하고 6자회담도 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도 했지요. 그 중간중간에 미사일도 발사하고 핵실험도 하면서 ‘국가’와 ‘사회주의체제’와 ‘김정일정권’을 유지해 나왔습니다. 2011년 말,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자 북한붕괴론이 또 나왔었습니다. 네 번째도 안 맞았지요. ‘국가’, ‘사회주의체제’ ‘김정은정권’이 그런대로 굴러갔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12월 12일 장성택이 처형되고 난 뒤 다섯 번째로 북한붕괴론이 다시 붐을 타는 것 같습니다.

김일성이 없는데도 북한의 ‘국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체제(조선노동당)’ ‘김정일 정권’은 붕괴하지 않고 버텨왔습니다. ‘김정일 정권’이 ‘김정은 정권’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김정은의 장악력이 김정일만큼 안 되기 때문에 김정은 정권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그것도 ‘희망적 관측’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장성택 사건으로 민심이 김정은으로부터 떠나서 북한이 붕괴할 거라는 것도 기대에 찬 전망일 뿐입니다.

여기서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북한붕괴론이 개념적으로 분명치 않고, 범벅이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북한 최고 권력자의 축출, 즉 정권붕괴를 북한붕괴라고 보는 것인지? 사회주의 체제 포기. 즉 조선노동당의 붕괴를 북한붕괴라고 보는 것인지? 국가,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멸을 북한 붕괴라고 규정하는 것인지. 정권의 권력자가 축출되어도 체제는 그대로 존속될 수 있고, 체제가 바뀌어도 국가는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동유럽 국가들 중 최고 권력자가 축출되거나 처형된 나라도 있고, 체제전환을 한 나라도 있지만 ‘국가’들은 건재하지 않습니까?

북한의 경우, 백두혈통론을 토대로 형성된 독특한 정치문화 때문에 김정은이 가까운 시일 내에 다른 사람으로 바뀔 가능성은 적지만,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체제가 바로 바뀔 가능성은 적습니다. 설사 체제전환이 다소 일어나더라도 그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통일을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북한지역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가 소멸할 수 있는 상황이 되더라도, 그것이 곧 대한민국의 헌정질서가 압록강-두만강 이남지역으로 자동 확장되는 걸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가치 때문에 국제간섭이 일어나면서 우리의 지분이 아주 적은 수준에 머물고 말 가능성이 더 큽니다. 다만 그 전에 화해협력이 꾸준히 진행된 나머지 남북의 민심이 연결되어, 통일의 구심력이 통일의 원심력보다 훨씬 커진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학자들이 학회같은 데서 이런 문제에 대해 개념적 정리를 해주어야 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언론도 붕괴의 주체가 국가인지, 체제인지, 정권인지 개념 규정 없이 북한 붕괴론을 얘기하는 건 지금 시대가 통일문제나 북한에 관한 한 중우정치(衆愚政治)시대라는 걸 뜻합니다.

프레시안 : 개념들이 범벅이 된 상태에서 북한붕괴론이 횡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인상적입니다. 지금 돌아다니는 북한붕괴론은 아마도 김정은 정권 붕괴를 뜻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북한 내부 상태는 어떻습니까? 김정은 정권의 장래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정세현 : 북한 상태를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가까운 장래에 북한에서 정권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북한 정권붕괴의 조건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경제난이 극심한데 해결책이 없을 때, 또 하나는 권력을 대신 장악할 수 있는 세력이 있을 때입니다.

경제난의 대표격인 먹는 문제를 우선 살펴보면, 최근 북한은 신년사에서 농업 문제의 우선순위를 굉장히 높여놓았고 축산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습니다. 북한이 식량난에 허덕여서 농업문제가 주요 어젠다로 나왔을까요?

