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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통일에 대한 근본적 이해 부족"

[정세현의 정세토크] "중우정치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북한 외무상의 15년만의 유엔총회 참석으로 ‘혹시나’ 남북, 북미 간 대화의 물꼬가 트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역시나’로 끝나고 말았다. 23일 미국이 주최한 북한 인권에 관한 고위급회의에 북한의 참여가 거부되고,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강도 높게 거론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위험천만한 도발 행위’ ‘남북대화는 꿈도 꾸지 말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원광대 총장)은 이번 유엔총회에서 미국이 북한 인권문제를 대북 압박의 새로운 아이템으로 만들려는 것 같다며 남북, 북미 관계의 앞날을 우려했다. 정 장관은 박 대통령의 유엔 연설에 대해 우리 스스로 남북 관계를 풀어나가려는 구체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이는 통일 문제의 구조와 논리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부족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DMZ 생태평화공원 건설 등 현 상황에서 실현 불가능한 제안만을 되풀이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통일문제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남북관계 개선이 북핵은 물론 인권 문제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민간 교류 협력의 확대를 통해 북이 남북 대화에 응할 수 있는 구체적 동기 부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지난 26일 박인규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이사장이 진행한 인터뷰 전문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15년 만에 참석한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단상 바로 앞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박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한편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했고 비무장지대(DMZ) 세계생태평화공원 건설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2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을 통해 "북남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도발 행위"라며 강력 반발했다. 박 대통령의 유엔 연설, 어떻게 평가하나.

정세현: 우선 박 대통령은 통일 문제의 구조와 복잡성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통일이 아주 쉽고 간단하게 이루어질 것처럼 말하고, 이런 말을 들은 국민들은 통일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번 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런 분단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세계가 함께 나서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우리의 구체적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통일 문제의 성격과 구조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분단 극복은 기본적으로 우리 민족 스스로 해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먼저 허물어야 할 남북 간의 장벽은 ‘물리적 장벽’이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고착화된 ‘마음의 장벽’이다. 이런 점에서 국제사회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가 분단 극복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내놓고 그것을 실천, 이행해 나가면서 국제사회의 협력을 호소해야지, 아무런 대안도 행동도 없이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지난 8월11일에 제 2차 남북고위급 회담 하나 제안해 놓고, 인도적 지원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허용 안하면서 북한이 남북대화에 나올 수 있도록 도와 달라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한반도의 분단은 국제적 역학관계 때문에 시작된 후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남북대립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구조화되고 복잡해졌다. 1945년 미소에 의해 국토가 분단됐고, 1948년 남과 북에 각기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가 분단됐으며, 1950년의 6.25전쟁을 거치면서 민족이 분단됐다. 그 이후 남북 간 분단의 골은 깊어만 갔다. 다시 말해 분단 문제의 주(主)는 민족 문제이고 국제 문제는 종(從)인 것이다.

그렇다면 분단 극복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를 먼저 제시하고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협력을 요구하는 것이 순서다. 우리가 먼저 주도적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분단의 장벽, ‘물리적 장벽’보다 먼저 헐려야 할 ‘마음의 장벽’은 국제사회가 헐어줄 수 없다. 남북이 먼저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분단 극복을 위한 실천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노력 없이 국제사회의 협력을 요청하는 것은 순서가 틀린 것이다. 물론 정치인인 대통령이 이런 부분에 대해 깊은 이해를 못 가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참모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국록을 받으면서 어떻게 그런 연설문을 만들어낼 수 있나.

프레시안: 국민들에게 통일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정세현: 예를 들면 DMZ에 세계생태평화공원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말한다. 박 대통령은 “저는 단절의 상징인 DMZ에 '세계생태평화공원'을 건설하여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한반도의 자연과 사람을 하나로 연결하는 출발점으로 삼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이 얘기를 여러 번 언급해왔다. 그동안 DMZ 세계평화공원이라고 해왔는데 이번에 ‘생태’라는 단어가 추가됐지만, 개념은 같은 것이라고 본다. ‘세계’가 됐건 ‘생태’가 됐건 물론 좋은 얘기다. 그리고 국민들은‘그런 것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게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2002년 9월 18일 시작된 남북철도 도로 연결 공사 중 DMZ구간 공사할 때의 실제 사례를 들어 얘기해 보겠다.

