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과 중국은 1949년 이래 대만해협을 사이로 두 개의 집단으로 분리되어 있다. 올해로 분단 7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1991년 남북한이 동시에 UN에 가입하면서 주권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대만은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국가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 채 외교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그러나 통일이라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대만은 국가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분단 기간이 늘어갈수록 대만사람들은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기보다는 대만인으로서 인식하는 정도가 늘어나고 있다.
점점 변화해가는 집단정체성
대만학자 왕홍언의 연구를 보면 현재 2300만 명이 넘는 대만사람들의 다수는 분단되어 있지만 자유와 민주를 누릴 수 있는 현재 상황 그대로를 선호하며, 반면에 통일이나 독립을 원하는 비율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대만의 국립정치대학 선거연구센터는 1992년 이래 대만 주민을 대상으로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대만인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을 해오고 있다. 1만 명에 가까운 대만인을 대상으로 무작위 추출을 하는데, 연령·성별·지역 등의 변수를 조정한다. 때문에 통계 결과는 거의 대만 주민의 의사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2014년 8월 발표한 이 보고서에서 스스로를 대만인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중국인 혹은 둘 다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60.4% 이상이 자신은 대만인이라고 답했다. 둘 다에 해당한다는 응답은 32.7%이며, 중국인이라고 대답한 비율은 3.5%에 불과했다. 결론적으로 대만의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대만인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이 비율은 22년 전 17.6%에 비해 세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이른바 새로운 집단정체성(Group Identity)이 점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왜 대만 정체성이 점차 증가하는가?
사람이 자신이 소속한 집단을 인식하는 것은 보통 어린 시절 혹은 성년기에 확정되며, 이후에는 오랫동안 안정되고 변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대만 정체성이 매년 증가하는 첫 번째 이유로 대만의 세대 교체를 꼽을 수 있다. 일찍이 중국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 전쟁경험을 가진 장년층은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려서부터 대만에서 성장하며, 대만과 중국을 '국경'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젊은 세대는 스스로를 대만인으로 생각한다.
객관적인 거주환경의 변화 이외에 본토화 운동과 대만독립운동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유독 1997년에 대만 정체성이 10% 이상 도약했는데, 당시는 대만해협 미사일 위기가 발생했던 때였다. 일반적으로 중국에 의한 무력위협이 발생하면 대만 정체성이 급증하게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 매번 총통선거 전후에 대만 정체성이 비율이 높아지기도 한다.
경제적 이익도 민중의 대만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8년 이후 중국경제이익이 대만에 이익을 준다고 느낄수록 대만 정체성이 낮아지고 있다. 이를 통해 대만인의 국가 정체성은 안보와 경제의 종합적인 작용에 의해 달라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요인으로는 대만 민중이 대만인과 중국인에 대해 느끼는 인식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1992년에 일부에서 "나는 대만인이다"라고 외친 적이 있는데, 2014년에 다시 이런 외침이 있다고 해도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대만 정체성이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여전히 대만 민중 대다수가 대만인이라는 인식을 공감하고 있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대만 정체성의 출현 및 증가는 어떤 결과를 낳는가?
대만 정체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 문화 외에 양 국가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다. 특히 중국으로부터 압력을 받은 경험이 자신을 대만인으로 여기게끔 만들곤 한다. 자신이 대만인이라는 인식은 민중으로 하여금 양안경제교류를 통해 금전적 이익이 나온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민진당을 중심으로 하는 범록(泛綠)후보들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아지며, 국민당을 중심으로 하는 범람(泛藍) 정당 인정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도 관련 있다. 대만 정체성은 민중들의 총통 선거 투표 성향에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는 출신성 요인의 영향을 초월하고 있다.
당연히 대만 정체성의 점진적 증가는 대만의 정당별 선거 전략에도 영향을 미친다. 과거 사례를 보자면 국민당은 2008년과 2012년의 총통 대선에서 구호와 로고에 모두 '대만'을 넣었다. "대만은 전진할 것이며, 대만은 반드시 이길 것이다"(台灣向前行,台灣一定贏), "대만 파이팅"(台灣加油讚)등의 구호가 나왔고 로고에도 대만지도 형상을 넣었다. 대만 본토화 운동을 시작한 민진당도 당기에 대만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만의 주요 정당인 국민당과 민진당이 모두 대만을 강조할수록 대만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대만정당의 적극적 활용은 중국 정부의 우려와 불만을 받고 있다. 중국은 대만 정체성의 강조가 곧 탈 중국화 의도를 갖고 있고, 독립을 하기 위한 시도라며 맹비난하고 있다.
2012년 12월 10일 타이베이(臺北)에서 '양안 양회'가 개최될 때, 중국의 국무원 대만판공실 부주임 순야푸(孙亚夫) 는 양안은 '하나의 중국'이라면서, 중화민국 정부가 10여 년 동안 해온 탈 중국화 조치들을 비판하였다. 2014년 9월에는 국가 주석 시진핑(習近平)이 공개석상에서 학교 교육에서 고문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결국 교육에서의 탈 중국화를 이끄는 것이라며 비판한 바 있다.
2016년도 총통선거를 앞두고 있는 대만에서 대만 정체성의 증가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며, 그 결과가 양안관계가 어떻게 변할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느새 분단 70년을 맞이하고 있는 남북한 사이에 우리도 깨닫지 못한 정체성의 균열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광수 교수는 국민대학교 중국사회인문연구소에서 HK 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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