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유럽의 첫 방문국 독일이다. 공항에 내려서 본 프랑크푸르트. 그곳 사람들의 키와 건장한 체구는 우리를 마치 거인국에 데려다 놓은 듯 왜소함으로 위축시키며 갑자기 초라모드로 전환시켰다. 게르만 민족의 유전자란…. 심지어 말도 잘 못하고 어버버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기가 죽었었는지 알만하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우선 통신부터 개통한다. 통신이 되어야 숙소도 검색하고 이곳저곳 가야할 곳의 위치도 점검하고 이동경로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는 우리가 유럽여행의 기점을 삼은 곳이니 해야 할 일이 많다. 우선 렌트한 차를 받아야하고, 캠핑준비를 위해 캠핑 장비를 사야하고, 캠핑을 하려면 장도 봐야하고 유럽의 전체적인 일정도 세워야한다.
우선 독일의 유명한 렌터카 업체 허츠를 방문한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해 놓으면 할인 폭이 크다고 해서 미리 예약을 해놓았기 때문에 가서 픽업만하면 된다. 그러나 슈퍼커버를 미리 예약한 것으로 알았는데 보험을 추가로 가입하면 내비게이션도 주고 디젤차량으로 전환도 가능하다는 직원의 권유로 슈퍼커버를 가입하고 디젤차량을 건네 받았다. 주차장에 가서 차를 받고 얼마나 긴장했는지 브레이크를 밟고 차의 시동을 걸어야 하는 것도 잠시 잊어버리고 시동조차 못 켰으니 말이다.
이렇게 시작된 유럽 여행의 첫걸음은 좌충우돌 혼미했다. 처음엔 내비게이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헤매고 내비게이션의 지시를 잘 이해 못해서 길도 헤매고, 신호체계에 익숙해지는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준비를 잘 못했기 때문에 더 정신이 없었지만, 애써 준비를 많이 해도 우왕좌왕하긴 매한가지 일 듯하다.
더군다나 동남아시아를 거쳐서 오다보니 몸으로 느끼는 물가 차이가 커서 처음 호텔을 정하는데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니다. 독일은 4명이면 더불룸을 두개 잡거나 아파트 형식의 양쪽 방을 사이에 둔 숙소를 얻어야 하니 생각했던 예산의 두 배도 훨씬 넘는 비용에 기함하기도 했다(시간이 지나 유럽물가에 익숙해지니 그것 쯤이야 하게 되었지만).
결국 빠르게 캠핑장비 구입에 나섰고, 데카트롱이라는 유명한 아웃도어 전문매장에서 4인용 텐트와 탁자, 의자, 슬리핑백 2개, 에어매트 2개, 버너 2개 등 일체장비를 구입했다.
그리고 첫 캠핑! 여행 후 처음으로 삼겹살도 구워먹고 야외 캠핑이 너무 즐거웠지만 4월초유럽의 밤은 너무 추웠다. 한기가 온몸에 스며드는데, 옷을 끼어 입고 자도 깊은 잠에 빠지지 못하고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온몸으로 파고드는 한기를 떨쳐버리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우리는 캠핑장비를 다 구입하고도 밤의 한기 때문에 캐빈이나 모바일 홈이 있는 캠핑장을 주로 이용했다.
여행에서 언제나 빠질 수 없는 삼시세끼!
독일을 포함해서 유럽 어디든지 있는 대형슈퍼에 들른다. 비싼 숙박비와는 다르게 과일, 빵, 고기가 생각보다 싸다. 또 이곳은 소시지가 유명해서 싸고 맛있는 흰색 소시지에 온 식구가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독일에서 유명한 맥주가 싼 건 말할 것도 없으며 심지어 물보다 맥주가 싸니 말이다. 특히 하이델베르그를 지나며 그곳 바에서 마신 하우스 맥주의 풍미는 혀와 입천장을 돌아 입안 가득 고소함을 남겨 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경제 중심지이고 금융의 메카로서 실질적인 제1도시이며 학문의 중심지이기도하며 그 유명한 프랑크푸루트 학파도 배출시킨 곳이지만, 우리에겐 모든 것이 생경하고 서툴렀고 좌충우돌하였던 유럽 여행의 첫출발지로서 모든 준비를 가능하게 해준 고맙고 친근한 도시로 기억되었다
한적함과 고즈넉함에 반해버린 도시 루덴베르그
고속도로를 지나다가 성표시에 그냥 빠져서 들렀던 도시.
