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독일에 체류하는 동안 여러 곳을 방문했고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 중 인상 깊었던 일 중의 하나는 퀠른의 '아시아재단(Asienstiftung)' 연례 발표회에 참석한 일이었다. 학계, 언론계, 사회운동 관계자들이 모여 아시아 각국의 민주화 관련 현안을 놓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나는 한국 정치상황 관련 발표를 했고, 방글라데시 노동 문제를 다루는 분과에 참석을 했다. 통역에 의존했기 때문에 여러 분과나 종합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를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먼 독일에서 아시아 각국 현안을 갖고서 그렇게 발표 토론회를 하고 대안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시아 민주주의를 위해 활동하는 독일 민간단체
방글라데시 분과에서는 봉제공장 노동자들 1000여 명이 건물 무너져 사망한 사건이 주제였는데, 모 기업이 독일회사였기 때문에 독일 연방정부나 의회에 압력을 넣어 피해자 보상 및 노동조건 개선을 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다.
그런데 이 행사를 주관한 아시아 재단, 그리고 이 재단과 연례 발표회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독일의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가 모두 7,80년대 독일에서의 한국 민주화 운동을 크게 지원했던 프로이덴 버그(Prof. Dr. Günter Freudenberg)교수가 전 재산을 기탁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가 독일 재벌가 후손이라서 재력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시아 민주주의를 위해 이런 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새삼 독일이라는 나라의 힘을 느끼게 되었다. 독일에 광부나 간호사로 간 한국인들과 그 후손들이 3만여 명이나 된다고 하고, 그중에는 자녀들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을 텐데, 한국, 아시아 민주주의 지원 활동을 독일인의 후원에 의존한다는 점이 좀 걸렸다.
독일은 국가주의 전통이 매우 강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민간재단, NGO 등의 활동도 매우 활발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독일에는 현재 민간 공공 부문 포함 2000개 이상의 재단이 있고, 정부 개인 기업이 출연한 베를린에만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재단이 독일 문제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및 세계의 공적 현안에 대한 교육 연구 활동을 지원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오래전부터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막대한 개발 원조를 해 왔다. 물론 연구자들은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DA) 지원이 고도하게 자국의 이익을 위해 지출된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이미 30년대 만주 개발을 비롯한 제국 경영의 경험을 가진 일본은 그런 포석을 갖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한편 최근 남아시아 거의 모든 나라는 급속하게 중국 경제권으로 편입되어 가고 있지만, 중국이 그 나라의 사회발전을 위한 지원 활동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의 아시아 보기, 돈벌이 이상의 의미 가져야
작년의 독일 행사 참가 때도 계속 생각이 맴돌았지만, 나는 아시아는 한국에게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묻는다. 많은 한국 드라마, 음악 등 한류의 진출은 크게 칭찬할 만하다. 한국기업들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지에 진출한 것도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과연 아시아는 한국 기업들 돈 벌게 해주는 곳 이상의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와 있는지, 우리 정부나 기업, 시민단체는 과연 식민지, 독재의 경험을 했던 동료의 입장에서, 일본, 미국과는 다른 아시아론을 갖고 있는지 다시 물어 본다.
얼마 전 타계한 싱가포르의 리관유 수상과 김대중 전 대통령 사이의 아시아 민주주의 관련 토론이 우리가 나름대로 의견을 제기했던 아시아론의 전부인 것 같다. 남북한 분단과 전쟁은 우리의 시선을 오직 미국의 시선으로만 아시아를 보게 만들었고, 북한에 적대하느라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냉전적 사시에 머물게 한 것은 아닌가.
며칠 전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게 학살당한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증언행사를 하려 했지만, 참전자들은 행사자체를 무산시켰다. 자신이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 저지른 잘못된 과거를 부인하는 일본의 전철을 따라가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그래도 일본에는 식견있는 아시아 및 한국 전문가, 한국의 민주화나 한·일 과거청산을 위해 꾸준히 일해 온 수많은 개인과 단체가 있어서 한국과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한국이 품격을 갖춘 나라가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다.
프레시안=평화뉴스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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