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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울림' 일으킨 만남, 새로운 가족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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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울림' 일으킨 만남, 새로운 가족이 됐다"

[온 가족 세계여행기] 카오산 로드에 취하다

라오스에서 태국 국경 육로로 넘어가기

라오스의 수도로 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비엔티엔을 떠나 태국으로 출발한다. 태국은 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고 특히 버스가 참 좋다. 2층으로 되어 있고 칸칸이 비디오도 설치되어서 보면서 갈 수 있다. 주로 야간에 장거리 이동을 하기 때문에 버스에서 잠을 잘 준비를 하느라고 미리 저녁도 먹어두고 물과 간식도 사고 화장실도 다녀오는 등 이것저것 사소한 준비들을 한다. 물론 장거리 이동버스는 주로 화장실이 버스 안에 있기도 하지만 청결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때론 참고 때론 간간히 들르는 휴게소의 화장실을 이용한다.

여행 중 화장실 사용은 생각보다 긴장감을 유발하는 지점이다. 특히 우리처럼 청소년기 여자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때는 더욱 그렇다. 생리적 현상이라서 마냥 참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는 곳에 매번 화장실이 떡하고 나타나 주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매번 화장실을 찾느라 분주하고 휴지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베트남에서 화장실은 급하고 휴지는 없고 해서 휴지를 사기위해 시장 한바퀴를 돌고 난 이후에는 내가 일상 중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휴지를 챙기는 일이 되어버렸다. 일상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사소한 것이 여행에서는 가장 먼저 준비해야하는 1순위가 되기도 한다. 하루 삼시세끼를 먹고 배출을 잘 해내고 잠자리를 잘 챙기는 이른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매일 매일 몸으로 고스란히 체험하며 왜 여행이 인간의 맨얼굴과 대면하게 되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육로로 처음 국경을 넘어본다. 버스터미널에서는 일반버스 타듯 아무런 심사 없이 짐 싣고 출발한다. 국경통과지점에 와서야 버스에 있는 모든 짐을 내려서 각자 짐을 챙겨들고 심사대를 통과해서 다시 버스에 올라탄다. 육로로 국경을 처음 넘어보는 거라 모든 게 신기하기만 하다. 처음엔 버스에 실린 짐을 국경직원들이 알아서 검사하는 줄 만 알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짐 분실의 우려도 있고 많은 개별 버스터미널에 심사대를 놓아둘 수도 없을 것이고 그 많은 짐을 꺼내서 일시에 스캔할 정도의 기술력도 갖추기 어려우니 각자가 짐을 찾아 심사대를 거치는 것이 합리적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과정인데 그것마저도 아리송해 한 것은 육로가 모두 차단된 한국이라는 특수성에서 나온 나의 상상력 부재임이 틀림없다. 이후 국경을 여러 번 건너다니다 보니 개개인이 짐을 찾아서 심사대를 거치고 다시 버스에 싣는 다소 번거럽고 지루한 시간도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근엄한 왕궁과 다양성이 가득한 카오산 로드

태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자거리로 불리는 곳이 카오산 로드다. 우리는 이곳에 숙소를 잡고 방콕시내와 주변을 둘러본다.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는 왕궁은 그 더운 날씨에도 민소매와 반바지 차림을 거부하며 대여해주는 긴 치마같은 옷으로 갈아입어야만 출입할 수 있다. 왕궁 출입 시 복장검사가 삼엄하다. 큰 아이는 더위도 심하게 타는데다가 거추장스러운 치마까지 둘러쓰고 땡볕을 걸어 다니고 있으니 참을성이 폭발하고 만다. '에이 정말!' 하며 치마를 걷어 올려 들고 다니다가 왕궁지킴이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지적을 받자 구경이고 뭐고 싫다. 나도 이런 말도 안 되는 통제를 왜하나 의아한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다행히 둘째는 유아라고 생각하는지 짧은 반바지를 허용해서 그나마 한명이라도 살려준 기분이었다. 큰아이는 이렇게 근엄한 왕궁을 복장과 싸우며 땡볕과 짜증으로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하루를 보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남대문 시장 같은 짝뚝짝 시장도 가보고 반두억 수상시장에도 가본다. 번잡스러운 시장은 수많은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상인들로 시끄럽다. 수상시장 역시 가는 길 곳곳이 상가라 번잡스러운 시장과 별 차이가 없다. 조용하고 소박한 나라 라오스를 지나와서 그런지 시장의 수선스러움이 정신없다. 그냥 그렇게 빠르고 바쁘게 돌아가는 영사기처럼 스치듯 시장의 풍경이 머릿속에서 지나간다.

