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휘 <프레시안> 조합원을 처음 만난 건 지난해 10월 30일 밤, 강효모 조합원이 운영하는 상수역 앞 바 '모두들 사랑한다 말합니다'에서였다. 서른도 전에 벌써 기억력 쇠퇴에 시달리고 있는 기자가 이 날짜를 이토록 똑똑히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이 날은 입사 이래 가장 바빴고, 가장 마음 아픈 취재를 한 날이었다. 세월호 참사 10명의 실종자 중 한 명에서 295번째 사망자가 된 고(故) 단원고 황지현 학생의 마지막을 보고 온 날이었다.(☞관련 기사 : 엄마 품에 돌아온 지현이 "생일날 와줘 고마워")
진도에서 지현이를 먼저 헬기에 띄워 보낸 뒤 안산 장례식장에 뒤따라 가 지현이 어머님이 직접 내어주신 육개장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솟아올랐다. 거의 이틀 밤을 꼬박 새운 터라 피곤했고 제대로 씻지도 못해 찝찝했지만, 어쩐지 집에 들어가긴 싫었다. 정처 없이 걷다 간 곳이 '모두들 사랑한다 말합니다'였다. 그곳에선 이미 직원·소비자 조합원 몇몇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너무도 울적했던 터라, 김 조합원과는 초면이었음에도 웃는 낯으로 대할 수 없었다. 그저 진도에서 본 것들, 느낀 것들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날, 내가 울었던가. 그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심각한 얼굴로 기자의 말을 경청하는 김 조합원의 모습이었다. 그는 "힘드셨겠다"며 기자를 위로해주었다.
그 날 이후로 세월호 선체 수색은 종료됐고, '수색 종료와 함께 인양 작업에 착수하겠다'던 정부는 입을 꾹 다물었고, 제멋대로인 시행령을 희생자 가족 앞에 내놓았고…. 그렇게 참사 1주기가 다가왔다.
"지금은 자기들이 죽어가고 있다던 희생자 언니 얘기에 눈물 났어요"
17일, 김 조합원과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지난 주말에야 처음으로 진도 팽목항에 다녀왔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진도에 다녀온 기자의 이야기를 열심히도 듣던 그의 모습이 다시 생각났다. 그는 "마음의 빚을 털어낸 기분"이라고 했다. "빚을 청산했으니 좋을 것 같다"고 되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다.
"빚이 청산이 됐으니 시원해야 하는데 오히려 씁쓸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더 관심 가져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이번엔 1주기라서 그런지 진도에 단체로 많이 왔던데, 그동안에는 물품도 끊긴 적이 좀 있었나 봐요. 다음번엔 사람 없을 때 가보려고요."
김 조합원은 팽목항에서 만난 실종자 가족들에게 고기, 주방 가스 등을 전달해드렸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 지인들과 함께 '노란 계좌'를 텄다고 했다. 세월호 인양이 완료돼 실종자 가족들이 팽목항을 떠날 때까지 수시로 모금을 해서 보내드리기 위해서다.
참사 1주기 당일이었던 16일에는 서울 시청 광장에서 열린 추모대회에 참석했다. 그는 <프레시안> 지면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던 고(故) 최윤민 학생의 언니 최윤아 씨의 이야기가 가장 가슴에 깊이 남았다고 했다.(☞관련 기사 : "사람을 버리는 국가, 필요 없다"…세월호 추모제, "세상 밑바닥 본 1년…아직 손 내밀고 있어요")
"막연하게만 '유가족들이 힘들겠거니' 했는데 그 친구(윤아 씨)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까 정말 와 닿더라고요. '작년 오늘에는 동생이 죽는 걸 생방송으로 봤는데, 지금은 우리 유가족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살려달라고 하는데, '아, 저 사람들이 정말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회 내내 꾹 참고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프레시안> 광고 없는 페이지, 좋긴 한데 경영이…"
김 조합원이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그리 오래지 않았다. <프레시안>을 안 것도 고작 1년 안팎의 일. 평소 다른 모임을 통해 알고 지내던 안종길 조합원(☞관련 기사 : "'닥치고 일일호프'에 놀러오세요")을 통해 <프레시안>을 알았고, 지난 11월 조합원이 되었다.
