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열 번째 구단 kt 위즈가 어렵사리 3승을 거뒀다. kt는 22일 열린 수원 홈경기에서 SK 강타선을 무실점으로 봉쇄, 창단 이후 처음 홈경기에서 승리했다. 선발 정대현과 4회부터 구원으로 나온 장시환 등 국내 투수의 역투가 승리의 결정적인 원동력이 됐다. 특히 5.1이닝을 혼자 버틴 장시환은 나오는 경기마다 긴 이닝을 막아내며 한화 권혁과 함께 리그 최고 ‘중무리(중간계투+마무리)’로 활약하는 중이다.
이렇게 국내 투수들의 활약이 돋보일수록 초라해지는 건 kt 외국인 투수들의 현주소다. kt 외국인 투수 중 지금까지 제 몫을 하고 있는 건 이제는 국내 투수처럼 느껴지는 옥스프링 하나 정도(1승 ERA 4.91). 필 어윈은 3경기에서 승리 없이 ERA 10.22만을 기록하는 중이며, 시스코도 5경기 무승에 ERA 8.27로 부진하다. 시스코는 규정이닝 투수 중 ERA 최하위를 기록 중이다. 많은 이닝을 책임져야 할 외국인 투수들이 나왔다 하면 일찌감치 무너지면서, 젊고 경험 없는 국내 투수들이 긴 이닝을 던져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
상황이 제일 심각한 건 필 어윈이다. 어윈은 시즌 첫 등판인 3월 28일 개막 롯데전에서 4.1이닝 8실점으로 난타당했다. 8-2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5회 6실점으로 무너지면서 팀의 개막 첫 승 기회를 날렸고, kt가 개막 11연패를 당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4월 3일 KIA전에서는 5.2이닝 3실점으로 비교적 잘 막아냈지만 승리를 챙기지 못했고, 4월 9일 SK전에서는 2.1이닝 8피안타 4실점으로 다시 한번 무너졌다. 그리고 시즌 4번째 등판을 앞두고 갑작스런 손목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상황이다.
시스코 역시 상황이 좋지 않긴 마찬가지. 시스코는 5차례 선발로 나와 4월 10일 넥센전 1경기를 제외하고는 6이닝을 채운 경기가 없다. 개막 2차전 롯데전과 최근 두 차례 등판에서는 모두 4회를 넘기지 못하고 강판되어 불펜의 부담을 키웠다. 특히 20.2이닝 동안 삼진 23개를 잡아냈지만 그와 함께 볼넷 16개, 폭투 7개를 기록하며 영화 <19번째 남자>의 팀 로빈스가 생각나는 들쭉날쭉 제구력을 선보이고 있다. 21일 SK전에서는 크게 원바운드된 공이 타자 브라운의 머리에 맞고 몸 맞는 볼이 되는 희한한 광경까지 연출했다.
2013년 먼저 창단한 NC 다이노스가 첫 시즌부터 리그 7위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킨 건, 찰리-해커-아담으로 이어지는 외국인 투수의 활약이 절대적이었다. 이들 외인 3인방이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호투한 덕분에 NC는 취약한 공격력(조정 OPS 86으로 최하위)에도 많은 승수를 쌓을 수 있었다. 국내 선수층이 두텁지 않은 신생팀은 4명까지 기용 가능한 외국인 선수가 기존 구단보다 우위를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다.
이에 kt도 남은 시즌 경쟁력을 보여주려면 외국인 투수 교체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23일 현재 kt 팀 평균자책은 6.18로 10개 팀 최하위에 그치고 있지만, 만약 어윈과 시스코가 옥스프링과 동일한 성적(22이닝 12자책점)을 내고 있다고 가정하면 팀 평균자책점은 5.29로 1점 가까이 줄어든다. 사실 옥스프링의 개인 성적도 다른 구단 외국인 에이스에 비하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kt가 외국인 투수를 조기에 교체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통 큰 투자를 약속했던 10구단 창단 승인 당시와는 달리, 이후 통신업계 사정 악화와 그룹 수뇌부 교체 등으로 야구단에 대한 지원이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kt는 지난 스토브리그 FA 시장에서 김사율-박경수-박기혁 등과 계약하며 ‘인원 수’만 맞추는 선에 그쳤다. 이 중 지금까지 팀 전력에 도움을 주고 있는 선수는 박경수 하나 정도다. 2014시즌 중 영입한 시스코와 재계약, 롯데가 재계약을 포기한 옥스프링 재활용도 마찬가지. 옥스프링은 올 시즌 KBO리그 등록 외국인 선수 중 최저연봉(20만 달러)을 받으며, 시스코도 32만 달러로 외국인 선수 최저연봉 순위 5위다.