여행자의 대표거리 카오산 로드! 카오산 로드는 그동안 수많은 외세의 문화와 결합되어 다양성이 자리한 곳이다. 곳곳에 여행자의 피로를 풀어주는 마사지 샵이 있고, 레게머리를 따주는 사람들, 여기저기 보이는 트렌스젠더들, 팔뚝과 몸에 갖가지 모양의 타투를 새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밤새 시끄러운 음악이 흐르는 술집에서는 커다란 생맥주가 흐르고 물 담배 연기로 자욱하다. 길거리에는 마치 박물관의 박제 같은 전갈을 팔고 있고, 코코넛껍질에 담아주는 아이스크림과 각종 야채를 섞어서 볶아주는 볶음 국수인 파타이는 하루에 몇 개를 먹어도 맛있기만 하다. 우리도 태국 마사지에 몸을 맡기고 시원한 생맥주를 들이키며 그렇게 카오산 로드에 취해본다.

▲ 태국 마사지 받기. ⓒ가온가람이 가족
▲ 팟타이를 먹으며 지은 환한 미소. ⓒ가온가람이 가족

나 홀로 세계 여행하던 당찬 대학생

루앙푸르방에서 우연히 만나 비엔티엔을 거쳐 태국 방콕까지 우리와 함께 동행 했던 21살의 어린 여대생! 알고 보니 우리와 같은 날짜, 같은 시간에 같은 비행기로 한국을 출발하여 1년간 세계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아이였다. 한국 출발 후 우리는 베트남을 지나왔고, 그 아이는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를 지나왔다. 그런데 루앙푸르방의 야시장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만난 것이다. 같은 시기 1년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시작을 시작하며, 우리는 우리대로 피로누적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의 벽을 깨려고 노력 있었고, 그 아이는 그 아이대로 더운 날씨와 싸우며 홀로 여행의 외로움이라는 벽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이와 이유는 다르지만 1년간 세계여행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서로에게 공명을 일으키며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하나의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 홀로 세계여행! 젊은 용기가 대단하고 한편으론 그 젊음이 부럽다.

대학 중간에 휴학하고 일명 부모대출을 받아 떠나온 여행이라며 여행 떠난 지 한달 가량 하루에 5천원 정도의 숙소에서 머물며 예산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자랑하던 아이! '여러 명이 함께 쓰는 도미토리에서 자는 건 무섭지 않냐, 괜찮냐'라고 물었더니,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젊은 애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잘 때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행동하는 것이 처음엔 좀 이상했지만 이젠 그러려니 한다던 씩씩한 아이였다. 특히 꽝시와 블루라곤에선 5m 높이의 나무에서도 마치 선수처럼 멋지게 다이빙하던 그 당당함과 세상 어디라도 헤쳐 나갈 것 같은 환한 웃음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는 겁이 많은 큰아이에게 '언니 좀 봐~ 대단하지 않니?' '가온이도 나중에 대학생 되어서 저렇게 멋지게 여행해'라는 얘기를 종종 하곤 했다. 그 아이와 우리 큰아이는 함께 있는 동안 언니․동생하며 다녔다. 서로 팔짱을 끼고 다니고 밥을 먹으러 가서도 둘이서 메뉴를 골라서 함께 나눠먹으며 자매 같은 우정을 과시해서 둘째 애의 토라짐을 유발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라오스를 거쳐 태국까지 건너오는 동안 10여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서로에게 많은 힘이 되고 의지가 되었던 시간이다. 처음에는 마치 딸처럼 여겨져 보살피는 마음이었지만 아이들에겐 씩씩하고 마음 좋은 큰언니이자 초보여행자인 우리에게 가이드처럼 여긴 뭐가 유명한지 어디에 맛집이 있는지 교통수단은 뭘 이용해야 하는지 등을 소상히 안내해주기도 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자신의 가면을 벗고 맨몸으로 만나는 것이라서 사람마다 지닌 갖가지 모양이 바로 전달된다. 때로는 가시처럼 아프고 때로는 나무껍질처럼 거칠고 때로는 고운 솜털처럼 감미롭고 때로는 환하게 내리쬐는 햇살처럼 따뜻하다. 맨몸이라서 가시와 나무껍질은 더 아프고 반대로 솜털과 햇살은 더 감미롭고 따사롭다. 우리는 1년의 긴 여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 중에서 마음 속 공명을 일으키며 기억에 자리 잡은 몇 안되는 따사롭고 귀여운 아이였다.

이 글은 헤어짐이 아쉬웠던 남편의 짧은 소회다.

이제 서로 헤어질 시간이다.

그동안 서로 쌓인 정 때문인지 못내 아쉽기만 하다. 나는 앞으로 남은 짧지 않은 여정을 어린 여대생 혼자 어떻게 헤치고 지나갈지 마치 다시는 못 볼 먼 길 떠나는 큰딸을 배웅하는 착잡한 마음이다. 여행기간 어디선가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며 서로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눈가에 나도 모르게 작은 이슬이 맺혔다.
▲ 카오산 로드에서.ⓒ가온가람이 가족
▲ 왕궁. ⓒ가온가람이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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