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인권, 그리고 화해와 상생. 제주4·3이 역사에 남긴 크나큰 교훈이다. 은폐와 왜곡으로 점철돼왔던 4.3의 진실을 온전하게 알리려는 '4.3 진실규명 운동'의 한복판에 양조훈 전 제주도부지사가 있다. 언론인 출신인 양 전 부지사가 최근 펴낸 <4.3 그 진실을 찾아서>(도서출판 선인)는 1988년 제주신문 4.3취재반장을 시작으로 제민일보를 거쳐 4.3중앙위 수석전문위원을 지내는 등 약 27년 간 '4.3 진실 찾기'의 외길을 걸어온 그의 회고록이나 다름없다. 지난 22일 제주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던 소설가 현기영 선생이 못 다한 이야기를 [제주의소리]에 서평으로 보내와 싣는다. <편집자>
4‧3의 진상규명을 역사 흐름의 당연한 귀결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그 배후에는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열정과 고난이 첩첩이 쌓여있다. 하나의 뚜렷한 존재가 성립되기 위해서, 또는 하나의 가치가 기정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암흑 속 고난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은 4‧3의 진정한 모습, 진정한 가치를 망각의 암흑 속에서 건져 올리려는 지난한 싸움에 대한 기록이다.
80년대 전 기간 동안 계속되었던 민주화운동의 거대한 물결 속에는 4·3진상운동도 포함되어 있었다. 군사정권의 공포정치 속에서 군부의 치명적 과오를 지적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이었던가. 그들은 무섭게 철권을 휘둘러 제주의 제노사이드(대량학살)의 기억을 도민의 뇌리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다. 천인공노할 그 만행이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것처럼 부정하려고 애썼다.
제주에서, 서울에서 수십 년의 강요된 금기에 도전하는 절규의 합창이 메아리쳐 솟아올랐을 때, 양조훈은 "빨간 줄 한 줄이면 인생 망친다"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운동의 전위를 감당하고 있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두려움을 뿌리친 그 저항의 목소리는 지배 권력이 행사한 망각의 정치, 즉 은폐, 부정, 왜곡에 대한 투쟁이었고, 일반인들의 무관심과 냉소에 대한 투쟁이었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불가능을 꿈꾸어라'(Dream the impossible dream.)라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는 그야말로 돈키호테처럼 불가능을 꿈꿨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불가능이 현실화되었다. 87년 민주화운동의 성공과 함께 4·3운동도 그 열매를 맺을 수 있었으니, 1999년 국회에서 통과된 4·3특별법 제정과 2003년의 대통령 사과가 그것이다. 불가능을 꿈꾸었던 제주도민에게 그것은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1988년 신문사 '4‧3취재반' 반장으로서 4‧3의 금기 영역에 도전하기 시작한 양조훈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자신의 운명을 4‧3에 결부시켜 살아오고 있다. 그의 삶은 통절의 원한으로 아직도 저승에 안착 못한 채 허공중에 떠도는 제주4‧3의 수만 원혼들을 진혼하는 '심방으로서의 삶'이었다.
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되면서 마치 4·3의 모든 것이 해결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4·3이 어둠 밖으로 제 몸을 드러낸 지금, 오히려 갑자기 그 빛을 잃어 가는 느낌이 든다. 끊임없이 4·3을 재기억 하는 일이 중요하다. 재기억이란 지워졌던 역사적 기억을 되살려 끊임없이 되새기는 일, 대를 이어 미체험 세대가 그 기억을 계승하는 것을 말한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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