우선 이 공사가 가능하려면 남북 당국 간의 합의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당국 간 합의서부터 만들었다. 그런데 정전협정 때문에 DMZ의 상대편 지역은 물론이고 자기측 지역에 들어가려고 해도 상대편의 승인이 필요했다. 북측은 전쟁과 평화 시 언제라도(전·평시) 작전통제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측, 실제로는 유엔군 사령부측에 통보하고 승인받아 들어오면 되는 것이었다. 반면 우리가 북측 지역에 들어가려면 유엔군 사령부의 승인을 받아 북측에 통보하고 들어가야 했다. 승인을 받았다 해도 유엔사가 우리를 대신해 북측에 통보해 주어야 했다. 유엔군 사령부, 실제로는 주한미군은 아직은 살아있는 정전협정 때문에 DMZ 관리를 대단히 까다롭게 한다.

공사를 위해서는 군사분계선 안에 있는 지뢰를 우선 제거해야만 했다. 지뢰 제거를 한 후에는 상대측 지역에 들어가 제대로 제거됐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거쳐야 했다. 당시 주한미군 측은 남측 지역에서의 작업은 포괄적 승인을 해주었기 때문에 한 번의 승인으로 충분하지만 우리가 북측 지역에 들어갈 때는 매번 승인을 받도록 했다. DMZ 출입과 그 안에서의 공사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당시에는 그나마 남북 당국 간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북측의 동의 없이 비무장지대 안에 생태평화공원 건설이 가능하겠나.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그냥 쉽게 우리가 결심하고 유엔이 밀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도 많을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북측 동의 없이 공사를 강행한다는 것은 남한 군사력이 현재 위치에서 2킬로미터(정전협정상 남방한계선, 즉 철책으로부터 군사분계선까지의 거리) 북상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북이 이것을 받아들이겠나.

DMZ 생태평화공원은 법적으로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돼야 가능한 사업이다. 그리고 평화협정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북핵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된 9.19공동성명에 명시돼 있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남북 간의 군사적 신뢰가 형성돼야 할 수 있는 사업이다. 현재 정부 안에 있는 사람들이 현 상황에서 이것이 실현 가능하다고 믿어서 이런 제안을 내놓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정부도 문제지만 언론에서도 이런 점을 분석적으로 지적해야 한다. DMZ 생태평화공원 조성이 현 상태에서 가능한지 그 현실적 가능성에 대해 점검을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은 생태평화공원 같이 좋은 사업이 순전히 북한의 반대 때문에 안 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이 사업이 현실성이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북한과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언론이 이런 점을 지적하는 계몽자 역할을 해 주지 않으면 권력은 통일 문제에 관해서 중우정치(衆愚政治)의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전두환 정부 때인 1982년 2월 1일에 ‘남북 20개시범실천사업’이 발표됐다. 여기에 생태평화공원과 비슷한 아이디어들이 들어 있었다. DM내 공동경기장 건설, DMZ 생태 연구 및 공동 학술 조사, DMZ내 군사시설 철거 등 외에 설악산과 금강산을 남북공동 관광지구로 만들자는 제안도 있었다. 서울-평양 간 도로 연결 사업도 들어가 있었는데. 솔직히 그 당시에 이 제안은 실천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다. 전두환 정부가 통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한 제안이었다. 이 정부도 그런 것인가. 민족의 미래가 걸린 이런 문제에 겉만 번지르르한 홍보성 제안은 삼가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국민들의 민도의 수준도 32년 전과는 다르다.

프레시안: 박 대통령이 북한 인권 문제도 강도 높게 거론했다.

