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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라, 쿠바의 위대한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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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라, 쿠바의 위대한 승리

[주간 프레시안 뷰] 박근혜가 중남미 순방에서 배워야 할 것

지난 11일 파나마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제7차 미주정상회의에서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1956년 아이젠하워-바티스타의 정상회담 이후 59년만입니다. 1959년 1월 1일 피델 카스트로가 주도한 쿠바혁명 이후 56년, 1961년 양국 국교의 단절 이후로는 54년만입니다. 이어 지난 14일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했습니다. 1982년 쿠바가 중남미의 폭력혁명을 돕는다는 이유로 레이건 대통령이 취했던 제재조치를 33년만에 철회한 것이죠. 이로써 1962년 시작된 미국의 대쿠바 경제봉쇄가 풀릴 단초가 열렸습니다. 경제제재 해제는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공화당의 반대라는 난관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제 미국과 쿠바는 관계 정상화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카리브해의 작은 나라(면적 11만 평방킬로미터, 인구 1100만명) 쿠바가 세계 최강 미국의 반세기 이상 계속된 온갖 억압과 방해를 견뎌내고, 사회주의라는 자신들이 선택한 생활방식을 유지한 채, 마침내 미국의 인정, 아니 사실상 항복을 받아내면서 국제사회에 화려하게 복귀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서방언론들은 미-쿠바 관계정상화가 지난해 12월 17일 오바마 대통령의 결단에 의한 것으로, 그리고 이에 따라 쿠바가 50여년만에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진실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쿠바가 주권국가로서 우뚝 서게 된 것은 (50여 년이 아니라) 150년에 걸친 피어린 투쟁의 소산이며 여기에 중남미 국가들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선 쿠바의 국제사회 복귀는 오바마의 선의 때문이 아닙니다. 미국이 쿠바의 국제사회 복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곤경에 몰렸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오바마가 말했듯이 "50여 년 간 계속된 (쿠바에 대한 봉쇄) 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그 정책은 바뀌어야" 했던 것이죠. 게다가 2012년 6차 미주정상회담에서 주최국인 콜롬비아의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을 비롯해 중남미의 33개 회원국 모두가 쿠바의 참석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당시 쿠바의 미주정상회의 참석을 거부한 나라는 미국과 캐나다, 단 두 나라뿐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의 비판적 지성 노엄 촘스키는 "만일 미국이 쿠바의 참석을 계속 거부한다면 다음 번 미주정상회의에서는 미국이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중남미 국가들의 한결같은 요구를 미국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죠.

콜롬비아는 중남미에서 미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입니다. 또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결코 좌파 성향이 아닙니다. 이런 그가 쿠바의 동참을 요구했다는 것은 현재 중남미에서 쿠바의 위상이 어떠한가를 잘 보여줍니다. 일례로 지난 콜롬비아 미주정상회의에서 볼리비아,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등은 다음 번 회의에 쿠바가 참석하지 못하게 되면 자신들도 회의에 불참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또한 이번 회의에서 크리스티나 키르치너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쿠바의 참석이 (미국의 선의 때문이 아니라) "지난 50여년간 미국의 경제봉쇄에 맞선 쿠바인들의 불굴의 투쟁 때문"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오바마의 화해 제스처가 좋긴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으며 지난 반세기간 쿠바인들을 괴롭혀온 '비인간적이고 불법적인 봉쇄'를 해제하고 미군이 점령한 (쿠바의) 관타나모 해군기지를 반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또한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미국은 가난한 쿠바를 도우려는 착한 천사가 아니다. 지난 50여년간 경제봉쇄로 쿠바에 끼친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의 평화협상에 대한 쿠바의 중재 노력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1954년 과테말라 아르벤즈 정권 전복을 시작으로 1973년 칠레 아옌데정권 파괴, 그리고 1980년대 내내 중남미 국가들에 대해 잔인한 국가테러를 일삼은 미국이 오히려 쿠바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의 극치라 하겠습니다.)

한편 다른 나라들은 자국 의사들이 가지 않으려는 빈곤지역에 의사를 보내고 의과대학을 세우며, 쿠바에서 의사와 교육자들을 양성해준 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쿠바의 문맹퇴치 프로그램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습니다.


1959년 혁명 이후 카스트로 제거, 그리고 사회주의 정권 전복을 위한 미국의 무수한 음모를 쿠바는 꿋꿋이 견뎌냈습니다. 1961년 4월 피그스만 침공, 1976년 10월 쿠바 민항기 폭파(탑승객 73명 전원 사망), 2000년 파나마 미주정상회담 당시 피델 카스트로 암살을 위한 회의장 폭파 계획 등 미국의 숱한 공격을 이겨냈습니다. 이와 함께 중남미를 자주와 연대의 지역공동체로 묶어내는 데 앞장섰습니다.

