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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특검' 진압한 청와대의 기이한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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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 특검' 진압한 청와대의 기이한 논리

[기자의 눈]삼성 정국에 공수처를 쟁점 삼은 노 대통령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비판한대로 "사물을 보는 인식이 참 일면적이고 편협하고 한심스러울지" 모르기 때문에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처럼 전 주미대사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비롯해 청와대가 영입한 삼성 출신 고위 관료를 꼬집진 않겠다.

이 회장의 작은 처남이자 삼성X파일 녹취록에 등장한 이후 형과 같이 낙마한 홍석조 보광 회장이 현 정부 출범 직후 법무부 검찰국장 자리에서 '참여정부 검찰 개혁'을 진행한 사실, 한남동 리움 미술관이 개관된 지 얼마 후 노무현 대통령 일가족과 이건희 회장, 홍라희 관장 내외가 함께 반나절 동안 호젓이 미술품을 관람했던 것 같은 소소한 이야기도 제쳐놓자.

삼성은 청와대와 정부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또 하나의 친구'가 아니던가?

하지만 삼성 비자금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 법안이 모처럼만에 3당 발의로 통과되고 한나라당도 큰 틀에선 거부하지 않는 상황이 닥치자 곧바로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 특검법안을 조기에 사실상 무력화시킨 청와대 모습을 그대로 넘기긴 힘들다.
▲ 지난 2006년 연말 청와대에서 여린 대중소기업상생회의에서 만난 노 대통령과 이 회장ⓒ연합

청와대가 '특검 3일 천하'를 진압하기까지

특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13일 청와대는 편치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삼성 비자금 문제에 대한 검찰 고위층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면 특별검사 수사도 한 방안으로 삼을 수 있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법안의 윤곽이 드러난 14일 청와대는 "발의된 특검법이 그대로 (통과)되면 검찰 기능의 무력화 및 특검 남용으로 인해 국가 기본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두 발언 사이에 온도차가 드러났지만 '임기 말에 검찰도 흔들리고 나라가 흔들거리는 이 상황이 마뜩찮을 순 없겠지'라는 마음도 들었다.

"(검찰에 대한)뇌물 공여 부분에 대해선 특검을 할 수 있겠다"고만 꼬집어 말한 것도 걸렸다. 하지만 '대법원에 이미 계류 중인 사건,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을 특검이 처음부터 다시 파헤칠 순 없다'는 청와대의 주장에 일리가 전혀 없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카더라' 밖에 없는 당선축하금 논란을 특검에 포함시키자는 한나라당 주장에 손을 들어주기 어려웠기 때문에 '수사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는 청와대의 지적 자체는 설득력도 있었다.

청와대는 "공수처 설치가 시급하다"는 이야기도 꺼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15일 청와대 대변인의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졌다. 청와대는 삼성 특검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고 하면서도 특검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감을 여과없이 드러냈고 검찰권과 국법질서의 훼손을 걱정했다.

삼성이 아니라, 특검이 검찰권과 국법질서를 훼손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여론도 있는데, 대선을 앞둔 임기 말인데 거부권 행사까진 가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역시 노무현 대통령은 달랐다. 16일, 공수처를 강조한지 3일 만에 청와대는 "공수처 법안을 통과시켜주지 않고, 법안 재조정하지 않으면 거부권을 검토한다"고 잘라 말했다.

'삼성 X파일의 본질은 국가권력의 불법도청'이라고 가이드 라인을 그어줬던 노 대통령의 모습을 깜빡 잊었었던 것이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노 대통령의 모습이 전면에 나타나지 않았던 정도?

'공수처 없이는 특검도 없다'는 기이한 논리의 배경은 뭔가?

특검이 됐건, 공수처가 됐건 삼성 문제만 잘 처리하면 사실 무슨 상관 이겠나? 청와대 역시 '지금 공수처가 설치된다고 해도 삼성 사건을 수사할 순 없다'고 밝혔다.

'수사범위가 너무 넓다'는 주장은 그 적절성과 별개로 논리라도 와 닿지만 당장 써먹지도 못하는 '공수처 없이는 삼성 특검도 없다'는 노 대통령의 소신은 참으로 기이하다.