정세현: 지난 3월 유엔 인권이사회가 ‘북한 인권실태 조사 특별위원회(COI)’ 권고사항을 채택한 것을 예로 들며 북한과 국제사회가 COI 권고사항 이행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북한 인권 개선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권고사항에는 정치범수용소의 폐쇄와 반인도적 범죄 책임자(김정은) 처벌은 물론 중국에 ‘강제송환 금지 준수’ 등을 촉구하고 유엔 안보리에 ‘북한 인권문제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등 광범위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게다가 한국은 COI 북한인권사무소의 서울 유치까지 결정했다. 북한으로서는 인권 문제를 빌미로 한 대북 압박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특히 미국이 지난 23일 뉴욕에서 북한 인권에 관한 ‘고위급회의’를 개최하면서 북한의 참여를 배제한 것은 그런 혐의를 짙게 한다. 북한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도 이를 거부하지 않았나. 케리 국무장관이 참석한 이 회의는 불과 30분밖에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당사자도 참여하지 않은 회의에서 무슨 실질적 방안이 나왔는지 의심스럽다. 지난 9월 13일 북한이 자체 인권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앞으로 인권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와 적극 대화하겠다고 한 것에 대한 선제대응으로 보인다. 이번 유엔총회를 계기로 COI를 매개로 한‘북한 인권 문제의 정치화’가 시작됐다고 본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한의 선행동이라는 압박에 이어 북한 인권에 대한 압박이 시작된 것이다.

윤병세 장관은 ‘고위급회의’에 참석해 “남북이 인도적 이슈뿐만 아니라 인권 대화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는데, 그럴 생각이 있다면 북한을 이 회의에 참석시켰어야 했다. 비록 미국 주최의 회의라 하더라도 우리가 나서서 북한이 참여하도록 했어야 했다. 당사자인 북한을 제쳐놓고 도대체 누구와 인권 대화를 하겠다는 것인가. 인권 문제라는게 양자 대화로는 풀리기가 쉽지 않다. 다자간 대화, 즉 국제사회와 북한이 모두 모여 대화를 하면서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2001년에서 2003년까지 유럽연합과 인권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유럽연합은 인도적 지원을 병행하면서 대화를 지속했다. 인권 대화가 북한에 대한 압박수단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아주 조금이지만 북한의 인권 상황이 개선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북한을 배제한 채 인권 문제를 거론한다면 그것은 대북 압박용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오바마 정부 이후 북미 대화는 전혀 진전이 없다. 오바마 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명분 아래 북핵 문제를 방치하면서 북한의 선행동만을 요구하는 압박정책을 펴왔는데 북한이 인권 문제에 적극적 태도로 나오니까 인권 문제를 대북 압박을 위한 새로운 아이템으로 선택하려는 것 같다. 핵 압박에 인권 압박이 더해진 것이다. 명분 측면에서 인권 문제가 핵문제보다 국제사회에 더 호소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이 납치자 문제를 이유로 자체 대북 제재를 해제했다. 제재의 공조가 허물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압박을 가중한다고 해서 북한 핵문제 해결이나 인권 문제 개선의 실마리가 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여러 차례 지적된 사항이지만 박근혜 정부의 대북, 통일정책은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 같다.

정세현: 통일 문제의 구조를 무시한 채 화려한 수사만 늘어놓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북핵 문제, 북한 인권 문제, 그리고 통일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북한의 참가와 협조와 실천이다. 즉 남북 관계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이게 없으면 단 한 발자국도 진전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의 연설이 있은 후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5.24조치 해제 문제도 논의할 수 있으니 (남측이) 지난 8월 11일 제안한 남북 고위급 회담에 응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해서 북한이 대화에 응할 것 같은가. 전혀 아니다.

북한을 대화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생태평화공원이든 인권 문제든 협의를 시작하면 북한에 득이 된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분단에 따른 불이익을 줄일 수 있다는 비전을 주어야 한다. 당위성만 강조하거나 원론적인 예기 해가지고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 내지 못한다. 북한을 당국간 회담과 협력의 마당으로 끌어내려면 민간 차원의 교류와 접촉을 늘려 북측이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음의 장벽을 먼저 허물어야 한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는 북핵 문제와는 별도로 인도적 지원은 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번 천명했지만 실제로는 좀 규모가 있는 대북 지원 사업은 승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 5년간 연간 대북 지원액이 평균 151억 원, 마지막 해인 2012년에는 51억 원이었다.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의 대북 지원 승인 액수는 25억 원에 불과하다. 이래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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