이명박 정부 이후 남쪽의 식량 지원이 일체 없었고 북한이 지난해 3차 핵실험을 한 이후 유엔 제재 때문에 국제사회의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WFP(유엔 세계식량계획)의 분석 보고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식량 문제는 없었고 오히려 식량이 증산됐다고 했습니다. 이는 현재 북한에서 그만큼 먹는 문제가 긴박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북한은 의식주(衣食住)를 ‘식의주’로 표현할 만큼 먹는 문제를 중시합니다. 김일성은 ‘쌀독에서 인심 난다’, ‘기와집에서 비단옷 입고 이팝(쌀밥)에 고깃국 먹고 싶어 하는 인민들의 세기적 염원을 기필코 90년대에 달성하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습니다. 올해 신년사에서 농업 문제가 높은 순위의 어젠다로 나왔다는 것은 이번에 내친김에 식량 증산을 확실하게 하고 그다음에 축산을 발전시켜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도록 하자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 말은 체제가 상당히 안정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추후 식량 증산을 하겠다고 하면서, 주식인 쌀뿐만 아니라 고기, 채소, 버섯 증산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는 ‘식의주’ 중에 ‘식’문제가 상당한 정도로 안정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 지난 3일 북한 전국 농업부문 분조장 대회에 참석한 참가자들이 평양남새과학연구소를 방문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먹고 사는 문제와 더불어 북한 정권 붕괴의 또 다른 중요한 조건이 김정은 이외에 권력의 중심에 내세울 만한 인물이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폭동을 조직하거나 이를 실행할 때 구심점이 돼서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는 건데 북한엔 그런 인사가 없습니다. 장성택 처형 후에 종파행위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으로 다른 마음을 못 먹게 만들고 있습니다. 동시에 신년사에서도 백두 혈통에 대한 충성을 가르치는 사상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했고 이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정권 붕괴가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최근 나오고 있는 붕괴론은 희망적인 관측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인기가 많았던 장성택이 처형되고 나면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질 것이고, 김정은 이외의 대안을 찾으려고 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말 그대로 희망사항에 불과합니다. 북한 정권 붕괴를 전제로 한 이른바 ‘2015년 자유민주주의체제 통일론’이 국정원에서 나왔지만, 실제 국정원 내의 북한 전문가들 중에서도 북한 정권이 쉽게 붕괴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프레시안 : 북한은 지난해 핵실험을 비롯해 군사적 긴장을 극도로 높였던 반면, 올해에는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고 이산가족 상봉도 받아들이면서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오는 모습입니다. 북한의 진짜 속내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정세현 : 여러 분석이 있는데, 그중 우리가 세게 나가니까 북한이 굽히고 들어온다는 분석은 아주 1차원적인 이야기입니다. 또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남쪽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려는 거 아니냐는 분석도 있는데, 이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북한은 대규모의 쌀이나 비료 지원이 아닌 한, 통상적인 교류 협력 차원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은 이제 북·중 관계에서 얼마든지 얻어낼 수 있습니다. 굳이 북한이 남쪽으로부터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서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유화적인 제스처는 내부 경제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정세안정과 군사적인 낭비를 막기 위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한반도 정세가 불안하면 군사적 긴장으로 인해 대규모 군사훈련을 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데, 북한 입장에서 보면 한정된 자원에서 훈련을 하는 것이 그대로 자원을 버리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사훈련에 동원되는 석유나 병력을 경제적인 분야로 돌려쓰면 그것 자체로 남는 것이고 잘만 하면 확대재생산도 가능합니다.

또 올해 신년사에서 농축산 분야 생산을 유난히 강조하고, 그것도 구체적으로 쌀, 고기, 채소, 버섯이라는 품목까지 제시한 것을 보면 북한 주민들한테 확실한 선물을 주겠다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걸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 분위기를 만들려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관계가 좋아져서 비료 같은 것이 남쪽에서 온다면 북쪽으로서는 좋은 것입니다. 설사 오지 않더라도 최소한 대화국면이라도 굴러가면 그걸 핑계 삼아 한반도를 유사 상황으로 몰고 가려는 미·일의 동아시아 전략을 견제하면서 미국의 대북압박을 줄일 수 있는 조건을 갖출 수도 있습니다.

종합해보면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한정된 자원을 경제발전 쪽으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이 해마다 군사훈련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저항하는 것이 군사훈련을 한 번 할 때마다 떠내려가는 자원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속내가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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