한편으로는 kt 사정과 별개로 아직 외국인 선수를 바꾸기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구단 관계자는 “NC 외국인 투수들이 결과적으로 좋은 성적을 내긴 했지만, 시즌 초반만 해도 엄청나게 부진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NC의 1군 진입 초기 상황을 보면, 많은 점에서 지금의 kt와 닮아 있다. 2013년 당시 NC는 첫 20경기에서 3승 1무 16패로 승수 쌓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kt 역시 22일까지 19경기에서 3승 16패를 거두고 있다. 또 외국인 투수들의 동반 부진도 공통점이다. 첫 20경기 동안 NC 외국인 투수들은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부진했는데, 해커는 4경기 무승 3패에 평균자책 7.11로 최악이었고 찰리도 4경기 2패 평균자책 4.66을, 아담은 5경기 3패 평균자책 4.46에 그쳤다. NC 외국인 투수가 첫 승리를 거둔 건 4월의 마지막 날, 시즌 22번째 경기가 되어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부진하던 NC 외국인 투수들은 5월 이후 일제히 살아났다. 찰리는 11승 7패 평균자책 2.48로 최고 외국인 투수 대열에 올랐고, 해커도 평균자책 3.63의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외국인 투수의 활약에 힘입어 NC는 9개 팀 중 7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뒀고, 찰리와 해커는 재계약에 성공했다.
비슷한 사례는 NC 외에도 많다. 2007년 현대 브룸바가 대표적이다. 브룸바는 개막 이후 14경기에서 타율 0.204에 그쳤고 부상으로 수비도 하지 못했다. 성적만 보면 퇴출 대상이지만, 당시 모기업 사정으로 외국인 선수를 바꾸기 어려웠던 현대는 브룸바를 계속해서 기용했다. 부상에서 회복하면서 컨디션을 되찾은 브룸바는 5월 이후 원래 실력을 발휘했고, 5월 15일과 16일에는 이틀간 홈런 5개를 몰아치기도 했다. 브룸바는 타율 0.308에 29홈런 87타점의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만일 외국인 투수가 초반 부진하다고 바로 교체했다면, 어쩌면 NC는 지금처럼 경쟁력 있는 팀이 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kt 외국인 투수들도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기회를 준다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난타당하긴 했지만 어윈은 3경기에서 타석당 볼넷 8.06%-타석당 삼진 17.74%로 괜찮은 컨트롤을 선보였으며, 인플레이 타구 타율(BABIP)이 0.488로 수비수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 시스코의 경우 제구는 좀 불안하지만 150km/h 가까운 강속구를 던질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2013년 당시 NC 찰리는 팀 내야수비가 좋아지면서 자신감을 얻은 게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고, 해커는 투구폼의 약점을 퓨처스팀에서 보완해 좋은 투구를 펼칠 수 있었다. kt도 현재 어윈이 부상으로 퓨처스팀에 내려간 상황이고, 시스코는 조범현 감독이 불펜 기용을 검토하는 등 변화를 주려고 시도하는 중이다. 이런 시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점이 있다.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이 없이는, 좋은 성적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새로 창단한 신생팀이 초반에 많이 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특히 FA나 외국인 등 전력보강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았다면, 더 많이 지는 게 당연하다. 신생팀의 첫 시즌은 많이 이기고 포스트시즌에 나가는 결과가 최우선 목표가 아니다.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키워내고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어려운 여건에서 부지런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kt 프런트와 선수단에 당장의 결과를 요구하려면, 모기업에서도 그만큼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투자와 지원을 해줄 수 없다면, 부담을 주기보다는 기다리는 자세로 지켜보는 게 도리다.
기록출처: www.baseball-lab.com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