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난리 블루스가 끝날 줄을 모른다. 4.30 재보선 참패에 대한 '문재인 사퇴론'이 일주일여 만에 주승용-정청래 두 최고위원 간 '공갈 사퇴' 논란으로 번졌다. 문재인 대표가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한 사람은 핸드폰을 꺼놨으며 다른 한 사람은 사과 요구를 거부했다.
보수언론은 즉각 달려들었다. 의원 간 막말 영상을 1분 1초가 아깝다는 듯 재생하며, '막장·난장판·아수라장·계파 갈등 폭발' 등 자극적인 언어로 보도하고 있다. 또 박지원 의원과 권노갑 고문의 단독 회동을 비중 있게 다루며 '문재인 사퇴론'을 확산하고 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김윤철 경희대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종훈 스포츠 평론가는 지난 1일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 시즌5 첫 방송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대한 책임은 문재인 대표에게 있다며 전력과 인물을 보강해 지는 선거가 아닌 '이기는 선거를 하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이들의 주요 발언이다.(☞ 팟캐스트 바로 듣기)
문재인이 "말아 먹은" 선거, 사퇴가 최선?
김윤철 : 4.30재보선이 끝나자마자 '문재인 퇴진론'이 나왔다. 하지만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문 대표 주변의 전략과 인물을 새롭게 포진시켜야 한다. (새정치연합의 여러 문제가) 대표가 나간다고 해결되나?
이철희 : 이번 선거는 '문재인 개인플레이로 완벽하게 말아먹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당 대표 사퇴' 또는 '문재인 대통령 불출마 카드'로 돌파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오히려 문 대표에게 '앞으로의 구상을 내놔라. 그것을 가지고 논의하자'라고 해야 한다. 벌써 2016년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으로 변질된 느낌이다. 이 역시 문 대표 책임이 크다.
김윤철 : 문재인 의원이 당 대표가 된 지 얼마 안 돼 치러진 선거였다. 본회의에서 연설한 대로, '소득주도성장론'을 앞세운 '4대 중원 장악' 전략을 계속 밀고 나갔어야 한다. 특히 '성완종 리스트' 공세에 휘말려 승패가 불투명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선거의 의미를 축소했어야 했다. '선거'는 지나가는 이벤트다.
이종훈 : 정치공학적인 해석이다.(웃음) 하지만 청와대 입장에서는 중요한 선거였다. '성완종 리스트' 여파 등 수도권 여론 동향을 알 수 있는 선거였다,
이철희 : 새정치연합은 집권여당에 "'성완종 리스트'로 물 타기(남의 탓인 양 떠넘기기)하지 말라"는 말만 반복할 뿐, 정말 물을 못 타게 하지는 못하더라. 이런 건 실력의 문제다. 비교하자면, 한쪽은 정말 독하고 다른 한쪽은 정말 맹하다. 물러 터졌다. 특히 2007년에 '성완종 특별사면' 건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문재인 간 NLL 국면의 재연 같지 않나?
김윤철 : 그렇다. NLL과 성완종 리스트 등 그 핵심엔 '문재인(새정치연합)의 노무현 지키기'가 있다.
이철희 : 처음부터 역공의 소재로 삼은 것이다. 새정치연합이 MB정부 인수위에서 '누가 청탁했다'라며 새누리당을 공격했는데, 사실은 되치기당한 것이다. 전략적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스탠스(자세)를 잡고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우왕좌왕했다.
이종훈 : 새누리당은 포인트 하나를 선정해 공격에 들어간다. 대부분 참여정부 열린우리당 시절의 일이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지난 대선과 이번 선거를 통해 (새누리당의 공격에) 준비가 전혀 안 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여당은 어떻게 보면 선거를 참 쉽게 하는 셈이다.
이철희 : '기승전결'이 아니라, '기승전노(盧)-기승전문(文)'이다(어떤 논란이든 그에 대한 책임이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표에게 있다는 식으로 정리된다는 뜻). 새누리당이 그런 걸 잘한다.
지는 선거는 인제 그만! 이기는 선거 하자!
이종훈 : 선거는 지지층이 몰입할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새정치연합은 몰입이 안 된다. 반면, 새누리당은 지지층에게 '몰입거리'를 계속 준다. 야구도 지지 않는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선수와 관객이) 몰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철희 : 유권자에게 투표 동기를 줘야 한다는 뜻인 것 같은데, 신문을 보니까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한화는 번트가 많다고 한다. 기사를 보면서 새정치연합은 '희생 번트(보내기 번트)'를 대는 선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의 승리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마음으로 번트를 대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점수도 안 되는 파울만 칠뿐이다.(웃음)
이종훈 : 김성근 감독은 팀 내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스타플레이어를 의도적으로 내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수준이 비슷한 선수끼리 모였을 때 경기 자체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지기 때문인데, 새정치연합은 자신을 스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희생 번트를 대지 않는 것이다.