2011년 12월 2~3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결성된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국가공동체(CELAC)가 대표적입니다. CELAC은 탈식민적 라티아메리카 의 통합을 지향합니다. 평화롭게 살 권리, 각 나라가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선택할 권리를 바탕으로 협력과 연대와 통합의 아메리카를 건설하겠다는 것입니다. 각 나라 간의 중대한 차이를 인정하면서 품위 있는 공존을 지향한다는 것이죠. CELAC은 지난 해 1월 쿠바 아바나에서 2차 정상회담에서 중남미 지역을 평화지역으로 선포했습니다. 각국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단결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쿠바가 어엿한 주권국가, 특히 중남미의 지도적 국가로 성장하기까지에는 무려 380년의 식민 지배, 그리고 150년에 걸친 피어린 투쟁이 있었습니다. 쿠바는 1514년부터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았습니다. 19세기 초반부터 중반에 걸쳐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지역 대부분이 독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쿠바는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카리브해의 진주'로 불리는 쿠바의 독특한 위상 때문이었습니다. 쿠바인들은 1868년부터 30년에 걸쳐 무장 독립투쟁을 벌였습니다. 1868년부터 10년간의 무장 항쟁은 1878년 불완전한 휴전으로 끝났고, 1879-80년 2차 봉기 역시 실패했으며 1895년 봄 세 번째 독립 투쟁이 시작됐습니다. 열다섯의 나이에 1차 독립항쟁에 참여했다 미국으로 망명한 변호사 겸 외교관이자 시인인 호세 마르티(1853-1895년)가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첫 전투에서 선봉에 나섰다가 스페인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후에도 쿠바 독립운동의 지도자였습니다. 1894년 망명지 뉴욕에서 쿠바혁명당을 결성한 마르티는 "모두와 함께, 그리고 모두의 선을 위해" 나아가 "인간의 완전한 존엄을" 이루기 위해 쿠바 독립에 헌신하자고 역설했습니다.

1898년 쿠바인의 승리가, 쿠바의 독립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돌연 미국이 참전을 선언했습니다. 쿠바의 독립을 돕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은 쿠바를 지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미국은 제퍼슨 대통령 때인 1800년부터 쿠바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1898년 2월 15일 미 군함 메인호의 의문의 폭발을 빌미로 4월 25일 스페인과 전쟁에 돌입했고 8월 12일 승리를 거둠으로써 쿠바와 필리핀을 스페인으로부터 빼앗았습니다. 미군 전사자가 385명에 불과했기에 미국은 이 전쟁을 '영광스러운 작은 전쟁'이라고 칭송합니다. 당시 스페인은 협상에 의한 평화를 추구했지만 미국은 한사코 전쟁을 고집했습니다. 협상으로 문제가 해결될 경우 쿠바의 독립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1898년 쿠바를 군사 점령한 미국은 쿠바 모든 독립 세력의 무장을 해제시킨 뒤 군정을 시행했습니다. 그리고 1902년 이른바 미국의 플랫법(Platt Amendment)을 강요했습니다. 플랫법의 내용을 쿠바 헌법에 포함시켜야 군사 점령을 풀겠다는 것이었죠. 당초 미국은 텔러법(Teller Amendment)이란 것을 통해 전쟁이 끝난 후 쿠바의 완전한 자유와 독립을 인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전쟁에서 승리한 후 마음이 바뀝니다. 플랫법은 1900년 오빌 플랫 상원의원이 수정안을 제안한 것입니다. 당시 플랫 상원의원은 상원 쿠바관계위원회 위원장이었는데, 이로 미루어보면 미국은 쿠바를 대단히 중시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플랫법(Platt Amendment)의 내용이 기가 막힙니다. 첫째 쿠바에 미 군사기지를 유지한다(관타나모 기지), 둘째 미국은 쿠바와 다른 국가 간의 조약에 대한 거부권을 가진다, 셋째 미국은 쿠바 재무부에 대한 감독권을 가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국은 "쿠바의 독립, 그리고 생명과 재산, 개인적 자유를 지키기에 적절한 정부의 유지를 위해 쿠바 내정에 간섭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1905년 일본이 조선에 강요한 을사보호조약과 같은 것입니다. 플랫법의 내용이 포함된 쿠바 헌법은 점령 미군에 의해 선출된 쿠바 의원 31명의 표결에 의해 15대14로 통과됩니다. 이후 1959년 쿠바혁명 때까지 미국은 쿠바를 자기 마음대로 주물렀습니다. 1902년 당시 미군 총독 이었던 레오나드 우드 장군은 한 친구와 서한에서 "물론 플랫법 아래에서 쿠바에게 독립이란 사실상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미국은 쿠바인의 30년 무장투쟁으로 얻은 독립을 가로챘습니다.

