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 고갈 시점에 빚을 후대로 넘기는 것은 '세대 간 도적질'"이라고 말한 데 대한 반론이 나왔다. 국민연금은 '세대 간 도적질'이 아닌 '세대 간 연대'에 기초해 설계한 사회보험이라는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 실무기구에 야당 추천위원으로 참여했던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8일 '복지부의 미래 세대 부담론에 대한 반론 보도자료'를 내어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논리를 항목별로 나눠 반박했다.
앞서 복지부는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높이면서 현세대 보험료를 1%포인트만 인상하면, 미래 세대가 과중한 부담을 떠안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복지부의 가정은 오는 2100년 이후에도 17년 치 규모의 적립금을 쌓고 2060년까지 현세대가 내는 보험료를 사실상 동결하는 것을 전제로 하면, 2061년부터 미래 세대가 내야 할 보험료가 두 배로 오른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지난 7일 "기금 고갈 시점에 맞춰 그해에 걷어서 바로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부과 방식)으로 차근차근 전환하자"는 방안에 대해 "(부과 방식은) 후세대에 빚을 넘기는 일로 연금학자 중에는 부과 방식을 도적질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고 비유했다.
김연명 교수는 "2060년 12월까지 보험료를 현행 9%로 동결(혹은 1%포인트 인상)하다가 2061년 1월부터 갑자기 보험료를 20%로 인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가정이고, 그 어떤 연금학자도 이런 식으로 부과 방식을 전환하자고 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문형표 장관의 '도적질' 발언에 대해 김 교수는 "이런(연금 기금을 많이 쌓아놔야 한다는) 시각 때문에 보험료 18%(두 배) 인상이라는 비상식적인 수치가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금 기금(적립금) 규모를 줄이면 보험료를 많이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국민연금에서 후세대의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것은 '세대 간 도적질'이 아니라 '세대 간 연대'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 국민연금 제도는 미래 세대의 부담을 완화하는 장치를 이미 갖고 있다"면서 "오히려 국민연금 기금이 커질수록 후세대의 부담이 줄어들기는커녕 커질 수 있는 역설이 있다"고 반박했다.
1. '세대 간 도적질'인가, '세대 간 연대'인가?
미래 세대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오르리라는 복지부 주장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어느 정도 공평한 조처라고 김 교수는 반박했다. 실제로 국민연금 역사가 긴 서구 국가들도 농업 시대에서 산업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후세대의 보험료가 높아지는 경험을 했다.
김 교수는 "국민연금에서 나타나는 부모 세대의 '상대적 이익'과 자식 세대의 '상대적 불이익'은 조부모 세대를 사적으로 부양해야 하고, 자신의 노후도 준비해야 하는 부모 세대(30~50대)의 이중 부담(double payment) 문제를 고려하면 공평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부모 세대인 30~50대(B 세대)는 국민연금을 받지 못했던 농업 시대 노인(A 세대)들을 부양하면서 동시에 본인의 노후를 위해 강제 연금인 국민연금에 보험료를 내는 '이중 부담'을 겪고 있다.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에 전환하는 시기에 '낀 세대'가 이중 부담 문제에 노출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반면에 현재 30~50대 세대(B 세대)들의 자녀 세대(C 세대)는 공적 연금이 안착하면서 상대적으로 노후를 맞은 B 세대를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이 덜하다. 따라서 김 교수는 "현재 30~50대 세대의 이중부담 문제를 자녀 세대가 일부 나눠서 지는 것이 세대 간 공평성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즉, 앞으로 보험료를 차례로 올려야 한다.
김 교수는 "유럽 대부분의 연금 제도는 바로 이러한 노인 부양의 '세대 간 연대' 원리를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있다"고 부연했다.
2. 국민연금에 이미 미래 세대 부담 완화하는 장치 있다
게다가 현행 국민연금 제도 자체가 미래 세대의 부담을 대폭 완화하고 있다. 국민연금 운영 방식은 가입자가 미래에 받을 연금액을 기금으로 쌓아놓는 '적립 방식'과 그해 젊은 세대가 낸 보험료를 그해 노인에게 연금으로 지급하는 '부과 방식'으로 나뉜다.
'부분 적립 방식'을 택한 우리나라는 1988년부터 올해 2월까지 총 595조 원의 국민연금 기금(적립금)을 쌓았다. 이 중 국민연금공단이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해 얻은 운용 수익금이 221조 원에 달한다. 이 수익금 221조 원은 현재 부모 세대인 30~50대(B 세대)가 낸 보험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만약 국민연금을 도입할 당시 기금을 적립하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수익이다.
김 교수는 "221조 원만큼의 운용 수익만큼 부모 세대(B 세대)가 미래 세대(C 세대)의 부담을 덜어준 것"이라며 "국민연금 제도는 이미 후세대의 부담을 낮추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은 1998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70%에서 현행 40%로 내려앉았다. 김 교수는 "(2007년에 단행한) 소득 대체율 인하는 B 세대의 노후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수준이기에 이중 부담 문제에 직면한 부모 세대에게 과도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3. '공룡 국민연금 기금' 때문에 오히려 미래 세대 빚 늘어날 수도
복지부는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국민연금 기금을 2100년 이후에도 17년 치 이상 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꼽히는 국민연금 기금을 운용하는 일본이 5년 치 적립금만 쌓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 교수는 "복지부의 '보험료 18% 인상'과 'GDP 대비 140%의 국민연금 기금 유지'라는 황당한 수치는 이런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가 적립금을 사실상 "거의 무한대"로 쌓으려다 보니, 미래 세대의 보험료를 과도하게 올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 "국민연금 더 주면 보험료 두배?…거짓말!")
김 교수는 "복지부는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국민연금 기금을 많이 쌓자고 주장하지만, 역설적으로 국민연금 기금을 많이 쌓을수록 미래 세대 빚이 늘어나는 딜레마가 생길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그 이유는 국민연금이 국채에 투자한 돈이 많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으로 국민연금 적립금 470조 원의 90%는 금융 상품에 투자돼 있고, 국내 채권에 투자된 돈은 258조 원에 달한다. 국내 채권에 투자한 돈 가운데 70% 이상이 주로 국가나 공사 같은 공공 부문이 세금으로 갚아야 할 국채, 특수채, 통화 안정 채권으로 구성돼 있다.
이 채권은 나중에 미래 세대가 세금으로 상환해야 한다. 김 교수는 "국민연금 기금 규모가 커질수록 채권 비중도 커지고, 채권을 상환하기 위해 세금을 내야 하는 미래 세대의 부담도 커질 수 있다"며 "기금 규모를 키운다고 해서 단순히 미래 세대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국민연금을 '세대 간 착취'라는 관점에서 보면 해결책은 현세대의 보험료를 늘리고 연금을 깎는 방법밖에는 없다"며 "2007년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을 60%에서 40%로 낮추는 참혹한 개혁은 철저하게 이러한 '세대 간 도적질'이라는 관점에서 이뤄졌으며, 그 결과는 최저 생계비도 안 되는 '용돈 연금'과 노인 대량 빈곤 사회"라고 꼬집었다.
그는 "보험료 인상은 현세대와 미래 세대가 노인 부양의 사회적 책임을 세대 간에 공평하게 분담하는 사회적 연대의 관점에서 인식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어느 정도의 부담이 세대 간 공평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