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4월 16일이 왔지만, 365일이 4월 16일이었다. 1년 전, 제주로 향하는 배에서 아이가 돌아오지 못한 후, 안산에 남겨진 유족들에겐 지난 1년이 그랬다.
안산의 하늘은 계속 비를 뿌렸다. 노란색 우비를 챙겨입은 유족들은 '세월호 참사 1년 지금도 국가는 없다'고 쓴 커다란 피켓을 들고 아이들이 있는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아이들의 영정이 분향소 안에 있고, 엄마들은 말 없이 피켓을 들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분향소를 지켰다.
오전 10시
안산시내 전역에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한 추모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단원고 생존 학생 70여 명을 포함해 전교생 800여 명이 분향소를 찾았다.
교복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한 손에는 미리 준비한 꽃과 편지를 들고, 다른 손은 친구들의 손을 잡은 채 아이들이 분향소 안에 들어섰다. 곳곳에서 울음이 터졌다. 영원히 17살인 모습으로 영정이 된 친구들의 얼굴을 본 몇몇 아이들은, 분향소 밖을 나와서도 한동안 주저앉아 통곡했다.
오후 1시
박근혜 대통령이 팽목항에 다녀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유족들은 다 여기 있는데, 혼자 왜 거기 간거야?" 분향소 주변에서 그의 방문을 둘러싼 말들이 이어졌다.
환영 받지 못한 방문. 팽목에 남아 있던 실종자 가족들은 박 대통령의 방문 소식에 분향소를 폐쇄하고 팽목을 떠났다. 항의의 의미였다.
"모든 실종자를 찾아 한을 풀어드리겠다"는 약속도, 참사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하겠다는 약속도, 그 어떤 것도 지켜지지 않은 채 다시 4월 16일이 왔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선체 인양에 대해선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인양에 나설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유족들이 '쓰레기 시행령'이라고 부르는 정부 시행령 폐기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날 오후 2시로 예정된 1주기 공식 추모제를 취소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곳곳에서 나왔다.
오후 1시 40분
"당장 나가요! 애들 앞에서 뭐하는거야!"
거센 항의 소리가 들렸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이 분향소를 찾았다. 예고없는 방문이었다. 헌화는 이뤄지지 못했다. 유족들은 "조문이 아니라 진정한 사과와 선체 인양, 시행령 폐기를 원한다"고 했다.
굳은 표정의 김 대표는 1년간 변한 게 없다는 가족들의 항의에 "여당이 언제 가족들 만나는 것 거부한 적 있나. 만나서 협의하자"고 했다. 유족들은 흥분했다.
"아무 약속도 안 지키고, 아무 숙제도 안 해놓고, 여기가 어디라고 와요?"
"내 새끼 살려내!, 내 새끼 살려내라고요!"
유족들에 밀려 황급히 분향소를 떠나는 새누리당 지도부 뒤로, 단원고 2학년 6반 고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 씨가 바닥에 쓰러져 오랫 동안 오열했다.
오후 2시
유족들은 "애들 영정 앞에서 이러지 말고 분향소 밖에 나가서 이야기 하자"고 했지만, 새누리당 지도부는 황급히 발길을 돌렸다. "사과라도 하고 가라"고 외치는 시민들과 유족들이 김 대표가 탄 검은 승용차를 에워쌌다. 경호원들과 유족들이 뒤엉켰다. 아수라장이었다.
경찰이 투입돼 김 대표의 차를 에워쌌다.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렀다. 김 대표는 경찰의 호위 아래 분향소를 떠났다. 그새 굵어진 빗물이, 삭발한 유족의 머리에 흘러내렸다.
같은 시각, 유경근 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합동분향소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던 추모제 등 모든 일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을 만나러 청와대로 향했다.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의 의제는 '세월호'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 3시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추모제를 위해 설치한 무대, 분향소 앞에 마련된 수천 개의 의자가 빗물에 젖었다. 무대도, 의자도 비어 있었다. 가장 앞 줄,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이 쓰인 의자도 있었다.
정치인들의 의자는 비어 있었지만, 추모 행렬은 늘어났다. 주차장은 가득 찼고 분향소 앞엔 긴 줄이 생겼다. 정치인들이 도망치듯 떠나버린 분향소 앞, 젖은 눈으로 분향을 기다리는 시민들이 있었다.
오후 3시 30분
'정부 시행령 폐기하라'는 피켓을 들고 비를 맞으며 분향소 앞을 지켰던 유족들이 떠날 채비를 했다. 추모제 무대가 철거되기 시작했다. 추모제 없이 다시 맞은 아이들의 기일. '365일째 4월 16일'인 이날, 가족들은 "국가의 주인인 우리가 오늘 청와대로 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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