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수사 검사였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를 향한 자진사퇴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완구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 여당과 대격돌을 벌였던 새정치민주연합은, 박 후보자 인사청문회 개최 '불가'를 외치며 '청문회 2라운드'에 돌입한 모양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민주사법연석회의 등 시민·사회단체들도 "박 후보자는 공직자가 될 자격이 없다"면서 임명동의안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새정치연합에선 당초 인사청문회 개최 여부를 두고 찬반 의견이 오갔으나, 24일 오전 의원총회를 거치며 2월 중 개최 '반대'로 의견을 모았다.
인사청문회를 통해 대법관으로서의 '자질 없음'이 확인되더라도, 이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때와 마찬가지로 표 대결로 가면 인준을 막을 길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새정치연합 소속 이종걸 인사청문위원 특위위원은 "현재로선 청문회만 하면 다수결에 의해 다수당의 의견대로 승인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청문회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이라고 말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진상 조작 사건의 일원…"대법관은 안 된다"
무엇보다 박 후보자가 연루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에 대한 군사독재 정권의 폭거를 상징하는 사건이란 점에서 강한 반대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1987년 당시 서울대학교 학생이었던 박종철 군은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폭행을 당하고 1월 14일 숨졌다. 당시 정부가 이를 '턱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축소 발표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후 검찰은 고문 경찰 2명을 기소했지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로 공범 경찰이 3명 더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같은 고문치사 진상 조작은 전 국민적 저항을 불러왔고 6월 민주화항쟁으로 이어졌다.
박 후보자는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3년 차 검사였다.
청문특위 위원인 전해철 새정치연합 의원은 "(1987년) 2월 27일 공범이 3명 더 있음이 밝혀졌는데도 이들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5월 20일이고, 핵심이랄 수 있는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구속 수사된 것도 7개월이나 지난 1988년 1월이었다"며 "이런 것을 봤을 때 박 후보자가 수사 검사 어떤 지위에 있었더라도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완주 원내대변인은 "검찰 내 검사장으로의 승진이면 몰라도 대법관으로 가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의원 대부분의 의견"이라면서 "새누리당은 '사법 공백'을 들며 야당을 압박할 게 아니다. 후보자가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위원 또한 "대법관 공백의 책임은 당연히 박 후보자에 대한 임명 동의를 요청한 측에서 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는 대법관후보 추천위원회의 추천과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인사 청문을 앞두고 있다.
유가족협의회 등은 박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적사법개혁실현을위한연석회의,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등은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수사팀 시절 검찰 내 외압으로 은폐·축소 수사가 진행된 데 책임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 공직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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