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수사에 착수할 당시, "특별히 외압이 있다고 느낄만한 사정은 없었다"고 밝혀 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수사팀에 외압이 있었다는 증언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같은 수사팀이었던 안상수 창원시장(당시 검사)은 자신의 책 <안검사의 일기>에서 외압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완주 의원에 따르면 박 후보자는 청문회를 하루 앞둔 6일 국회에 보낸 서면답변을 통해 "수사에 착수할 당시 특별히 외압이 있다고 느낄만한 사정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박 후보자는 이어 "1987년 1월 1차 수사나 1987년 5월의 2차 수사에서 관계기관대책회의에 의한 수사권 제한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당시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후보자의 이같은 입장은, 안 시장이 지난 1995년 자서전 <안검사의 일기>를 통해 밝혔던 당시의 분위기와 동떨어져 있다.
안 시장은 "1월 20일에 사건을 송치받아 1월 24일에 기소했으니 수사기간은 불과 4일뿐이었다"며 "관계기관대책회의는 검찰에 24일까지 수사를 마치고 그 결과를 밝힐 것을 요구하였고 우리는 상부의 지시에 의해 23일까지 수사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고 썼다.
안 시장은 "검찰수뇌부도 관계기관 대책회의의 결정을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더 이상 완강히 주장할 수도 없었다", "불만스럽기는 했지만 상부의 지시라 어쩔 수 없었다"라고 언급하는 등 수사에 대한 지속적인 외압이 있었다고 밝혔다.
안 시장은 이 사건이 검찰로 송치된 1987년 1월 20일 수사팀과 함께 직접 영등포 교도소로 출장수사를 간 데 대해 "원래 사건이 송치되면 피의자를 검찰청에 데리고 와서 조사한 뒤 구치소로 보내는 게 상례인데 상부의 지시에 의해 거꾸로 우리가 교도소로 찾아 가야 했다"는 증언도 했다.
또한 안 시장은 "현장검증을 피의자 없이 실황조사만 하라는 것에 대해 항의를 하였지만, 상부의 지시라 어쩔 수 없었고 검찰수뇌부도 관계기관 대책회의의 결정을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박 후보자는 "당시 현장검증 대신 (피의자 없이) 실황조사를 실시한다는 방침에 따라 실시했고, 경찰에서 이미 한 차례 실황조사가 이루어졌고, 피의자 자백이 동일하기에 반드시 현장검증이 필요한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안 시장은 "(실황조사만 하라는 윗선의 결정을) 거부할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박 후보자는 실황조사 외의 부분에 대해 "필요한 사안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박 후보자의 말대로라면 자신의 상관은 필요성을 느꼈는데, 본인은 필요치 않다는 '자체 판단'을 내렸다. 이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박완주 의원은 "박상옥 후보자는 1987년 1월 1차 수사 때 수사팀에 합류하여 팀원들과 함께 수사를 하는데도 후보자만이 관계기관대책회의의 통보나 외압에 대해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는 답변은 이해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1987년 1월 20일 첫 수사부터 이례적인 출장수사를 한 점, 피의자 없이 현장검증을 한 점, 지나치게 짧게 수사기간을 잡은 점, 1987년 1월 24일 검찰의 수사발표에서 모든 사실을 발표하지 않은 점 등 수사과정에서 외압을 느끼지 못하였다는 박상옥 후보자의 주장은 안상수 시장의 말과 확연히 엇갈리기에 이번 청문회를 통해 그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나가겠다"고 말했다.
野, 청문회 하루 앞두고 '보이콧' 강력 경고
청문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박 후보자 측이 자료 제출 의무에 불성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옥 대법관 인사청문 특별위원회 야당 소속 위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야당은 정상적 청문회 진행을 위해 수사 및 공판기록 일체를 제출할 것을 수차례 요구한 바 있다"며 "하지만, 법무부는 후보자가 관여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에 관한 수사 및 공판기록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가, 청문회를 하루 앞둔 오늘에서야 열람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통보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수사기록과 공판기록은 6천여페이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상식적으로 청문위원들이 하루 전에 서울중앙지검을 방문해 이 많은 자료를 열람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며 "후보자의 은폐, 부실수사 의혹을 규명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로 인해 청문회 진행에 차질이 생긴다면, 그 책임은 국회의 정당한 자료요구에 협조하지 않은 법무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둔다"며 보이콧 가능성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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