기대없이 들렀지만 그 한적함과 고즈넉함에 반해버린 도시.
차에서 내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가득한 봄의 향기.
초록잔디 틈으로 예쁘게 솟아오른 들풀들.
이제 막 연둣빛 새순을 틔어 봄의 설렘을 알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풀과 나무들.
이 모두를 비추고 있는 따사로운 봄볕.
이곳에 자리펴고 누워 책도 읽고 낮잠도 자고 도시락도 먹는 상상이 절로 일어나는 곳, 마르크스, 니체 등 유명한 철학자들의 상상이 오버랩되는 그런 풍경이었다.
도시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고성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뒷골목은 전혀 손대지 않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웅장하지 않지만 소박하고 수줍은 모습 그대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독일은 거의 모든 도시의 고성이 아름다웠다. 이제 독일을 떠나왔지만 아직도 처음의 그 흥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예쁜 도시모습이 발길을 잡아 들러본 숙소의 작은 다락방에 세모모양의 창문사이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우리를 동화속 세계로 데려가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 네 식구가 자기엔 너무 작은방이라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곳을 떠났다.
또 하나 우리를 흥분시킨 것은 학교다. 중고교 과정을 함께 배우는 곳이라는데 교문도 없고 학교인지 박물관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자유분방함, 친환경적 체육시설, 한가로운 놀이터까지 하나 하나 모두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우리 큰 애는 이 학교를 보며 이런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면 오히려 만행이라고 했다. 평소 우리나라 주입식, 천편일률식 교육에 불만이 있던 터라 이런 교육환경은 우리 부부에게도 우리 딸들에게도 탄성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난 처음 들른 독일의 이 소도시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설산과 투명한 호수로 알프스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베르히데스 가덴
독일인들이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볼 곳으로 선정했다는 베르히데스 가덴은 설산과 퀴닉제 호수 그리고 동화 속 그림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오스트리아 접경지역에 위치한 알프스의 산자락이다.
베르히데스 가덴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접경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퀴닉제라는 아름다운 호수 위에 알프스 산맥의 자락인 설산이 자리하고 있다.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파노라마 길은 절반은 독일지역 절반은 오스트리아 지역으로 이 길을 지나는 동안 휴대폰이 국경을 왔다 갔다해서 계속 경고음을 울려댔다.
우리는 여기에서 캠핑장을 찾다가 실패하고 펜션이라고 이름 붙은 아담한 곳에 숙소를 잡았는데 다음날까지 이곳이 오스트리아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국경이라는 표시가 당연히 인지할 수 있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작 표지판 하나! 그것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런 표식이었다. 한국이라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의 국민인 우리는, 국경은 모름지기 몇km는 공백을 가져하며 삼엄한 분위기의 초소와 총칼을 찬 군인 한명은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대를 여지없이 깨버리며 국경이라는 의미를 무색하게 했다.
사회는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에 단지 국경의 경계가 있고 없고의 차이이지만 적어도 이곳의 사회는 인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징표인 듯했다. 우리 애들은 한국에서 여행준비를 하며 비행기를 안타고 다른 나라로 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 했었다. 한나라를 이동하는 데는 반드시 비행기를 타야 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동남아를 거쳐오며 버스로 국경을 넘을 수 있지만, 수속과 절차를 거쳐야 하는 지루한 과정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유로존에 가입된 국가여서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다고 해도 하다못해 차단막 하나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도 아이들도 표식 하나로 국경을 대신하는 이런 상황에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은 이렇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수많은 다양성들을 통해 나를 풍요롭게 하는 과정.
또 그곳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친구임을 느끼게 되는 과정.
그리고 이런 다양성과 친구들을 통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 가온가람이 가족 세계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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