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단체들의 남북 교류를 폭넓게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진심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물론 남북 관계 전망은 밝지 않고, 헤쳐나가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민간 교류가 시작이다. 정부 간 관계와 민간 교류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번 기회에 민간 교류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확실하게 정립했으면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교류 허용 의미
중앙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의 교류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은 사실 지방 자치의 원칙과 어긋난다. 지방자치단체는 중앙 정부의 정책 방향과 완전히 자유롭지 않지만, 일정 부분에서 분권의 권한이 허용되어 있다. 그런 차원에서 남북 교류 분야에서 모든 권한을 중앙 정부가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방자치단체 또한 의회의 견제 기능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남북 교류에 나설 경우, 당연히 관련 법률에 따라 관련 예산의 심의 과정을 거친다. 동시에 지방의회에서 적실성 검토 과정을 충분히 밟는다. 남북 교류를 단체장이 의회와 관계없이 추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내부 견제 과정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도시 교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남북 관계에서도 도시 교류의 중요성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우선적으로 접경 지역들은 대부분 현안들을 가지고 있다. 분단된 강원도는 오랫동안 도 차원에서 혹은 기초단체 차원에서 도시 교류를 추진했다. 경기도나 인천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경험이 축적되어 있고, 자체적으로 남북 교류에 관한 조례도 만들어져 있으며 기금도 적립돼 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대부분 지역적 특성을 살려서 남북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역사 문화적 특성이나 지리적 인접성, 혹은 산업적 특성이 기본이다. 과열의 위험성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경험이 있고 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럴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지방자치단체의 사업들은 대부분 지역의 NGO나 관련 산업과 연관되어 있어서 남북 교류의 범위를 확장하는 효과도 있다.
또 앞으로 지방자치단체의 교류 분야를 사회문화 분야에 한정할 필요는 없다. 산업 협력이 훨씬 우리 측의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산업 중에서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고려하고 있는 분야는 농업과 축산업이다.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우 남북 농업 협력의 경험이 있다. 기후 변화로 온도에 민감한 작물의 생산 기지를 북한 지역으로 넓혀야 할 필요가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축산업도 마찬가지다. 검역 절차를 비롯한 복잡한 문제들이 적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노동 집약적 분야라는 점에서 남북 협력의 이익이 크다. 어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5.24 조치를 근거로 교류의 분야를 한정한다면, 지방자치단체의 교류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민간 교류의 중요성
5.24 조치에도 불구하고 민간 교류는 허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포괄적인 제재를 하면서도 관광이나 인적 접촉을 허용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간 교류 분야는 일반적인 제재의 대상이 아니다. 거창한 의미를 내세울 필요도 없어 민간 교류는 당장 거둘 수 있는 효과가 적지 않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북한에 가봐야 북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 북한은 민간과 정부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민간 교류가 동시에 북한 정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민간 교류 과정에서 얻는 정보들은 정부 차원의 정책 수립에 도움을 줄 것이다.
민간 교류에 대해서는 민관 분리 원칙이 필요하다. 정부 간 관계가 악화돼도 민간 교류를 계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히려 민간 교류는 남북관계가 필요 이상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고, 동시에 남북 정부 간 관계가 재개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모든 분야에서 정경 분리가 어렵다면, 우선적으로 정부와 민간의 관계를 분리하는 민관 분리의 지혜가 필요하다.
남북 관계에서 악재가 발생했을 때, 민간 교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방침이 필요하다. 남북 관계에서 악재는 널려 있다. 핵 문제와 장거리 미사일 발사 가능성도 있고, 한국 국적의 억류자가 증가하고 있다.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 수준도 여전히 높기 때문에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도 상존한다. 어떤 정책이든 평상시가 아니라, 위기 때 진정성이 드러난다.
불신이 깊은 남북 관계는 언덕이 있으면 계곡이 있듯이, 당분간은 진전과 후퇴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상황에 따라 우왕좌왕할 것이 아니라, 원칙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최소한 민관 분리의 원칙을 지킬 의지가 있다면, 남북 관계는 캄캄한 어둠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민간 교류라는 작은 불빛을 꺼지지 않게 유지한다면, 남북 정부 차원에서도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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