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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과 남곤,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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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과 남곤,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

[기고] 국민 고통보다 정권 안정이 중요?

조선 중종시절 남곤이라는 학자가 있었다. 조광조라는 걸출한 학자를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정치적 공작을 통해 죽음으로 내몬 ‘기묘사화’의 3인방 중 한 명이다. 남곤은 역사드라마에서는 흔히 악인, 간신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우리는 남곤에게 오히려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된다.

남곤은 원래 훈구파가 아니라 사림파였다. 조선 사림의 종조인 김종직의 문하로 김굉필과 함께 동문수학 했으며, 김굉필의 제자였던 조광조와는 학문적 혈연관계에 있었다. 젊은 시절 남곤은 개혁적 성향이 강한 문관이었다. 입바른 소리도 자주 해서 귀양도 가고, 삭탈관직 당하는 고난도 겪었다. 경학도 중시했지만 시문에도 일가견이 있어 문장이 뛰어나고 외교문서에도 밝았다. 지방관을 했을 때는 선정을 베푼 유능한 개혁관리였다.

한 시대에는 그 시대의 사람이 있어 조광조가 조정에 나타나 젊은 유학자들 사이에서 ‘신파 리더’가 되자, 남곤은 졸지에 ‘구파’가 되어버렸다. 신파와 구파 사이에는 경학(經學)을 중시하는 조광조와 젊은 유학자그룹, 경학 못지않게 사장(詞章)도 중요하다고 여긴 남곤의 대립이 있었다. 과거제를 전면폐지하고 현량과라는 천거제를 주장한 조광조 그룹과 과거제와 천거제를 동시에 추진한 남곤의 대립도 있었다.

정책면에서 조광조와 남곤의 맞섬은 개혁과 기득권의 대립이 아니라 이상과 현실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으나, 남곤이 정치적 입장으로만 해석되면서 신진세력에 반하는 ‘올드보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현실정치에서 실용적 선택과 이상적 선택이 현실운영의 문제를 넘어 정치적으로 비화되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결국 남곤은 중종의 조광조에 대한 변덕과 맞물려 훈구파와 손을 잡고 신진개혁세력을 권력의 중심부에서 내쫓았다. 남곤은 훈구파들이 조광조를 사약으로 죽이는 극단적 결정만은 막아보려고 노력했지만, 호랑이 등에 올라탄 권력은 이미 스스로 내릴 수는 없는 단계였다. 조광조는 사약을 먹고 죽고 사림파는 패배하게 된다.

그 후 남곤은 좌의정과 영의정을 거쳐 중종의 후반기 국정을 보좌하고 권력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남곤이 심정, 홍윤주와 같은 다른 실세그룹과 다른 점은 권력에 의탁해 거만하지 않았으며, 검소하고 청렴했다는 점이다. 왕조실록 졸기에 그를 두고 “문장력이 뛰어났고 청렴하였다. 남곤은 당대에 문장이 뛰어났고 필법이 또한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평생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았고 상업을 경영하지 않았으며 재주가 뛰어나서 지론 (持論)이 올발랐다고 평가”한다.

남곤은 1527년(중종 22년)에 죽음을 맞이한다. 남곤은 죽기 전 유언을 남기는데, 자신의 행적이 부끄럽기 때문에 자신의 글과 흔적을 모두 불태우고, 비문도 세우지 말라고 했다. 남곤 자신과 비록 개혁의 속도와 방식은 달랐지만 조광조의 죽음과 신진개혁 세력의 몰락에 대한 회한과 부끄러움이 유언 속에 담겨있다. 후세에 남곤은 중종 이후 조선왕조 내내 간신의 모델로, 기득권 정치의 전형으로 남아있으니 그가 우려했던 부끄러움이 틀리지는 않았다.

남곤. 그는 몇 백 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지금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조선의 대표적인 간신이자 소인’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남곤은 왕조실록 졸기의 평가에서 보듯 간신과 소인의 상징으로 폄하하기에는 삶의 행적이 아까운 인물이다. 남곤은 관료로서의 책무를 다했고, 조선을 위해 노력했으며, 이상적 개혁은 아니지만 지속적인 개혁을 추구한 인물이었다. 무엇보다도 남곤은 대부분의 권력실세들이 보여주는 거만과 오만, 참담함을 멀리하고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인이었다.

최근 인사청문회에 나타난 총리와 장관후보들이 살아 온 이력이 국민들의 눈높이와 너무 달라 분노를 넘어 허망함을 가지게 된다. 특히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연관성을 두고 논란이 되고 있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청문회 개최와 인준여부는 현재의 여당과 야당이 우리 시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지에 대한 잣대가 될 것이다.

고문으로 학생을 죽인 범죄를 국가기관이 은폐하고, 군대를 동원해 시민을 학살하고, 국민들의 피와 땀이 담긴 세금을 제 돈 쓰듯 펑펑 낭비하고, 국민의 이익을 사취해 온 자들은 경제 살리기와 국민성공이라는 슬로건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절망, 시대적 소명에는 아랑곳없이 정권안정이라는 ‘훈구논리’가 횡행하는 지금, 스스로의 행적이 부끄럽다고 말하는 이 없으니 그럴 때마다 옛 사람 남곤의 부끄러움이 놀랍다.

훈구의 현실에서 개혁의 미완을 안타까워하고 부끄러워한 ‘간신’이었던 남곤이라는 사람. 남곤은 적어도 ‘오늘날 훈구세력’의 뻔뻔함보다는 낫다. 정치에서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미덕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곤은 오늘 우리 정치에 되묻는다. 부끄럽지 않은가? 위정자의 말과 정치적 행적이 과연 후손들에게 물려주어도 될 만큼 자랑스럽고 당당한가? 우리 정치는 국민에게 간신인가 충신인가? 정권을 쥐고 있는 자도, 정권을 얻고자 하는 자도 예외 없이 국민에게 답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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