그러니까 쿠바는 380년의 스페인 식민 지배, 60년에 걸친 미국의 간접 지배, 그리고 50여년의 미국의 봉쇄를 뚫고 마침내 진정한 자유와 독립을 쟁취한 것입니다. 실로 5백년만의 해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방평의회 의장. ⓒAP=연합뉴스

이번 미주정상회의에서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우리의 아메리카(Our America)'라는 주제로 49분간 연설했습니다. 본래 각국 정상에게는 8분의 연설 시간이 주어지지만, 쿠바가 불참한 이전 6번의 정상회담분까지 포함해 길게 한 것입니다. 다음은 그 주요 내용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무수한 곤경을 감내해 왔습니다. 쿠바 국민의 77%가 미국의 경제봉쇄 이후 태어난 세대들입니다. 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상호 존중의 정신으로 대화에 임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또한 양국의 심대한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품위 있는 공존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용감한 결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우리는 쿠바식 사회주의의 개선을 위해 경제모델을 혁신하고, 모든 정의를 이루겠다는 다짐으로 시작된 혁명의 성과를 공고히 하며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경제제재는 해제돼야 합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안보 및 대외정책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며 3월 9일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경제제재를 단행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행정명령의 해제를 오바마 대통령에게 요구합니다. 또한 포클랜드를 비롯해 영국에 빼앗긴 아르헨티나의 영토 회복을 촉구합니다. (☞Obama Should Rescind the Sanctions Against Venezuela)

2014년 1월 아바나에서 열린 CELAC 2차 정상회담에서는 중남미 및 카리브해 지역을 평화지역으로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다양성 속의 단합을 추구하는 것과 함께 "국가들간의 평화적 공존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적 조건으로 각 나라들이 자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을 선택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며 "다른 나라의 내정에 직간접적으로 간섭하지 않을 의무, 국가 주권의 존중, 그리고 각 민족이 자신의 운명을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 및 이러한 권리의 동등함"을 추구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선언이 말하는 바, "선량한 이웃으로서 관용의 정신으로 평화 속의 공존"을 추구할 것입니다.

물론 많은 실질적 차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온갖 위험 속에 우리들이 함께 협력하게 하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서반구 차원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공동 대응을 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테러와 마약 거래, 그리고 조직폭력을 막기 위해 북미와 중남미가 정치적 편견 없이 함께 협력하지 못할 이유가 있습니까?

학교와 병원, 일자리와 빈곤 퇴치를 위해 필요한 자원들을 함께 찾아보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까?

부의 양극화를 완화하고 유아 사망률을 줄이며 가난과 질병, 문맹을 제거할 수는 없는 것입니까?

지난 해 우리는 에볼라 퇴치와 예방을 위해 북미와 중남미 국가들이 서반구 차원의 협력을 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협력은 더 큰 성취를 위해 계속돼야 합니다.

쿠바는 자연자원도 별로 없는 작은 나라입니다. 그동안 쿠바는 극도로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이 나라 국민들이 국가의 정치사회적 삶에 전면 참여하도록 애써 왔습니다. 보편 무상의 의료 및 교육 시스템, 국민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사회안전시스템, 동등한 기회의 제공과 모든 종류의 차별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 여성 및 어린이 권리의 전면적 보장, 누구든 스포츠와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으며 생명과 공중의 안전을 위한 권리 등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빈약한 자원과 엄청난 도전에 불구하고 우리는 나눔의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현재, 6만5천명의 쿠바 자원봉사자들이 89개 나라, 주로 의료와 교육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157개국 6만8천명의 외국 시민이 쿠바에서 전문직 교육을 받았으며 이중 3만명은 보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원이 거의 없는 쿠바가 이러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면, 서반구의 모든 국가들이 힘을 합칠 경우 가난한 이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피델 카스트로와 영웅적 쿠바 시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우리는 호세 마르티의 헌신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번 정상회담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손으로 자유를 쟁취한 뒤 우리의 아메리카에 긍지를 갖고, 그 능력은 사랑을 받고 그 희생은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결의와 능력을 다해 아메리카를 지키고 가꿔 나가자."


어떻습니까? 국가 지도자의 품격과 비전이 보이지 않습니까? 세월호 1주년, 유가족들의 비탄과 오열이 그치지 않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도망치듯 중남미로 떠났습니다. 그는 과연 이번 순방에서 중남미 국가들의 자주와 연대의 정신을 배워 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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