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유가족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이 비탄과 분노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망각의 강을 거슬러 헤엄치며, 비극을 잊지 말자고 다짐해 왔다. 세월호 사고 1주기를 맞은 지금, 많은 이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세월호 사고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팽목항부터 시작된 삼보일배에 참여하는 이들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거리에 현수막을 달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북 콘서트를 여는 이들까지 다양하다. 녹색당은 광화문에서 침묵으로 '4분 16초'를 연주하기도 했다.
슬픔과 고통의 시간을 기억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조차 마음 놓고 할 수도 없다. 오히려 위로받아야 할 유가족들은 차가운 광화문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세월호 사고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정부 여당은 진상 규명보다 회피하는데 급급해 있으며, 심지어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조롱과 공격도 나타나고 있다. 진실 규명 없이는 추모하고 위로하는 것은 고사하고, 기억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안전을 기약하기 어려운 일이다.
세월호 사고의 진실은 무엇일까? 진실의 세세한 부분을 하나씩 밝히고 그에 따른 엄중한 책임 추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의 대강은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다. 그 진실을 요약할 수 있는 한 마디를 찾으라면, "생명보다 돈"이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운항사가 낡은 배를 무리하게 개조하고 비정규직 승무원들이 운행하도록 하였다는 점이 비극적 사고를 잉태한 근본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실을 이야기하기에 조금 부족하다고 한다면, "생명보다 권력"이라는 보탤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사고 희생자를 구조하기보다는 책임 모면과 권력 유지에만 온 신경을 쏟았기 때문이다.
사실 세월호 사고의 진실은 그 동안 우리가 경험했던 수많은 비극적 사고들의 그것들과 연결되어 있다. 1995년에 발생했던 삼풍백화점 사고를 기억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삼풍백화점의 경영진들은 백화점 건설 과정에서 온갖 부실 공사를 강행했고, 취약한 건물 구조가 점차 붕괴될 조짐이 감지되었어도 영업을 강행했다. 그 결과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인명 피해로 나타났다.
대규모 참사를 낳는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한국 사회는 딱 그것 하나만 살피고 고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백화점이 붕괴하니 대형 빌딩에 대한 안전 진단을 하고, 다리가 붕괴하니 그것을 점검하고, 지하철 화재 사고가 발생하면 그것을 보수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저돌적 성장을 해오면서 사회 전체가 위험 사회로 변하였다. 한 분야에서 비극적이고 비싼 대가를 치른 후에 위험을 점검할 기회라도 얻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는 어떨까.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라며 매 순간을 넘기는 요행수에 의존하여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사고가 터진다. 그것이 세월호 사고였을 것이다.
위험 사회의 문제를 집단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능력 있는 사람들은 자기만이라도 그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이다. 그들은 돈으로 안전을 사려고 덤벼들고 있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안전이 아니라 능력 있는 개인들의 안전 추구는 대다수 사회 경제적 약자들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공동체의 안전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공동체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그리고 "고위험 고수익"의 도박 원리를 신봉하는 신자유주의가 점차 대규모되고 있는 기술 시스템의 운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욱 파국적인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 하나씩 쌓아 올린 안전 규제가 '규제 철폐'라는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작년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낡은 고리, 월성 핵발전소를 떠올렸다. (사고 직후 나도 노후 핵발전소가 제2의 세월호가 될 수도 있다는 글을 썼지만, 언론사의 신중함 때문에 결국 지면에 실리지는 못했다). 세월호 사고가 궁극적으로 "생명보다 돈" 그리고 "생명보다 권력"이라는 원리가 작동된 탓이라면, 핵발전소는 그런 원리가 응축된 기술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월성 1호기 수명 연장과 신고리 3호기 가동 승인 신청 등,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이런 생각에 더욱 확신을 더하게 된다.
지난 2월 27일 새벽,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날치기 통과시킨 월성 1호기 수명 연장은 절차적인 측면에서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모두 부적절했다. 안전력안전위원회법이 규정한 이해 상충을 피하도록 하는 규정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해당 위원은 배제되지 않았으며, 기술적인 취약성이 있다는 합리적인 문제 제기와 근거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 위원장과 정부 여당 측 위원들은 그저 수명 연장에 필요한 형식 절차인 표결 결과에만 관심을 쏟았다. 건물 밖에서 이루어진 월성 1호기 주변 주민들의 반대 집회는 무시되었다.
이런 무리수를 두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미 많이 지적된 것처럼, 핵 산업을 둘러싸고 맺어진 복합적인 이해관계들 때문일 것이다. 노후 핵발전소는 폐쇄해야 안전하다는 상식은 핵 마피아들의 이해관계 앞에서는 사라져 버린다. 그러한 이해관계가 안전 문제를 압도하고 있는 적나라한 장면들은 쉽게 발견된다. 사용 승인 신청이 된 신고리 3호기는 서류 위조 등의 각종 비리 사건과 노동자 산업재해 사망 사고 등으로 주목을 받은 신규 핵발전소다.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제어 케이블이 설치되었다는 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점들이 제대로 바로 잡혔는지 꼼꼼히 점검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4월 23일에 예정된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에서 또다시 사용 승인 표결이 강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하여 정부는 아랍에미리트(UAE) 핵 발전 수출 관련 지체 보상금 문제를 들어, 안전을 최우선으로 다루어야 할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국민들을 압박하고 있다. UAE에 수출할 핵 발전의 모델이 되는 신고리 3호기를 9월까지 상업 운전 못하면, 지체 보상금으로 매월 3억 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한국수력원자력의 건설 관리 소홀로 벌어진 사건을 핑계로 안전 심사를 대충해 달라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압박이 통했기 때문일까?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이은철 위원장은 3월 26일, 신고리 3호기 운영 허가 심의 첫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요지로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세계에 처음 선보이는 원전인 만큼 이렇게 문서로만 따져보는 것도 좋겠지만 빨리 돌아가는 걸 보고 싶다. 원래 신규 원전이라는 건 초기에 이런저런 운영을 하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고치는 것이다."
다른 설비들도 이런 태도라면 안전 문제를 배제할 수 없겠지만, 핵발전소의 경우라면 더욱 아찔한 발언이다. 운영 초기에 나타나는 시행착오가 그저 단순한 문제로 끝나길 바라지만 대규모 참사로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런 위험 감수적 태도를 금지시키도록 설치한 것이 원자력안전위원회다. 신규 원전이 빨리 돌아가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은 개인의 자유이겠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수장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신념이다. 그런 신념을 가진 이를 임명한 정부가 오히려 원자력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신념이 아니라면, 어쩌면 UAE 핵발전소 지체 부담금을 지불하게 될 수 있다고 압박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사용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신고리 3호기, 그리고 다시 한 번 수명 연장을 시도할 것으로 보이는 고리 1호기. 그 주변으로 반경 30킬로미터 안에 340만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일본에서 설정된 방재 구역 범위를 원용할 경우에 그렇다. 우리처럼 핵발전소 인근에 이렇게 많은 주민들이 거주하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정법이지만, 만약 핵발전소 사고가 난다면? 세세한 것을 예측하기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제2의 세월호 사고"라는 말로는 결코 묘사되기 힘든 참사가 벌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된다면, 어쩌면 세월호 사고는 핵발전소 사고의 대참사를 예고했던 것으로 해석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사고 1주기를 맞아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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