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미안하단 말을 많이 했습니다. 세상이 이래서 미안하다고, 어른이어서 미안하다고,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미안하단 말을 듣고 싶은 사람에게는 못 들었습니다. 왜 잘못한 사람은 사과하지 않을까요?"
1년 전, "동생이 죽어가는 걸 생방송으로 지켜봐야만 했다"던 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단원고 2학년 3반 고(故) 최윤민 학생의 언니 최윤아 씨의 목소리는 떨림에서 울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4.16 세월호가족협의회'와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16일 오후 7시 서울 시청광장에서 '4.16 약속의 밤' 추모제를 열고, 세월호 인양과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시행령) 폐기를 촉구했다.
시민의 손에는 촛불 대신 추모의 의미가 담긴 흰 국화가 들렸다. 이날 시청광장에는 시민 6만 5000명이 모였고, 광화문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시민 5000명이 국화를 헌화했다.
단원고 2학년 7반 전찬호 학생의 아버지 전명선 씨는 "국가에 유가족이 바란 것은 단 두 가지였다.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해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 세월호를 인양해서 끝까지 실종자를 찾겠다는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다"면서 "우리는 위패와 영정 앞에서 수차례 요청하며 어제까지 국가의 답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전 씨는 "하지만 끝내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오늘 박 대통령은 우리 가족들을 피해 팽목항에 잠시 머물렀다가 혼자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해외로 떠났다"며 "국민의 어버이로서 국민의 수장으로서 이 나라의 대통령은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생명과 목숨을 한낱 돈 취급하는 대한민국 정부를 두고 볼 수 없다"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인간의 존엄성을 국민과 함께 찾겠다. 국가의 답이 나올 때까지 청와대 문을 두드리고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단원고 2학년 2반 실종 학생인 허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 씨는 "저는 오늘 광화문에서 304명의 눈물과 국민의 눈물을 똑똑히 봤다"며 "1년이 다 되도록 정부는 아무 말이 없고, 저희 가슴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찢어졌다"고 울먹였다.
일부 시민이 "힘내세요", "다윤이가 너무 예뻐"라고 외치자 허 씨는 "너무 예쁘죠? 전 미칠 듯이 보고 싶습니다. 근데 저들은…"이라고 말한 뒤 말을 잇지 못했다.
허 씨는 "저 차디 차고 어둑한 세월호에 누운 9명의 실종자가 있다"며 "저들은 벌레 보듯 하고 있지만, 이 9명은 벌레가 아니라 사람이다. 국가가 사람을 버린다면 이 국가는 필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아 씨는 단상에 올라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최 씨는 "높으신 사람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세월호 좀 인양해주세요. 저는 실종된 다윤이 언니를 볼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어서 미칠 것 같습니다. 희생당한 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세요"라고 말했다.
최 씨는 "(광장에 계신)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살려 주세요. 이 나라에서 숨 쉴 수 있게 도와주세요. 우리가 내민 손을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호소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대통령님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대통령님, 지금 이 나라는 병들어 있습니다. 아프고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금 당장 가정에서 아이가 죽어 가는데, 밖에 일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무엇을 중요시해야 하는지 우선순위를 다시 정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가수 안치환 씨와 이승환 씨도 추모 공연에 나서면서 가족들에게 힘을 보탰다.
안치환 씨는 "1년이 지났지만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이 이렇게 엉망인지 몰랐다. 이 나라가 이렇게 저주스러울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승환 씨는 "세월호 100일 문화제 때 제가 '우리는 불쌍한 국민이다. 정부의 무능함과 무심함을 알아챈 불쌍한 국민'이라고 말했다"면서 "그런데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 이제는 무능함, 무심함을 넘어 우리는 무시당하는 더 불쌍한 국민이 돼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광장 한편에서는 방송인 김제동 씨가 조용히 유가족과 일일이 포옹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대통령령 즉각 폐기와 온전한 세월호 선체 인양을 촉구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선체가 인양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말만 했다"며 "시신 유실 방지 대책을 제시한 선체 인양을 해달라"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9시 20분께 추모 행사를 끝마치고, 국화를 든 시민들은 광화문에 설치된 세월호 분향소에 헌화하고자 발길을 돌렸다. 경찰은 차벽을 설치하고, 헌화하러 가는 시민을 "개별적으로 채증하겠다"고 경고한 상태라 충돌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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