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여야가 4월 임시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편안을 처리하는 데 실패했다. 여야의 의견 대립은 공무원연금 부분보다도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부분에 있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6일 여야 합의처리가 무산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당 대표, 원내대표, 특위 위원장과 양당 간사 등 7명이 모든 것을 다 감안해 합의한 합의문 이외에는 또다른 추가 요구를 절대 받을 수 없다. 합의문이 변형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 당 대표가 서명해서 합의한 것이 계속 뒤집어지고 하는 선례가 만들어지면 안 되겠다는 면에서 더이상 양보하지 않기로 했다."
관련 뉴스를 유심히 보아 온 독자라면 김 대표의 이 말에 혼란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5월 2일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한다고 합의한 거 아냐?' 같은 질문을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이미 합의한 것 맞다. 6일 여야가 하루종일 의견 대립을 빚었던 부분은 '소득대체율을 50%로 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50%로 한다는 합의 내용을 국회 규칙에 넣을 것이냐, 말 것이냐'였다.
단 합의 주체가 '여야'는 아니었다는 게 새누리당의 시각이다. 국회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해 여야가 추천한 전문가와 이해 당사자인 정부 측 및 공무원단체 측 대표가 참여하는 국민대타협기구 및 후속 실무기구를 구성했고, 이 기구들은 지난해 12월부터 논의를 이어 왔다.
이 실무기구가 맺은 결실이 지난 2일의 합의였다. 실무기구의 '공적연금 강화 합의문' 내용은 이렇다.
"국가 책임 하에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노후 대비를 할 수 있도록,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 제도의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를 국회에 설치하고 국민의 노후빈곤 해소를 위해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50%로 한다."
이 합의문에는 실무기구 공동위원장인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여당 추천 전문가), 김연명 중앙대 교수(야당 추천 전문가), 황서종 인사혁신처 차장, 김성렬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실장, 류영록 공무원노조총연맹 위원장, 안양옥 교총 회장, 김성광 전공노 사무처장 등 7명이 연명으로 서명했다.
'어, 이상하다? 5월 2일에 김무성-문재인 대표가 합의문에 같이 사인하고 사진 찍은 거 분명히 봤는데?'라는 의문이 또 나올 수 있겠다. 그것도 맞다. 그건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양당 대표 간의 별도 합의였다. 그 합의 내용은 이랬다.
"여야는 국민대타협기구 및 실무기구의 '공적연금 강화 합의문'을 존중하여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를 구성해 8월 말까지 운영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사항은 국회 규칙으로 정해 5월 6일 본회의에서 처리한다."
이 여야 대표 합의문 때문에 '소득대체율을 50%로 하자고 여야가 합의한 적은 없고, 그건 실무기구의 합의일 뿐'이라는 새누리당 쪽 주장에 문제가 생긴다.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는 "공적연금 강화 합의문을 존중한다"는 내용에 합의·서명했고, 그 '존중한다'고 한 내용이 바로 "소득대체율을 50%로 한다"는 것이었다.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위 위원장인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이 7일 기자간담회에서 "(합의문의) '존중한다'는 말은 '50%를 목표로 하되 여러 국민적 여론 수렴이나 이런저런 것들을 고려해 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아무래도 군색해 보인다.
즉 김 대표와 문 대표의 합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여야는 소득대체율을 50%로 하기로 한 실무기구 합의를 존중한다는 데에 합의했다'가 된다. 특별히 정치적인 안목이 필요한 추론이 아니다. 필요한 건 고등학생 수준의 국어 능력뿐이다.
(주호영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이렇게 된다. "여야는 소득대체율을 50%로 하기로 한 실무기구 합의를 '목표로 하되 여러 국민적 여론 수렴이나 이런저런 것들을 고려해 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데에 합의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런저런 것들'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독자들께서 알아서 판단하셔야 할 것 같다.)
김 대표가 6일 본회의 무산 후 "합의문 이외의 추가 요구를 절대 받을 수 없다", "합의한 것이 뒤집어지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기자들의 고개가 갸웃했던 이유도 여기 있다. 국회 규칙에 '소득대체율 50%'를 넣자는 야당의 주장이 "사회적 기구를 구성·운영하는 데 필요한 사항은 국회 규칙으로 정한다"는 여야 대표 간 합의문 범위를 과연 벗어나는 것일까?
물론 '소득대체율을 50%로 한다는 것은 사회적 기구의 목표이긴 하지만 그 구성이나 운영에 필요한 사항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해도 국회 규칙 내용을 어떠어떠하게 하자는 정도의 주장이 "합의한 것을 뒤집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개운치 않다.
게다가 야당은 당시 국회 규칙에 '소득대체율 50%'를 넣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새누리당의 반대에 직면한 이후 수정안을 제안한 상태였다. 수정안 내용은 '국회 규칙 본문에는 넣지 않되, 부칙에 실무기구의 '공적연금 강화 합의문' 내용을 통째로 별첨하자'는 것이었다. 실무기구가 합의한 내용을 '첨부 문서'로 붙이자는 정도의 제안을 "야당의 추가 요구"라고 하기도 어색하다.
'이럴 거면 존중한다는 합의는 뭐하러 했나?'라는 지적이 응당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존중은 하는데 앞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겠다'는 애매한 태도나, 주호영 의원이 한 것과 같은 '존중'에 대한 새로운 의미 해석은 '무대(김무성 대장)'라는 김 대표의 별명에 부끄러울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존중한다'고 합의한 당사자인 김 대표가, 당내 다수가 4월 국회 통과 방안에 찬성하는 상황에서도 끝끝내 의총 표결 등의 방안을 밀어붙이지 못한 이유는 뭘까. 김 대표는 연금 개편안 처리 무산 이유를 '야당의 무리한 추가 요구'라고 말했지만 당 내에서는 다른 말도 나온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전날 합의 무산 이유로 "당 대표께서 막판에 당의 화합이나 청와대와의 관계를 고민하신 것 같다"고 분석했고,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도 "여권(與圈)은 의총장의 의원들이 전부가 아니고, 정부도 있고 청와대도 있다. 그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말 한 마디에 여야가 함께 국민께 드렸던 약속이 헌신짝처럼 내팽겨쳐졌다"(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6일 당 대책회의에서)는 말처럼, 이번 합의 무산의 '배후'를 청와대로 지목하는 것이 야당만의 시각은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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