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일본의 역사학자를 지지하는 공개서한(OPEN LETTER IN SUPPORT OF HISTORIANS IN JAPAN)'의 전문 번역(원문보기)이다. 지난 4월 29일 일본 총리로는 사상 처음으로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 나선 아베 신조 총리가 끝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인신매매"로 치부하며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주도한 성노예'라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자. '학자의 양심'을 걸고 187명의 서양 학자들이 일종의 '양심 선언'을 했다.
특히 '친일파 학자'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대표적인 동아시아 역사 전문가들까지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계에서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평까지 나오는 '집단 성명'이기도 하다. 이 서한은 아베 총리에게도 전달이 된 것으로 알려져, 이 서한이 앞으로 아베 총리가 8월 15일 발표할 '종전 70주년 기념 담화'에서 더 이상의 역사 왜곡을 못하도록 영향을 줄지 주목받고 있다.
이 서한에 참여한 학자들은 대부분 일본학을 전공해 위안부 문제나 일본 현대사에 정통한 전문가들이다. 특히 <히로히토 평전: 근대 일본의 형성>을 쓴 허버트 빅스 미국 빙엄턴대 교수, <패배를 껴안고>를 쓴 존 다우어 MIT 명예교수, 시어도어 쿡 윌리엄패터슨 대 교수 등 일본사에 관한 연구로 퓰리처상을 받은 학자가 세 명이나 된다. 또 <1등 국가 일본>이란 베스트셀러 작가로 '친일 성향의 미국 최고의 일본 전문가'로 꼽히는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교수도 이 서한에 참여했다. 그밖에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피터 두스 스탠포드대 교수 등이 서명에 참여했다.
이 서한에 서명한 일본학 학자들은 아시아태평양 전쟁에 대한 정확하고 공정한 역사를 추구하는 많은 용기있는 일본의 학자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서명한 학자들 중 많은 분들에게 일본은 제2의 고향이자 연구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일본과 동아시아에 대한 역사가 어떻게 연구되고 기억되는지에 대해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이 서한을 작성했습니다.
올해는 중요한 기념이 되는 해로, 일본과 이웃나라들 사이에 70년에 걸친 평화를 축하하기 위해서도 이 서한을 쓰기로 했습니다. 전후 일본이 민주주의, 군의 문민통제, 신중한 공권력 행사, 정치적 관용의 역사를 쌓아온 것은 과학에 대한 기여와 다른 나라들에게 대한 관대한 원조와 함께 축하해 마땅할 일들입니다.
하지만 역사 해석의 문제가 이런 업적들을 축하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가장 논란을 일으키는 역사적 문제는 이른바 '위안부' 제도입니다. 이 문제는 일본은 물론, 한국과 중국의 민족주의적 공방 속에 왜곡돼, 많은 학자와 언론인, 정치인들이 인간의 조건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역사 탐구의 근본적 목적을 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위안부' 희생자들의 조국에서 민족주의자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고통을 이용해 국제적인 결의안 채택을 어렵게 만들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존엄성마저 모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일에 대해 부정하거나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는 태도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20세기 전시의 성폭력과 군대 내의 매춘 사례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위안부' 제도는 군부가 대규모로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일본의 식민지나 점령지에서 젊고 가난하고 취약한 상황에 놓인 여성들을 착취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른 사례입니다.
'역사의 재해석'이 아무렇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자료들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군대에 여성들을 조달한 업자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아예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여성들을 조달하고 매춘시설을 감시하는 데 군부가 개입했다는 것을 보여준 수많은 문서들을 발굴해냈습니다.
희생자들의 증언도 중요한 증거입니다. 그들의 진술이 다양하고 기억의 한계로 일관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증언들을 모두 모아보면 부인하기 힘든 사실을 전하고 있으며 공식문서와 군인 등의 진술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위안부'의 정확한 숫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릅니다. 앞으로도 확실한 숫자가 알려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희생자의 숫자에 대해 신뢰할 만한 추정치를 확립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수만 명이든 수천 명이든, 제국주의 일본과 전쟁 지역에 걸쳐 착취가 자행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일제 군부가 얼마나 직접적으로 개입했는지, 그리고 여성들이 '위안부'가 되도록 강제됐는지에 대해 이견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억류되고 끔찍한 잔혹행위에 시달렸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일부의 특별한 조건이나 문서를 근거로 희생자의 증언을 무력화시키려는 법리적인 주장들은 그들이 저지른 잔혹한 행위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여성들을 착취한 비인간적인 제도라는 더 큰 맥락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일본에 있는 동료 학자들처럼 우리는 과거의 구체적인 역사에 대한 신중한 분류와 총체적인 평가만이 공정한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작업은 민족주의나 성차별에 의한 편견을 극복하고, 정부의 조작과 검열, 압력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역사 연구의 자유를 옹호하고, 모든 정부가 뜻을 같이해줄 것을 촉구합니다.
많은 국가들은 여전히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을 인정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2차대전 중 억류된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보상하기까지 40년이 걸렸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평등을 보장한다는 약속은 노예제 폐지 후에 100년이 지나서야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인종차별은 미국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국, 유럽 각국, 일본을 포함해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제국주의 열강들 중 어떤 나라도 인종주의, 식민주의, 전쟁을 점철된 역사, 또는 그들이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했던 고통에 대해 충분히 속죄했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일본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포함해 모든 개인들의 생존권과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입니다. 일본 정부는 군대 내의 '위안소' 같은 시설을 국내든 해외든 두고 여성들을 착취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시에도 일부 관료들은 도덕적인 이유로 항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전시체제의 정권은 국가를 위해 개인의 절대적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 국민은 물론 많은 아시아인들에게 큰 고통을 초래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런 방식의 고통을 또다시 겪어서는 안됩니다.
일본 정부에게 올해는 일제 식민통치와 말과 행동으로 저지른 전시의 폭력행위의 역사를 진지하게 다룸으로써 지도력을 보여줄 기회의 해입니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미국 의회 연설에서 보편적인 인권, 안보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일본이 다른 나라에 가한 고통을 직시하는 자세를 보여줬습니다. 우리는 그 태도에 찬사를 보내며, 아베 총리가 과감하게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촉구합니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과정은 민주적 사회를 강화하고, 국가들의 협력을 촉진합니다. 여성에게 평등한 권리와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은 '위안부' 문제를 풀어가는 핵심요소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풀어내는 것은 일본, 동아시아 등 전세계에서 남녀평등을 향한 역사적 진전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맡고 있는 강의에서 일본, 한국, 중국 등지에서 온 학생들은 상호 존중과 도덕적 원칙에 기초해 이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토론하고 있습니다. 이들 세대는 우리가 물려준 과거의 기록과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그들이 성폭력과 인신매매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것을 돕고, 아시아의 평화와 우의를 촉진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잘못에 대해 가능한 한 총체적이고 왜곡되지 않은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전문번역: 이승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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