'초짜' 조합원이지만, 그는 대의원까지 맡겠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사실 다른 조합원들에 비해 저는 사회 이슈나, 프레시안 사정에 대해 많이 알진 못해요. 그래서 대의원이 되면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이 되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다른 대의원들보다 '일반 대중'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해요. 그런 '대중의 시각'으로, 다른 대의원과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합 가입 후 근 5개월 사이, 그는 일일호프 뒤풀이, 임실 탐방, 대의원 회의 등 다양한 조합 행사에 참석했다. 그러면서 <프레시안> 협동조합이라는 커뮤니티에 서서히 스며드는 중이다.
"예비 대의원(?) 자격으로, 대의원 회의를 참관한 적이 있어요. 저랑은 상관없는 모임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걸 느꼈어요. 내용 자체가 재밌진 않았는데(웃음), 이렇게 다같이 모여서 고민을 이야기하는구나. 그 모습이 아기자기해 보였고, 그리고 다들 정말 좋은 사람들 같았어요."
조합원으로서, 또 예비 대의원으로서 그가 관심 가는 <프레시안> 내부 이슈는 바로 '모바일 광고'다. 얼마 전, 2030 휴대폰 메신저창에서 '광고 때문에 모바일 기사 보기가 어렵다'는 민원이 여러 차례 나왔다. 광고 문제는 직원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민감한 이슈다. 조합원들과 독자들에게 좀 더 편한 모바일 환경을 제공하려면 광고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과, 그래도 안정적인 경영을 이어가기 위해선 광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맞부딪히고 있다.
김 조합원은 "'광고 없는 페이지'는 <프레시안>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은 맞지만, 서두르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고잔동에서 온 편지' 특별 페이지(☞바로 가기)를 보니, 확실히 광고가 없으니까 보기 좋긴 하더라고요. 언론사에서 광고를 없앤다는 게 도전해볼 만한 큰 과제이니, 된다면야 정말 의미 있는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돼요. 현실적으로 안정적인 재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제 생각엔 <프레시안> 기사를 보려는 의지만 있다면, 광고 때문에 기사를 안 읽지는 않을 것 같아요."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어쩐지 친화력이 좋다 싶더니, 김 조합원은 '영업맨'이었다. 병원에서 쓰이는 혈액 검사 장비와 시약을 판매하는 게 그의 업무다. 의약업계 종사자 입장에서, 그는 의료 민영화를 걱정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이미 끝났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서울에서 지방까지 의료 민영화가 급속도로 번져가고 있다고 했다.
"병원이든 의약업체든, 작은 곳은 다 힘들어요. 점점 더 큰 회사들, 자본 있는 회사들만 살아남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어요. 삼성이나 아산 같은 큰 병원이 지방 병원을 흡수하고, 의사들을 스카우트해가면서 병원비를 올리는 식이죠. 병원장 위에 사장이 있으니, 병원이 추구하는 게 이윤이 되어버린 지 오래됐어요. 이쪽 업계에서는 워낙 예전부터 준비했던 거라 돌이키기엔 늦었고…, 각자 돈 많이 벌어야 할 것 같아요. 암울한 일이죠."
개인적인 고민이 무엇인지 물었다. "제가 서른 중반이잖아요. 당연히…." 그렇다. '결혼'이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집안에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세월호 이슈에서 결혼 이야기까지, 통화 내내 양쪽에서 한숨이 오고 갔다.
이대로 우울하게 통화를 끝낼 수 없어, 분위기 전환 겸 ‘지면을 통해 자신을 어필해보라’ 제안했다. 쑥스러워하더니 곧 꺼낸 말.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암울한 일도, 기쁜 일도, <프레시안> 조합원 모두와 함께 나누며 살아가기를.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김 조합원의 활약상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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