김윤철 : 새정치연합에서도 '친노'는 실제로 스타(star)가 많다. 80년대 학생운동을 하며 별을 많이 달았다(수감 경력이 있다는 뜻).
이철희 : 어떤 의미의 스타든 그렇다면, 최소 안타를 치거나 홈런을 쳐야지. 매일 심판과 싸우고, 투수에게 몰려가 몸싸움하면 안 되지. 몰입에 방해만 된다.(웃음)
이종훈 : 김성근 감독의 '지지 않는 야구'는 '끝까지 패(貝) 하나를 감추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 상황까지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카드(전략)를 쥐고 있다는 의미다. 김성근 감독은 8회 말이나 9회 초 공격에서 야수 중 한 명을 포수로 내세워 연장전을 하며 경기를 승리로 이끌기도 한다.
지난달 26일 대전에서 열린 한화-SK 경기에서는 4대 4로 맞선 8회 말 2사 1루 상황에서 런앤드히트(run and hit)로 결승점을 얻었다. 이날 경기로 한화는 3연전을 연속 승리(swip) 끝에 12승 10패로 SK와 공동 4위로 올라섰다. 2007∼2011년 SK 지휘봉을 잡았던 김성근 감독은 친정팀과의 시즌 첫 경기를 보기 좋게 이겼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선거 끝까지 승리를 위한 카드(전략)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 지금 낸 카드가 항상 마지막 카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새누리당이 그 카드를 받으면, 새정치연합에서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다음으로 숨겨놓은 카드(히든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이철희 : 선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뻥카(거짓 카드, 거짓 전략)'라도 있어야 하는데…. 지난 1월 축구 국가대표팀과 호주와의 '2015 AFC 호주 아시안컵' 결승전이 생각난다.
김윤철 : 슈틸리케 감독이 0-1로 뒤진 가운데, 중앙 수비수인 곽태휘 선수(알 힐랄)를 후반 추가시간에 최전방 공격수로 투입했다. 당시 중계석에서 '이 시점에는 공격수를 늘려야죠. 그런데 선수 교체를 수비수로 합니다'라고 했다. 예를 들면, 그 캐스터는 새정치연합처럼 히든카드를 안 가지고 있거나, 파악하지 못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곽태휘 선수가 필드에 들어간 지 1분도 안 돼 올라온 크로스를 기성용 선수(스완지시티)에게 헤딩으로 전달했고, 이를 넘겨받은 손흥민 선수(레버쿠젠)는 왼쪽 골망을 흔들며 동점 골을 만들었다. 그때 캐스터가 소리쳤다. '역시 '수(手)'군요.'(웃음)
이철희 : 지는 게 익숙해지면, 이기는 법을 잊어버린다. 승부도 몇 번 이기면 경험이 쌓여서 '어떻게 하면 이긴다'라는 나름의 방법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자꾸 지면 어떤 수를 쓰기도 겁이 난다. 그래서 늘 하나 마나 한 수를 쓰게 된다.
이종훈 : 스포츠도 지는 팀 벤치는 '또 졌나 보다. 오늘도 망하나 보다'라며 선수들 인상이 잔뜩 구겨져 있다. 그런데 한두 번씩 이기는 경험을 하다 보면, 벤치 선수들도 입이 바짝바짝 마르며 긴장감이 극도화 된다. 몰입되는 것이다. '지면 안 되는데, 여기서 한 점만 내자. 따라가자!'라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새정치연합 벤치는 '또 졌네. 우린 안 되는 건가?'라는 분위기일 것 같다.
김윤철 : 문재인 대표가 '슈틸리케 전략'을 쓰면 어떨까? 곽태휘 선수처럼 아주 의외의 인물을 등용하는 거지.
이철희 : 문재인 대표는 그런 스타일 아니다. '축구는 4-4-2가 포맷이기 때문에 이걸 바꾸면 안 된다'고 생각할 사람이다.
김윤철 : 듣기로는, 아직도 주머니에 화이트(잉크나 테이프 형태의 지우개)를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연설문을 받으면, 조사 등 틀린 부분을 화이트로 지우고 고쳐준다고 하더라. 원칙을 고수할 게 아니라, 변칙을 좀 해야 하는데…. 문재인 대표에게 만화가 허영만의 <변칙복서>를 추천한다.
이철희 : <이쑤시개> 이름으로 문재인 대표에게 보내 주자.
이종훈 : 그런데 <변칙복서>에 변칙이 많이 나오나?
김윤철 : 아, 뭘 자꾸 따져! 그러니까 진도가 안 나가고 매번 지는 거야!
(일동 웃음)
보다 자세한 내용은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http://www.podbbang.com/ch/5001)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