변양균, 정윤재 등 청와대 실세들의 비리가 터져 나올 때 "청와대가 수사권도 없고 검찰이 제대로 못하니 공수처를 설치해서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발본색원하게 해달라"는 이야기를 못한 것은 아마 바빠서 그랬던 것으로 이해해주겠지만 참 걱정도 가지가지다.

청와대 대변인 뿐 아니라 민정수석실도 나서서 '공수처법 처리가 근원적 해법입니다, 삼성 특검법 발의에 대한 입장'을 청와대브리핑에 게재했다.

지금 청렴위원장도 삼성관련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검찰 안팎의 질타를 받은 '떡값 의혹 검사' 출신인데 '떡값 공수처장'이 생기지 마란 보장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청와대의 주장은 '결론은 공수처'다.

또한 청와대는 "원칙에 대한 이야기"라면서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면 가능하다는 보장도 없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한미FTA도, 국가 균형발전도 나 아니면 아무도 못 한다'고 말했었다. '공수처 설치도 나 아니면 못 한다'는 왕자병이 재발됐다.

하지만 노 대통령 아니면 공수처를 못 만드는 게 아니라 노 대통령 아니면 그 누구도 '경제가 어려울까봐'라는 단골 레퍼토리를 꺼낼지언정 공수처 미비를 핑계로 삼성 특검을 거부할 생각은 못했을 거다.

차라리 지난 2005년 X파일 사건이 터졌을 때처럼 "너무 야박하지 않냐"면서 "정경 유착 등 구조적 문제의 경우 (도청테이프) 1000개의 사실을 모두 조사하는 것은 국력 낭비이며 10개만 조사해서 구조를 이해할 수 있으면 그 수준에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게 낫다는 거다.

당위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그 어떤 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펼치니 혹시 특검이 통과되면 "나는 떳떳이 걸어서 청와대를 나갈 것이다"는 장담에 문제가 생기냐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단 이야기다.

오늘 삼성엔 꼼짝 못하고 어제의 유서대필조작은 질타?

최장집 교수는 X파일 사건도 터지기 전인 지난 2005년 초 "집권 엘리트-경제관료-삼성그룹 간의 결합이 만들어지면서 개혁적 정책의 공간이 크게 축소됐다"면서 "결국 정서적 급진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스타일과 실제내용에서 보수적 경제정책의 기묘한 결합에 불과하다"고 현 정권을 평가했다.

지난 14일, 정례브리핑에서 '특검이 국가 질서를 뒤흔든다'고 강조하던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 말미 전날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故김기설 씨 유서대필 사건 재심 권고를 언급했다.

청와대는 대변인은 "당시 이 사건은 개인의 인권의 문제가 아니었고 민주화 운동세력 전체의 도덕성을 뒤흔드는 이야기였는데 지금은 그것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어느 정도 밝혀졌다"고 정리했다.

또한 대변인은 "당시 권력을 가졌던 사람들이, 시대를 왜곡했던 사람들이 답해야 할 것"이라며 "과거는 진실에 입각해서 기록되고 또 화해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서 준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말로 '보수적 실제내용과 정서적 급진주의'가 결합되면 어떤 코미디를 연출하는지 보여준 장면이었다. 하긴 노 대통령 본인 부터가 "이번 대선은 역사적 진보의 계기가 못될 것"이라고 엄숙하게 논평했었다.

과거 저들의 수구성을 비난함으로 오늘 자신들의 진보성를 확인하는 모습은 지난 4년 간 지겹게 봤다. 권력을 내놓기 전에, 삼성엔 한 마디 논평 못 내놓는 오늘 자신의 모습을 딱 한 번이라도 되돌아 볼 일이다.

사족. 삼성비리 폭로와 특검 문제가 '부패 VS 반부패 전선'을 형성해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했던 정치부 기자, 정치컨설턴트, 각 후보 캠프는 삼성은 멀찍이 치워버리고 공수처를 쟁점으로 삼고 나선 노 대통령 앞에서 두 손 두 발 다 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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